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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비 Sep 22. 2020

손톱 물어뜯는 습관 고치는 유일한 방법

[단편에세이] 불안함 속에서 손톱을 물어뜯는 그대에게




세바시 김창옥 교수의 강연 중 일화



 어떤 심리상담사가 저에게 찾아와서 딱딱하고 얼음같이 말했습니다. 사람들과 말하는데 사람들이 불편해한다고요. 어떻게 하면 저처럼 편하게 말할 수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제가 선생님하고 얘기하면서 독특한 걸 발견했어요. 제가 선생님께 뭐라고 하면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으세요. 그것만 풀리면, 선생님 정말 프로페셔널과 휴머니즘이 잘 배합이 될 것 같습니다.




다다음 주가 되어 그분이 스피치를 했습니다. 




오늘 저는 남편에게도
말하지 않은 걸
이야기하고 싶어요.

저는 제 안에
12살짜리 아이가 있습니다.




저는 어렸을 적에 서울에 살았어요. 제가 열두 살, 동생이 아홉 살일 때 꿈을 꿨어요. 귀신이 막 쫓아오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을 못하고 한강을 향해서 뛰기 시작했습니다.



엄마가 갑자기 자던 딸이 벌떡 일어나서 막 집 밖을 도망가니까 엄마가 쫓아왔어요. 이 딸은 귀신이 쫓아오니까 한강에 빠졌어요. 그래서 더 깊은 곳에 가는데 허리춤에 갈 때쯤 엄마가 다행히 뒤에서 잡았습니다.



그리고는 이게 뭔가 안 좋다. 딸이 갑자기 자다가 물에 빠진다는 게 이상하다 싶어 굿을 합니다.





근데 그 해에 영화처럼 집안 식구들이 물놀이를 갔는데 아홉 살짜리 남동생이 물에 빠져서 사망했어요. 그리고는 이제부터 모든 집안의 분위기가 묘하게 흐르기 시작합니다.



누구 때문에 그 아들이 죽었다고 생각했을까요? 너 때문이라고. 네가 죽었어야 하는데 네가 안 죽어서 우리 아들이 죽은 거라고. 그래서 자기도 그렇게 생각하게 된 거예요.



그리고 이분은 마음이 얼어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지식과 몸만, 사회적 역할만 자라기 시작합니다. 이걸 전문적인 용어로 성인 아이라고 합니다. 마음은 어린데 몸과 마음과 사회적 역할만 성인이 된 거죠.



그런데 그분이 얘기하는 중 그분이 자꾸 눈물을 참는 거예요. "아 울지 말아야지. 잘 참았어." 제가 그랬습니다. 




선생님, 선생님 나아지시려면 우셔야 합니다.
그리고 선생님 안에 있는 12살 아이에게
네 잘못 아니라고 말해주세요.
그리고 그 아이에게 괜찮냐고 물어봐 주시고.
그 아이 꼭 좀 안아주십시오.
그래야 선생님의 열등감과 상처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몇 주 후 그분께 연락이 왔는데 목소리가 밝아져선 드디어 수영장에 가겠다고 합니다. 원래 사람은 어렸을 때 상처를 받으면 그 물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하지요.



수고하고 사는 나에게 괜찮니? 괜찮아. 해주셔야 해요. 삶에 독화살 맞을 때가 종종 있어요. 그럴 땐 빼고 치료해야 하는데 우리는 보통 어떤 놈이 쐈을지 생각하고 있죠.








손톱을 물어뜯는 아이



 어릴 적 단칸방에 세 식구가 살았을 때 더 이상 밀릴 월세가 없어서 보증금을 다 까먹었었다. 보증금이 없어졌는데도 월세가 밀려 밖에 나앉아야 할 판이었다. 매일같이 주인집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번갈아가며 할머니와 아빠에게 언성을 높였다.



변명도 핑계도 못하는 상황에서 나는 벽을 보고 베개를 끌어안고 자는 척을 했다. 그럴 때 괜한 화풀이가 나한테 왔었다.


쟤는 몇 살인데
맨날 잠만 자는 거요?



그때 내 나이 5살이었다. 미안하지만 나는 자는 게 아니라 자는 척하고 있었던 거다. 그 상황을 피하고 싶어서 선택한 행동인데 오히려 불똥이 나에게 왔다. 불안한 마음에 손톱을 물어뜯었다. 그런 불안함이 일상이 되는 동시에 손톱 물어뜯기도 습관이 되었다.





