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추억
“겨울에 돼지고기 덩어리도 항아리에 넣어두고 먹었잖아.”
“얘 난 기억도 안 난다? 어머 얘, 넌 참 별 걸 다 기억하는 구나?”
엄마와 통화 중 김장 얘기를 하다가
김치 냉장고에 하루에 한 통씩 시간차를 두고 넣었다는 말을 하다가
김치냉장고가 없었으면 어쩔 뻔 했느냐는 얘기를 하다가
김치냉장고는커녕 냉장고도 없을 땐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하다가
거기까지 흘러갔던 참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까지의 이야기이니
최소한 50년 전의 일이다.
돼지고기의 용도가 지금처럼 다양하던 때도 아니고
겨울에 김치찌개나 혹은 만두를 할 때 넣는 정도였을 터였다.
아는 분을 통해 도축한 돼지 한 마리를 여섯 세대가 나눠 가졌다고 했다.
엄마는 눈이 쌓여있는 장독대 위에 있는 작은 항아리에 고기를 넣어두었다.
신기하게도 고기는
냉동실에서 꺼낸 것처럼 꽝꽝 얼어있지도
그렇다고 냉장실에 있던 것처럼 흐믈거리지도 않는 것이
적당히 얼어 딱 썰기 좋을 만큼의 상태로 겨울 내내 그 곳에 있었다.
소고기도 아닌 돼지고기를
어떻게 냉장고도 없이 그렇게 오래 보관할 수 있었는지는 지금도 수수께끼다.
그걸 먹고 탈이 난 적은 없으니 보관 상태도 꽤난 양호한 편이었던 것 같다.
기억력 뿐 아니라
나는 가족 중 오감이 가장 뛰어났다.
일산화탄소 즉, 연탄가스에 중독이 돼서 밤사이 안녕을 고하는 일이 흔하던 시절에
나의 예민한 후각 덕분에 무려 두 번이나 가족을 구했었다.
(그런데도 고마운 줄을 몰라 사람들이...-,.-;;)
시력검사를 할 때면 양쪽 2.0이 나와
몽고리안이냐는 놀림도 종종 받았었다.
식품회사 맛테스트에 통과한 적도 있으며
작은 소리에도 놀라기를 잘해 무서움을 많이 타는 것이
예민한 청각의 문제인지 담력의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다.
여자아이의 예민한 성격은 그 당시 어른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특히 나의 엄마는 더욱 그랬다.
그런 성격 가지고는 어디 가서 사랑 못 받는 다고 겁을 주고는 했다.
“여름엔 김치통을 줄에 매달아 우물에 담가 놓고 먹었잖아.”
“그래 그랬지, 넌 어떻게 그렇게 옛날 일들을 다 기억하냐?”
지금, 엄마는 내가 옛날 일들을 얘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까맣게 잊고 있던 일들이 나를 통해 끄집어 올려지는 것을 신기해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꺼내 놓은 기억에 엄마의 기억들을 덧붙이느라
엄마와의 통화는 늘 한 시간 가까이 하게 된다.
엄마가 자주 부르던 이미자 노래
아침마다 부쳐주었던 흰자 네 개가 엉겨 붙은 계란 프라이
마당에 도마를 놓고 잘게 다져 만든 준치 찌개
뚜껑의 홈으로 넣어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주전자 주둥이로 뽑아내던 털실
(신기하게도 꼬불꼬불하던 털실이 새것처럼 펴져 나왔다.)
오빠의 중학교 입학식을 축하한다며
동생과 장독대 위에서 뿌려주던 종이 꽃가루...
그 때 엄마는 서른 중반 무렵이었다.
엄마에게는 가장 아름다운 나이였을지도 모르겠다.
아름답기만 했어야 할 나이에
엄마는 당장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를 삶을 위해
매일 세상과 사투를 벌여야했다.
거칠게 살기에 엄마는 예뻤다.
하지만 엄마에게는 곱고 행복했던 서른 중반의 기억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옛날이야기를 하면서 깔깔 웃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사는 것이 죽을 날을 기다리는 것 같아 지루하다는 요즘의 엄마는
혹여 다시 살 수 있다면 그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을까?
산책을 하느라 동네 한 바퀴를 돌기도 전에 힘이 든다는 엄마는
버스비를 아끼려고 네 정거장을 걸어서 다녔던 그 때의 자신이 그리울 때가 있을까?
그리워한들 돌아갈 수 없으니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내 기억으로 엄마의 시간을 추억할 수 있게 하는 것뿐이다.
내가 엄마 나이가 되면
그 때는 또 딸의 기억으로 나의 마흔 살을 추억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