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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비 Oct 29. 2020

우울함, 자기혐오로 힘든 그대를 위해

[독서후기]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상담을 받으면서 힘든 시기도 있었고 괴로운 부분들도 많았지만 인고의 시간을 거쳐서 많은 변화를 이루었다. 많은 안정감을 찾았고, 불안함을 내려놓게 됐고, 더욱 성숙해졌다. 심리 상담이라는 것 자체가 고가에다 장기적인 시간이 필요하기에 진입 장벽이 높고 시도하기가 어렵지만, 처음이 어렵지 하다 보니 꼭 필요하단 생각이 많이 들었다.



상담을 하면서 나의 꿈과 진로도 찾게 되었다. 그것을 목적으로 시작한 상담이 아니지만 자존감이 올라가고 내면을 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목표를 가졌다. 그중 하나가 글쓰긴데, 상담 선생님께서 나와 비슷한 상황에서 책을 쓴 백세희 작가님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책을 추천해 주셨다.



사실 이 책을 많이 접했다. 워낙 SNS에서 유명했고 서점에 가도 항상 베스트셀러 칸이나 핫한 책 모음들에 껴있었기 때문이다. 내 느낌에는 한참 성행했던 '욜로'에 관련된 이야긴가 싶었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가 먹고 싶다는 말이 현재 상황이 괴로워도 나는 떡볶이를 먹으며 나의 만족을 채우겠다는 식으로 지레짐작 추정했던 모양이다. 나의 가치관과는 맞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사지 않았다.



그런데 추천을 받고 읽어보니 왜 이제서야 읽었나 후회됐다. 사실 책 구성은 별게 없다. 상담 녹취록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지독히도 담백한 이 책에서 아주 진한 여운을 준다. 나는 상담을 받아본 유경험자로서 상담사와 내담자의 관계, 상담 과정 등 모든 게 공감되었고 마음을 울렸다. 또 나와 비슷한 병을 앓고 있고, 똑같은 문제로 고민하는 저자의 모습에 내가 투영되어 너무도 슬프지만 위로받을 수 있었던 책이었다.








왜 자기검열을 하게 됐을까요?


"눈치를 많이 보니까 그렇죠. 자신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져서 그렇죠. 내 인생은 내 것이잖아요. 내 몸도 내 것이고, 그 책임은 내가 지는 거죠. 지금은 합리화나 중간 단계가 없고 극단적으로 가버려요. 자기검열이 무조건 부정적인 건 아니지만, 합리화를 하거나 다른 쪽으로 생각해본다든가 하는 여러 색의 스위치가 있으면 골라서 누를 수 있는데 지금은 스위치가 하나밖에 없어서 그게 그냥 커졌다가 꺼졌다만 하는 거죠. 어쩌면 원인이 있을 텐데 그냥 '나 지금 슬퍼, 눈물이 나, 화가 나'라며 원인보다 결과물에 너무 초점을 맞추다 보니까 지금의 감정이 더 심해지는 거 같아요."



내가 상담을 처음 시작하면서 가장 처음 접했던 문제가 자기 학대, 자기혐오, 자기 검열이었다. 상담 선생님의 표현으론 자기를 학대하려고 작정한 사람인 것 같다고 하실 정도로 나에 대한 증오심이 강했다. 그리고 극단적이었다. 나에 대해선 추호도 타협이 없고 채찍질하기 바빴다.


저자도 동일했다. 저자는 중요한 회의나 자리에서 녹취를 하고 집에 돌아와선 다시 들어본다고 했다. 평소에 긴장을 많이 하고 혹여나 실수했을까봐 그런다고 한다. 여기서 상담 선생님은 망각을 통해 자유로움을 얻을 수도 있지만 CCTV 찍듯이 스스로를 검열하고 있다고 말했다.


감정이라는 것은 깃털과도 같아서 아주 조심스럽게 어루만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망가지거나 날아가 버릴지도 모른다. 내가 나의 감정을 헤아려주고, 이해해 주어야 하는데 거기서 강하게 채찍질하고 검열한다면 감정은 걷잡을 수 없는 곳으로 날아가 버린다. 나의 감정을 놓치고 망가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그럴 수 있다'라는 마음으로 어디서 감정이 올라왔는지 충분히 바라보고 애도해 주어야 한다. 하나의 스위치로 껐다 켰다만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색의 스위치를 누르며 각각의 감정을 보아야 한다.





합리화를 왜 부정적으로 보세요?


"뭔가 진실을 거부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느낌?"

"성숙한 방어기제 중 하나예요. 자신의 상처나 결정에 대해 이유를 찾는 거니까."

"나를 지키려는 방법으로 괜찮은 거예요?"

"네.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거죠. 과도해지면 또 다른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얼마든지 좋게 바라볼 수도 있어요."



