굳이 사서 고생을 하는 이유, 그게 바로 낭만이니까.
"어디다 써먹을진 몰라도" 시리즈는 이런 이야기들이 담깁니다
계획했던 여행, 우연히 떠난 여행
템플스테이부터 백패킹까지
때로는 실패담, 때로는 소소한 발견들
집 밖에서 마주한 일상의 조각들
특별할 것 없지만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지도 모를 기록들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공간입니다.
물놀이를 다녀왔다.
더워도, 너무 더우니까.
나는 사실 물놀이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밖에서 잠깐만 있어도 땀이 줄줄 나는데
굳이 왜 실외에 있어야 하지?
그게 물속이라 하더라도 말이야.
실내에 있는 게 더 쾌적한데- 라고 생각하며
물놀이를 멀리해왔지만
입추(25년 8월 7일)가 지난 시점부터
해가 점점 짧아지는 게 느껴졌다.
이러다가 올해가 다 가도록 물놀이를 안 가면
추워지고 나서 후회하지 않을까 싶어 부랴부랴 떠나게됐다.
떠나기 전날,
야무지게 마트에서 삼겹살, 라면, 생선 등을 사고
집으로 돌아와 보냉백과 돗자리를 확인하고 있으니
진짜 계곡 가는 것이 실감이 났다.
회사를 다닐 땐
좋아하지도 않는 물놀이를 가는 게 싫었다.
평일 내내 회사에서 원치 않는 에너지를 쓰는데
고작 이틀 쉬는 주말까지 시간 내어
좋아하지도 않는 일에 에너지를 소모하기 싫었달까.
생각해보면 회사 다니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회사에만 얽매여 있다는 것에 그토록 화를 냈으면서
회사를 다닌다는 이유로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살았다.
그 아무도 원하는 게 아니었는데,
그 누구도 그러라고 시키지 않았는데.
그렇게 살았다.
계곡으로 가는 길.
폭발하는 듯한 구름이 몽글몽글했다.
솜사탕 같은 구름을 한입 베어먹고 싶다고 생각하며
들른 곳은 다름 아닌 휴게소.
몇 년 전부터 휴게소에 파는 통감자가 먹고 싶었는데
휴게소에 잘 들를 일이 없고,
들르더라도 감자를 팔지 않거나,
파는 곳임에도 멀미로 힘겨워 하다 잠깐 내린 거라
먹을 기회가 통 없었다.
오늘 같은 컨디션엔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통감자를 찾아 다니다가 결국 발견하곤
보물을 발견한 것처럼 즐거웠다.
사소한 일에도 감사할 수 있는 삶.
나이가 먹어 손 안에 쥔 게 많아도
작은 것에 감사하며 많은 것을 베풀며 살고 싶다.
휴게소에서도 한참을 더 달려
드디어 계곡에
도착을 했습니다
윗지방은 비가 내려 난리였다는데
여기는 비가 오질 않아 계곡이 깊질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많았고
성인 기준 배 정도 오는 깊이에서도
열심히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즐거운 표정을 한참이나 보고 있다가
빌린 평상으로 돌아와 책을 펼쳤다.
챙겨온 과자도 뜯고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평상에 앉아있노라니
신선놀음이 이런 건가 싶은 기분이 든다.
물 근처라 바람은 살랑살랑 불었고,
31도가 육박하는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덥지 않았다.
물에 젖는 걸 싫어하는 내가
나름의 물놀이(?)를 즐기는 방식이랄까.
뽀송한 몸으로 평상에 앉아
솔솔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책을 읽는 것.
스스로를 너무 잘 안다고 생각하고 밀어냈던,
경험해보지도 못하고 버려진 취향들.
시간이 갈수록 명확해지는 게 아니라
뭐든 가능해지는 유연한 어린이가 되고 싶다.
어쩌면 그것이 진짜 어른의 삶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나다워지는 거래."
다들 이 말에 괜스레 안심되면 좋겠다.
료, <생각없는 생각> 중에서
평상에 누워 하늘을 보니
바람에 따라 나뭇가지가 이리저리 몸을 흔드는 게 보인다.
그건 마치 일종의 약속 같은 움직임이라
그들의 시간이 가을로 부지런히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더위가 가시고 겨울이 찾아오면
저 푸른 잎사귀도 하나둘씩 물기를 잃고 바싹 말라가겠지.
책을 한참 읽고 있으니 물놀이를 갔던
동생들이 출출하다며 평상으로 찾아왔다.
물놀이에는 역시 라면을 먹어줘야지.
계곡 가서 구워먹자고 샀던 삼겹살은 집에 두고 오는 바람에
생선을 굽고, 라면을 끓였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한상차람이라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어쩐지 라면은 혼자 먹을 때보단 여럿이,
실내에서 쾌적하게 먹을 때 보단 덥거나 추울 때 바깥에서
먹는 것이 더 맛있게 느껴진다.
밥도 먹었으니 나도 어디 한번 물에 다가가볼까.
몇 년 전 문방구에서 샀던 물총을 야무지게 챙겨들고
계곡 가장자리에 앉아 발을 담그고 앉았다.
신기하지.
날은 이렇게 더운데 계곡 물은 시원하고, 맑다.
어린 아이들과 어른이 한데 모여 행복한 듯 웃음을 지으며
놀고 있는 걸 한참 보고 있었다.
어쩌면 물놀이의 가장 큰 장점은
어린이도, 어른이도 모두 '물'이라는 것
하나에 마음 깊이 즐거워할 수 있다는 거 아닐까.
어렸을 땐 좋고 싫음이 확실했다.
누구 앞에서든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일렬로 줄 세워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싫어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이 모호해진다.
싫어해도 누군가 앞에서는 좋아해야만 하고,
좋아해도 사회생활을 하며 눈치껏 싫어해야 했기 때문이다.
때론 나이가 들어 입맛이나 취향이 바뀌며
좋아하던 것을 싫어하게도,
싫어하던 것을 좋아하게 된 경험도 있으니
이제 무언가를 딱 잘라 좋다-싫다 말할 수가 없다.
퇴사를 하고,
나는 오늘도 고민을 한다.
나는 어디로 걸어가는 중이며,
어디까지 걸어온 걸까.
아무리 물어도 답이 없는 질문으로 가득 찬
미로 속에서 단 한 가지 확실한 건
어느 방향인지 몰라도 나는 열심히 걷고 있다는 사실이고,
다른 사람의 기준이 아닌
내 기준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