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이루다
“Merry Christmas!"
내 인사에 환하게 웃는다.
웃으니 얼굴이 달라 보인다.
거의 매일 보는 식당 직원이다.
웃는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물론 일하면서 꼭 미소를 지을 필요는 없지만.
때론 육체노동보다 감정노동이 더 힘들 수 있다.
‘왜 이 사람이 내게 이러지?’
또 다른 직원은 크리스마스 인사에 당황하는 표정이다.
남에게 피해나 불편을 주는 것을 꺼리는 만큼, 타인과 크고 작든 감정과 관심의 공유를 꺼리는 곳, 일본이다.
성탄절, 이곳에 눈은 내리지 않고 비가 내렸다.
대신 ‘정’(靜)이 내게 왔다.
정해서 ‘동’(動)하고 비로소 ‘성’(成)할 수 있다.
나사렛 예수가 태어난 그날은 오늘날처럼 소란스러웠을까.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외쳤지만, 인간 예수는 결국 죽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지금도 살아 있다.
고요한 가운데 내려앉으면, 몸이 그 뜻을 따르고, 결국 뜻을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