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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숙 May 19. 2024

어머! 나 오르골 좋아하나봐


오타루에 갔을 때 오르골 박물관에 갔었다.

여행을 할 때 박물관에 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오르골이라니 보고싶기는 했다.

다양한 모양의 화려한 오르골은 입구부터 눈과 귀를 유혹했다.

평면적도 넓은 박물관에 각종 이야기를 담은 오르골이 2층과 3층까지 채워져 있었다.

보고는 싶었지만 막상 뭘 봐야할지 몰라 공연히 매대 사이사이를 서성거리며 걸었다.

그러다 눈에 들어오는 모양이 있으면 뚜껑을 열어 귀에 갖다 대 보기도 했는데

어떤 것은 태엽이 풀려 소리가 나지 않는 것도 있었고 어떤 것은 너무 팽팽하게 감겨 인형이 정신없이 돌아가기도 했다. 

화려하고 반짝거리는 디자인보다는 미스터 선샤인에 나왔던 박스 모양의 심플한 모양에 주로 눈길이 갔지만 거기까지였다.

예전에도 몇 번인가 선물의 집이나 관광지 등에서 오르골을 본 적은 있지만 산다는 생각은 해 본적이 없었다. 

그 것은 생활 필수품이 아닐 뿐 아니라 맛있는 것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가격이 비쌌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창백하고 가녀린 여주인공이 그리운 사람을 추억할 때나, 비밀스러운 단서를 간직한 것 같은 추리물의 상황에서 자주 봤던 느낌이라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특히나 어떤 한 곡이 오르골음악으로 연주될 때는 나도 모르게 마음이 쓸쓸해지며 때로는 눈가가 촉촉해지기도 했는데 그 곡의 이름이 ‘할아버지의 시계’ 였다는 것은 최근에야 알았다.



느린 걸음으로 3층까지 다 돌아보고 함께 간 가족들이 모이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옆 진열대에 있는 정사각 박스 모양의 오르골을 무심히 들어 열었다. 

날씬한 발레리나가 거울 위를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주변 소음이 많아서인지 음악은 잘 들리지 않았다. 그 때 K2가 말했다.


“디즈니 주제곡이네. 어머! 나 오르골 좋아하나봐.”


그런 뜻이 아닌 줄 알면서도 문득 어렸을 때 장난감을 충분히 사주지 못해서 갖고 싶은 마음을 너무 꼭꼭 눌러 담았던 것이 아닌가 싶어 제발이 저렸다.


“전에는 몰랐는데 오늘 보니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

“그래 그럼 하나 사. 엄마가...”


라고 말하는 순간 사위가 끼어들었다.


“어머니도 하나 사세요. 제가 사드릴게요.”

“어? 어, 아유 뭘 이런 걸 다. 호호”


갑작스러운 제안에 어리둥절하면서도 속으로는 이게 웬 떡이냐 싶어 베시시 웃었다.


“으응, 나도 실은 오르골이 좋아. 그걸 갖는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어서 그렇지.”


계산을 마치고 박스 두 개를 들고 있던 K2가 한 개를 내 밀며


“이 오르고르 네꼬쟈나.”


라며 미스터선샤인의 모리 대사를 흉내내서 한바탕 웃었다.

하여 나이 예순 살에 내게도 오르골이 생겼다.

책장 잘 보이는 곳에 놓아두고 자주 열어보았다.

날씬한 발레리나는 태엽만 감아주면 투명한 유리판위를 팽팽 돌며 춤을 춘다.

가끔 한 번씩은 이게 실화냐 싶을 때도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는 갖고 싶은 걸 못 가졌다기 보다는 아예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때로는 엄마에게 돈을 달라고 하기 어려워 학교 준비물 조차 챙겨가지 못했다. 

오학년 학기 초 환경미화 심사가 있던 날, 그 날까지 가져와야 할 사물함 바구니를 가져가지 않았다. 

담임 선생님은 안 가져 온 애들을 교실문 안에 들여 놓지 않았다. 다시 집에 가서 가져오라는 얘기였다. 

집에가도 가져올 수 없을 줄을 알면서 어쩔 수 없이 집으로 가는 길에 시장에 나와있는 엄마를 만났다. 

엄마가 눈을 부라리며 물었다. 왜 학교에 안 갔냐고.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환경미화 하는데 @#$%^&*라고 우물거렸다.

엄마는 입고 있던 앞치마를 벗어 팽개치며 내 손목을 질질 끌고 단 걸음에 학교로 갔다.

(이전 까지 엄마는 한 번도 학교에 온 적이 없었다.)

그 다음에는

육십 명이 넘는 아이들이 있는 교실에서 선생님한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싸웠다. 

앞 뒷반에서 아이들이 점점 모여들었다.

그 때 아이들은 선생님한테 삿대질하는 그 아줌마가 나의 엄마라는 걸 알았을까?

다음 날, 삼분단 앞에서 두번째 였던 내 자리는 오분단 맨 뒤, 짝도 없는 자리로 바뀌었다.


K2가 자기가 오르골을 좋아하는 줄 이제 알았다는 말에 

어쩌면 나도 내 엄마와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몰랐네. 진작 말을 하지.

말을 했다면 내가 선뜻 사 줬을까?

오르골을 켜면 어렸을 때 발레공연을 하던 K2의 잔뜩 상기된 표정이 떠오른다.

그래서 습관처럼 자주 오르골을 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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