초등학교 3학년 수업 시간에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는 수학 수업을 듣고 있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나눗셈을 발표시킬까 봐 불안한 마음에 손톱을 물어뜯었다. 



김선비!
너 손톱이 그렇게 맛있어?
계속 먹고 싶어?



선생님은 35명의 반 아이들 앞에서 나에게 큰소리로 꾸중을 하셨다. 너무 수치스러웠다. 그리고 난 손톱을 먹지 않았다. 깨물었을 뿐이다.







손톱 물어뜯기 고치는 유일한 방법



 20년이 지났는데도 나는 5살, 10살 나이 수치심에 머물러 있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불안할 때마다 손톱을 물어뜯는 습관은 고쳐지지 않았다. 20년을 뜯어댄 손톱은 한센병 환자처럼 문드러졌다. 



첫아이를 임신하고 선 아이에게 하도 물어뜯어 형체조차 없는 이상한 손톱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고가의 네일숍에 다녔다. 수백이 들면서 나아지겠지 희망을 가졌는데 낫지 않았다.



이유는 네일숍의 문제가 아니다. 나의 문제였다. 고쳐 놓으면 물어뜯었다. 망가진 손톱을 고칠 게 아니라 내 마음을 고쳐야 했다.






그러던 내가 손톱을 고치게 된 계기는 하나다. '불안할 때 손톱을 뜯는다'라는 것을 인지하고부터다. 내가 손톱을 뜯을 땐 마음에 어려움이 있거나, 힘들거나,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표현이다. 지금 나의 내면이 버겁다고 사인을 줄 때 알아차렸다.



뜯는 이유는 어렸을 때부터 반복하던 습관으로 안정감을 느끼기 위해서였다. 불안할 때마다 손톱 뜯기로 마음을 달랬었으니까. 그것을 인지하는 순간 손톱 뜯기는 멈췄다.



가끔씩 아직도 손이 입으로 갈 때가 있지만 이제 보통 사람이 봤을 땐 손톱이 없던 사람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건강해졌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의 내면 속 불안함은 인지하지, 인정하지 않은 채로 손톱을 왜 뜯냐며 더럽다고 타박만 한다. 이 글을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



나는 심리 전문가가 아니지만 '손톱 뜯기 대선배'로서 말해줄 수 있다. 어른이 된다고 그냥 고쳐지지 않는다. 나아지겠지 백날 생각해봤자 달라질 건 없다. 마음을 충분히 다독여주어야 한다.



아이들은 스스로가 불안한지도 모른다. '너 불안해'라고 알려줄 수는 없지만 '불안하구나' 감정을 읽어줄 순 있다. 훈육과 훈계, 꾸중이 아니라 사랑으로 감싸주고 불안하지 않아도 된다고 달래주어야 한다. 이곳은 안전한 곳이라는 걸 끝없이 상기시켜주어야 한다.



혹여나 성인이나 보호자가 없는 누군가가 이 글을 본다면 낙심할 필요 없다. 곁에서 누가 백날 챙겨줘도 스스로 마음을  다잡아야 치유된다. 나 또한 스스로 위로하고 스스로 이겨낸 케이스니 이제라도 자기 자신에게 '참 수고했다'라고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김창옥 교수가 말했던 심리 치료사처럼, 우리 개개인에게는 성인 아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아이의 모습이 손톱 뜯기로 드러났었다.



어디서 멈췄는지, 어떤 것 때문에 내면의 아이가 멈췄는지 알 수 없지만 충분한 영양분으로 채워주지 않으면 몸만 커갈 뿐 아이의 내면은 자라지 않는다. 스스로 어르고 달래줄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나를 사랑해야 내면은 커갈 수 있다. 울고 싶으면 울고, 화내고 싶으면 화내고, 쉬고 싶으면 쉬어야 한다. 그게 당신을 사랑하는 방법이다.



그러다 보면 아팠던 흐린 구름들이 개고 맑은 햇살이 비쳐 진정 내가 아팠던 곳이 어디인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선생님, 나아지시려면 우셔야 합니다.
그리고 네 잘못 아니라고 말해주세요.
그 아이에게 괜찮냐고 물어봐 주시고.
그 아이 꼭 좀 안아주십시오.

그래야 선생님의 열등감과 상처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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