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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니 Sep 20. 2021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알레르기

항체는 너의 그 눈빛과 몸짓으로 충분하다


 나는 아직도   만남을 잊을 수가 없다. 때는 18 여름, 고등학교 체육대회 . 운동장이 공사 중인 탓에 체육관을 빌리느라 낯선 동네에서 체육대회를 했더랬지.  가쁜 체육대회가 끝나고 집에 가던 길에 우연인듯 필연인듯  애를 만났다.


 다리를 절뚝이고 있던 탓이었을까? 첫인상은 연약해 보였다. 알고 보니 얼마나 개구졌는지 혼자 까불거리다가 다친 다리였다. 처음 마주했을 때도 서툰 걸음걸이로 온 사방을 돌아다니고 있었으니 어쩌다 그랬는지 알만했다. 그런 해맑음만큼 내 마음을 녹였던 건 오묘한 색의 눈동자, 당차 보이지만 어딘가 서글픈 목소리, 그리고 무엇보다 손바닥만한 체구에 빽빽이 박힌 하얗고 노오란 솜털들.

그것이 코카와의 첫 만남이었다.


  세탁소 아저씨가 길고양이  마리를 측은한 마음에 데려왔는데, 임신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가 얼떨결에 출산까지 해버렸다고. 아저씨는 새끼들까지 도저히 감당할  없다며 거칠게 손사래를 치면서도  처진 눈썹으로 아쉬움을 말하고 있었다.


코카의 다친 다리 때문이었을까, 다른 애들은 금방 새로운 가족이 생겼는데 코카만 홀로 엄마 곁에 남아있는 상태였다. 그래서인지 아저씨는 동물병원에서 시간이 지나면 다리는 회복된다고 했다며 괜스레 덧붙였다. 어차피 다친 다리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을 정도로 코카의 우주같은 호박색 눈동자가 작은  세계를 집어 삼켜버린 후였다.



 체육대회를 하러 갔다가 아기 고양이를 품에 안고 돌아온 대책 없는 딸을 본 엄마는 역시나 호들갑을 떤다.

“이제는 하다하다 고양이야?"

사실 나는 이미 전과가 꽤 있었다. 초등학교 때는 학교 앞에서 500원에 파는 병아리 2마리를 다짜고짜 데려와서는 결국 닭까지 키워냈다. 중학교 때도 마트에서 파는 햄스터는 평균 수명이 한 달도 채 못간다는 친구들 말이 무색하게 2년을 넘게 같이 살았다. 어린 마음에 앞뒤 없이 데려오긴 했지만 나름 근거 있는 자신감이 있었다.


 “아 몰라, 일단 갈 곳 찾을 때까진 내 방에만 있게 할게.”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든 친구 집으로 보내든 절대 키울 수 없다는 엄마의 말에 대충 얼버무렸다. 어디 보낼 마음은 고양이 발톱만큼도 없으면서. 새로 생긴 털복숭이 룸메이트와 밥도 먹고, 놀기도 하면서 더욱 확신이 들었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생명체를 엄마도 시간이 지나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거야.


 그런데 문제는 엄마의 허락이 아니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코를 훌쩍이고, 몸 여기저기에 빨간 두드러기가 간지럽게 올라오고, 눈은 충혈되다 못해 흰자가 부풀어 있었다. 알레르기였다.

밖에서는 마냥 설레는 마음에 몰랐는데 실내에서 시간이 지나니 반응이 온 것이다.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원인은 내가 좋든 싫든 피해야 하는 게 상책이건만,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오히려 이 몰골을 들키면 코카와 절대 함께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까지 미치자 방문을 잠가버렸다. 눈물 콧물 다 흘리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잤지만, 내 손에 스치는 보송한 털과 까칠한 혓바닥이면 진통제를 먹은듯 아무렇지 않았다. 병 주고 약 준다는 말을 이럴 때도 쓰는 거였나?



2주가 지나자 내 예상대로 엄마도 코카에게 마음을 열었고, 2년이 지나 코카에게 검정 줄무늬의 동생이 생겼고, 12년이 지난 지금은 내 옆에서 잠을 청하고 있다. 내 방은 원래 누구의 소유인지 모를 정도로 고양이 털과 물건들로 장악당한 지 오래다.


물론 나는 아직까지 알레르기와 사투 중이다. 침대 머리맡에는 안약과 알레르기성 비염약이 항상 구비되어 있다. 어느 정도 면역이 생겼는지 두드러기는 정말 컨디션이  좋을 때만 미미하게 올라온다.

솔직히, 알레르기 증상에 대한 불편함보다 치명적인 정도가 아니라는 것에 대한 감사함이  크다. 코카가 아플  알레르기로 흘린 눈물보다  배는  울었고, 내가 힘들  코카를 보며 그보다 몇만 배는  웃었다.


그래서 나는 18살로 다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그 작지만 큰 존재가 내 눈물도 콧물도 정신도 쏙 빼놓아버린다 해도.

세상에 유일한 알레르기의 원인이자 치료약인걸. 나에게 항체는 그 눈빛과 그 몸짓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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