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미뤘다.

세 번째 이야기

by 다니

지금까지 나는 꽤 낙관적으로 살아왔다. 인생에 큰 어려움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때마다 어찌저찌 잘 넘겨왔고 지나온 내 선택들을 후회한 적은 없었다.


그 특유의 낙관이, 코카의 변화를 눈치챘을 때에는 발동하면 안 됐는데.

그 해 코카는 15살이었다. 항상 병원을 가면 통통해서 다이어트를 권장한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살이 빠지는 게 눈에 보였다.

'나이가 들면 고양이도 살이 빠지는구나, 이제 정상 체중됐으니까 오히려 좋네?'

이때까지는 합리화가 아닌 진심이었다. 코카는 여전히 밥도 잘 먹고 좋아하는 장난감을 휘두르면 잽싸게 손도 휘두르며 평소와 다를 게 없어 보였다.


사실 이사를 한 뒤로 동물병원 찾기를 미루고 있었다. 원래도 병원의 힘보다는 스트레스 관리가 더 중요하다고 굳게 믿던 나는 15살 먹은 고양이를 데리고 병원에 데려가는 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을 수도 있다고 믿었다. 그만큼 병원의 문턱은 더 높아져만 갔다. 그래도 올해 건강검진은 꼭 가야지, 하며 꾸물거리고는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코카에게서 이상한 냄새가 났다. 목욕을 할 때가 되었나? 이가 상했나? 별별 생각을 다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인 목욕부터 시켰다. 목욕을 시키면서 보니 생각보다 코카가 홀쭉해져 있었다. 털이 뽕실뽕실하지 않고 뭔가 힘이 없었다.

예상대로 목욕은 딱히 효과가 없었다.

집사 인생 15년 간 처음 겪는 증상에 걱정이 되면서도, 낙관으로 인생의 굴곡들을 견뎌왔던 내 본능은 그 불안을 회피하기 바빴다. 시험 전날 공부 대신 책상 정리를 하는 아이 마냥 딴청을 피웠다. 인터넷에 검색조차 해보지 않고 그저 코카를 안고 쓰다듬기만 했다. 우리의 평범하고 행복한 나날에 아무런 변수도 끼어들지 않았으면 하는 막연한 바람이 있었다. 그래도 병원을 정말 가보기는 해야겠구나, 싶어서 다음 날 퇴근 후 저녁 약속을 가기 전에 꼭 병원을 들리리라 다짐했다. '혹시나 어디가 아프더라도, 예전에도 한 번 큰 병을 잘 이겨냈으니 이번에도 잘 케어하면 돼.' 애써 나를 다독였다.


하지만 나는 다음 날도 병원에 가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는 가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 친구들과 어렵게 약속을 잡은 날인데, 회사 일이 늦게 끝나서 동물병원을 들리기엔 시간이 촉박했다. 24시간 동물병원을 갈 수도 있었지만, 나는 또 한 번의 합리화를 해버렸다.

오늘 무리해서 급히 병원을 다녀오기보다, 내일 아침 일찍 병원에 다녀오면 오후에 코카와 시간도 보낼 수 있으니 오히려 더 낫겠다고. 내일은 꼭 일찍 병원에 가자며 코카를 어루만져주고 친구들과의 약속에 나갔다.


그날은 유난히 술을 많이 마셨다.

코카와의 시간을 하루하루 조금씩 줄이고 있다는 촉이 어렴풋이 발동했던 걸까. 그리고 그 죄책감에 스스로를 벌주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코카한테 미안한 만큼 집에 가는 시간을 늦췄다.


내 인생에서 가장 어리석은 선택을 했던 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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