합리화한다는 게 보통 자기변명하기 바쁘다는 느낌으로 부정적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책의 선생님은 합리화가 성숙한 방어기제라고 말씀하셨다. 여러 색의 스위치를 각각 어떤 색인지 바라보고 어떻게 켜지고 꺼지는지 세심하게 살피는 것. 그렇게 나의 감정을 읽고 이해하는 것. 그 과정을 통해 상처와 그로 인한 결정의 이유를 찾는 것. 감정에 휘말리기 보다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것. 기존의 합리화라는 단어에 새로운 정의를 내려준 구절이다.





나는 나밖에 없는 존재


그것만으로도 특별한 존재, 내가 평생 동안 돌봐야 할 존재, 그러므로 애정을 갖고 따스하게 한 걸음씩 찬찬히 느리게 조목조목 짚으며 도와줘야 할 존재, 잠시 숨을 내쉬며 휴식하거나 때론 채찍질하며 나아가야 할 존재, 나를 들여다볼수록 행복해질 거라고 믿는다.



나 자체는 꼭 무엇을 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자체가 소중하고 귀하다. 그것을 너무 간과하고 살아왔다. 내가 스스로 검열하고 채찍질하며 개선되어야 할 존재로만 인식했지, 무엇을 해야만 괜찮은 사람이라는 조건부 자존감으로 부단히 나를 괴롭혀왔다. 저자의 말처럼 애정을 갖고 따스하게, 찬찬히, 조목조목 들여다봐야 한다. 나, 그리고 당신은 있는 그대로가 너무 소중하기에 그 모습 자체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





저는 애정과 영향력을 동일시했어요.


"제 뿌리가 너무 약하고 깊지 않기 때문에 상대에게 많은 영향력을 행사해야만 안심할 수 있었죠. 그래서 상대가 제게 영향을 받으면 받을수록 저를 사랑하는 거라고 믿었고, 관계가 견고해진다고 생각했어요.


견고해지는 것과 엉망진창으로 섞여 들어가는 건 다른 건데, 머리로는 타인과 내가 주체성을 가지고 함께 가는 게 건강한 관계라고 여기면서도, 마음은 상대가 내 말에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온전한 자신으로 존재하면 저를 깊게 사랑하는 것 같지 않아서 불안했어요."


"인정욕구를 더 강하게 만드는 행위예요. 내가 영향받고 싶을수록 상대에게 영향을 주려고 노력할 테고, 상대가 반응하지 않으면 더 노력하겠죠. 그러다가 지쳐버리는 거예요. 이것 또한 극단적이고, 자신의 한계를 규정하고 있는 거죠."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자신에게 더 집중해야 해요. 구체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직접 써보고, 내가 보는 나와 주변 사람들이 보는 나의 차이점도 써보세요. 그리고 눈치 보며 했던 행동들을 좀 더 주도적으로 해보는 게 좋아요."



사람의 기반은 유아기 때 가정에서 대부분 형성된다. 나는 기반이 없던 사람이라 이 구절이 특히 마음이 갔다. 저자처럼 뿌리가 약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더 의지하고 싶었고 내가 큰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길 바랐었다. 특히 남편에게 이런 부분을 많이 비췄다. 각자의 주체성을 존중하는 것이 건강한 관계의 기본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기준대로 행동하기만을 바랐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사랑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인정받고 싶기 때문에 참 열심히도 노력했다. 이게 참 습관적이라 많이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이것은 나의 삶을 살기 시작하면서 달라졌다. 나의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사랑하고, 살펴보면서 내 삶을 주체적으로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개선됐다. 선생님의 말처럼 나에게 집중해야 한다.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충분히 인정받고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낯선 환경에서 온전한 고독을 느껴보는 것도 좋아요.


"어쩌면 정말 바닥까지는 가보지 못했을 수도 있어요. 예를 들어 우리가 물에 빠져도 발이 땅에 닿으면 안심하잖아요. 딛고 올라갈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바닥이 어딘지 모른다면 공포감이 어마어마하겠죠? 아예 바닥을 쳐보는 것도 좋아요."


"바닥을 치는 게 뭘까요?"


"지금보다 더 큰 좌절감과 외로움을 느껴보는 거죠."



휘몰아치는 파도 속에서 휘둘릴 때 도대체 이 고통이 언제 끝날까 괴로울 때가 많다. 그럴 땐 파도에 몸을 맡겨야 한다. 물에 빠졌을 때는 밑바닥까지 치고 내려가 땅에 발을 디뎌야 한다. 정말 밑바닥까지 내려갔을 때만이 다시 치고 올라올 수 있다.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을 땐 올라갈 일밖에 남지 않았기에.





가장 힘이 들 때 옆에서
'힘내'라고 말하면
멱살을 쥐고 싶을 때가 있다.


그냥 옆에 앉아 어깨를 토닥여주거나, 어떤 해결 방법이 있을지 함께 고민해 주거나, 아니면 같이 슬퍼하거나 화내거나, 유경험자라면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며 생각보다 별일 아니라고 다 지나갈 거라고 이야기해 주면 된다. 그게 공감이자 소통이고 관계와 관계를 잇는 위로다.



