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왜 네가 하는 것들을 네가 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상황에 떠밀려 했다고 말하니?”
애월 여행중 B언니의 따끔한 일침에 순간 움찔했다.
사진과 글 모두 인생 처음 경기도 밖, 그것도 멀리 바다가 있는 부산에 살게 되면서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간이 커다란 터닝포인트가 되었지만 그 때는 모든 것이 겁나고 두려웠고 그래서 집 밖에 나가지 않았다.
시아버지의, 그 당시 이미 삼십년 된 야시카 필름카메라를 들고 사진초급반에 등록한 건 K가 나를 집밖으로 끌어내기 위한 장치였다.
한 번도 문학의 꿈을 꿔 본적이 없었던 내가 지금 글을 쓰는 낙으로 살게 된 것 역시 그 무렵 말할 대상이 없어 홈페이지라는 공간에 넋두리를 쓰면서 부터였다. 고 말했더니 하는 말이다.
“여행을 와서 노트북을 펼쳐놓고 글을 쓰는 네 모습이 엄청 폼나보였어.”
그 모습이 계기가 돼서 수필교실에 들어갔고 노트북도 샀다는 언니는 내게 고맙다며 맛있는 점심까지 사 준적이 있었다.
이 번 여행을 함께 하면서는
“나는 카페에서 노트북 펴놓고 그게 글이 써질까? 했었는데 그게 되더라? 확 집중이 돼서 다음 주 합평할 작품 두 개나 썼어.”
라며 언니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언니는 늘 자신이 하는 일을 진심으로 대했다. 전공을 한 것도 아니면서 그림을 잘 그리고 같은 장면을 보고 다른 장면을 찍어냈다.
이번에는 글쓰기에 온통 마음을 빼앗긴 것 같다.
뭐가 됐든 언니에게 걸리면 해체되고 분해되고 분석을 당하느라 뼈도 국물도 없다.
그러면서 또 말했다.
“나는 네 글이 좋아. 군더더기 없이 잘쓰려고 꾸미지 않아서 좋아. 그런데 왜 너는 네 글을 좋아하지 않니?
너 사진도 좋아.”
감동이었다.
글이 좋다는 말은 전에도 종종 들은 적이 있지만 언니에게서 사진이 좋다는 말은 처음 들은 것 같다.
언니는 그림이며 사진을 잘 할 뿐 아니라 좋아한다.
난 그림은 잘 그려, 내 사진이 좋아. 라는 말을 당당하게 하는 언니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때로는 평범해 보이는 사진조차 언니가, 좋지? 괜찮지? 라고 말하면 정말 괜찮아 보일 때도 있었다.
잠 들기 전 팟캐스트를 듣는다.
보통은 내용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도란도란 들리는 이야기소리에 금세 잠이 들고는 했다.
며칠 전 새 녹음이 올라왔는데 도입부를 듣던 중
“좋아하는 마음이 좋아할 거리를, 싫어하는 마음이 싫어할 거리를 발굴하는....”
이라는 문구가 귀에 쏙 들어와 박혔다.
어떤 책에 나온 문구인지, 그 문장 다음은 어떤 상황으로 전개 됐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좋아하는 마음이 깊어야 좋은 일들이 보인다는 말일까?
뭔가를 싫어한다는 표현을 자주 하지는 않지만 좋아한다는 말은 더 인색했던 것 같다.
민망하지만 오늘부터는 내가 내게 고백해봐야겠다.
내 글이 좋아, 내 사진 느낌 좋아.
B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난 폼나게 살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