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이야기
인생에는 꼭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다.
나는 항상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들은 마주하지 않은 채로 대부분의 인생을 보냈다. 만나기 싫은 사람은 만나지 않았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은 하지 않았다. 학교, 일, 인간관계 모두 예외는 없었다.
운 좋게도 그럭저럭 인생은 잘 흘러갔고, 의심의 여지없이 살았다. 피하고 싶은 건 피해도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인생에는 꼭 마주해야만 해결이 되는 일이 있더라. 코카의 일이 그랬다.
여러 가지 감정이 뒤엉켜 전날 술에 진탕 취했음에도, 오늘은 꼭 병원에 가야지 하는 마음으로 숙취를 이겨내고 일찍 일어났다. 굼떴던 내 몸과 달리 코카는 큰 저항 없이 케이지에 들어갔다. 뭐가 그렇게 어렵다고 미뤘을까, 그래. 이제부터는 정말 꾸준히 케어하러 다녀야지.
코카가 여러 가지 검사를 받으며 기다리는 동안 저녁에 보러 갈 콘서트를 찾아보고 있었다. 몇 달 전 예매한 뒤로 고대하고 있던 콘서트였다. 원래대로라면 30-40분 정도 시간이 걸리는데, 금방 다시 들어오라는 호출이 왔다. 의아한 마음으로 진료실에 들어가니 단호한 표정의 의사 선생님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코카 밥 잘 먹었나요?"
"네! 사료 주는 것들 잘 챙겨 먹고 캔 따주면 남기지 않고 다 먹는데.."
"지금 코카 상황이 많이 안 좋아요. 탈수도 심하고. 밥을 먹은 게 기적이에요."
잠깐 뭘 잘못 들었나 싶었다. 아니 잘못 들었길 바랐다. 필요한 검사는 일단 다 진행하겠다는 선생님의 말에 저항 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 말도 더 할 수가 없었다.
굳게 닫힌 내 입과 달리 머릿속은 한껏 시끄러워졌다. 죄책감이 드는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스스로를 용서하려는 변명들이 달려들었다.
'이제부터는 진짜 잘하려고 했는데.'
'밥을 먹는 게 기적이라고 했으니까 잘 케어하면 다시 좋아지는 거겠지?'
'혹시 내가 어제 왔다면 달랐을까?'
공허한 머릿속 아우성을 애써 외면하며 나를 위한 건지 코카를 위한 건지 모를 기도를 했다. 나는 원래 기도 같은 건 믿지 않는다. 그날도 그 기도가 어디에 닿기를 바랐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무언가에라도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결국 그 기도는 갈 곳을 잃었나 보다. 검사를 마친 코카는 신부전 4기 진단을 받았다. 당장 입원해야 한다고 했다. 아직 대낮이고 밖인데, 사람들이 많은데,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의사 선생님은 처음의 단호한 말투에서 조금은 온기를 담아 위로 비슷한 한 마디를 건네셨다.
"원래 신부전은 조용히 찾아오는 병이라 늦게 발견하는 경우가 많아요. 코카는 밥을 먹기도 해서 더 눈치채기 힘들었을 수도 있어요."
코카는 이내 24시간 병원으로 옮겨져 입원했다. 코카를 한 아름 안고 떠났던 집에 나 혼자 빈 손으로 돌아왔다. 몇 시간 전 콘서트에 갈 기대감에 부풀어 있던 내가 우스웠다. 코카는 내가 얼마나 바보 같다고 생각했을까. 차라리 코카가 나한테 욕이라도 해줬으면 했다. 입원실에 누워서도 나와 눈을 맞추던 코카의 마지막 모습이 나를 더 미어지게 했다.
그전까지 나는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과를 감당하는 독립된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날에서야 알았다. 코카가 나와 함께하기로 한 그날부터,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지나온 선택들이 그의 삶과 닿아있었다는 것을.
그렇게 15년 만에 처음으로 코카가 없는 집에서 밤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