사람 간의 관계에서 도대체 어떻게 하면 위로를 해줄 수 있을까 고민하곤 한다. 사실 나는 학습된 긍정의 경험이 많지 않아서 진심을 담은 격려와 위로가 더욱 힘들게 느껴진다. 반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내가 힘들 때 그냥 힘내라고 이겨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더 무기력해진다. 힘을 낼 수 있어야 힘을 내지 짜증이 막 난다. 그냥 그럴 땐 공감이 최고다. 영혼 없는 백 번의 힘내라는 말보다 같은 시선으로 바라봐 주고 마음을 맞춰주는 것, 이만큼 위로되는 게 없다.




시선을 옮기자.



나에서 타인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편안함에서 불편함으로, 다수에서 소수로, 쓸모 있지만 나를 녹슬게 하는 것들에서 비록 무용하더라도 나를 아름답게 하는 것들로. 시선을 옮기면 삶의 구석을 엿볼 수 있다. 시선은 행동을 이끈다. 행동은 삶을 변화시킨다. 오로지 나를 위해 내가 변할 수는 없다는 것. 나를 변하게 하는 건 내 시선이 닿는 무수히 많은 것들이라는 걸 깨닫는다. 삶의 구멍은 수없이 깨닫는 것들로 채워진다는 걸 배운다.



불편한 용기가 나를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 저자의 '쓸모 있지만 나를 녹슬게 하는 것들'이라는 표현과 '무용하더라도 나를 아름답게 하는 것들'이라는 표현이 너무 좋다. 조금 불편하고 낯설지만 이런 시선의 변화가 행동의 변화, 삶의 변화를 이끌어낸다. 오롯이 나로 살기 위해서, 또한 온전한 삶을 살기 위해서 필요한 변화들은 나에게 깨달음을 주고, 깨달음이 나의 빈 구멍들을 채워줄 것이다.





이런 내 모습을 자학하고 혐오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는 걸 안다.


나는 이렇게 모자란 인간이라는 걸 그냥 받아들이고, 매 순간 다가오는 반성과 성찰의 기회, 몰랐던 걸 알게 되었을 때의 부끄러움과 희열을 느끼며 1밀리미터의 변화에 기대하는 수밖에.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한다는 것은 나의 부족함도 포용하는 것을 포함한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스스로를 자학하고 혐오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부족한 사람임을 인정하고 끊임없는 반성과 성찰을 통해 발전하며 변화하는 것, 이게 성숙한 사람의 기본이다.





생은 지저분한 주인의 가방처럼
정리되지 않는 물건으로 가득 차있다. 


언제 묵은 쓰레기가 나올지 모르고, 누군가 가방을 들춰볼까 겁이 난다. 낡은 가방과도 많이 닮아 있다. 매끈한 바닥은 아무렇게나 툭 툭 던져지고, 던져지는 만큼 닳고 상처 나고 헤지지만 아무도 알지 못한다. 각도가 달리 던져지면 누군가에게 발각되지만, 그뿐이다. 가방을 바꿀 여건이 안 되는 이상 바닥을 들키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그리고 불편하게 몸을 움직인다.



누구나 내면에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을 가득 채워둔다. 상처받은 곳들은 바닥에 깔아놔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다. 보여주지 않기 위해서 참 부단히도 불편하게 움직인다. 이 비유가 너무 와닿다가도 참 쓰리게 느껴진다. 지저분하고 만신창이인 부분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서 평생 불편함을 지니고 살아야 하는 우리들. 결국 우리는 이 불편함과 공존할 수밖에 없다. 그것 또한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조금이나마 마음이 편해지지 않을까.






내담자인 저자가 이 상담 과정에서 본인의 감정과 상황을 묘사하는 것을 보고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기분부전장애를 앓고 있다고 하지만 저자는 이미 자신을 너무 잘 알고 있고 상황을 잘 정리했다. 당장 내 친구랑 대화를 할 때도 조리 있게 내 생각을 다 표현하지 못하는데 저자는 필요한 말을 잘 말하는 걸 보고 나의 상담에도 적용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이 책을 마무리하면서 기분부전장애가 완치되어서 해피 엔딩으로 끝맺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있었지만 그러지 않겠노라 말했다. 질문도 답도 아닌 바람으로 끝나는 이 책은 그렇기에 더 자연스럽게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게 아닌가 싶다. 나의 이야기 같은 서술로 깊은 공감을 이끌어내는 책. 누군가 우울함이나 감정 기복, 자기혐오로 괴로워하고 있다면 꼭 추천해 주고 싶은 책이다.



더불어 이 책을 통해 심리 상담을 받는 사람이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심리 상담은 꼭 아프고 병이 있어야만 받는 게 아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만의 상처가 있고 트라우마가 있다. 어두운 공간도 있고 밝은 공간도 있다. 심리 상담은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조화롭게 만들며 살아갈 것인가 깨닫게 해준다.



괜찮아,
그늘이 없는 사람은
빛을 이해할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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