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키

그리운 것은 그리운대로

by 이연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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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친구들 다 같이 와. 내가 캠핑카 빌려놓을게. 아무 것도 준비할 필요 없어. 내가 다 해놓을거야. 비행기만 타구와.”

“그래. 휴가 맞춰서 가자고 하면 다들 좋아할거야.”

비행기 시각은 아직 여유가 있었으나 국경을 지나가는 과정이 어떨지 몰라 남편은 마음이 조급한 모양이었다.

“왜? 벌써 가려고?”

“어, 어… 들어올 때하고 나갈 때 상황이 다를 것 같아서… 미리 공항에 가 있는 게 마음이 놓일 것 같아.”

“아, 그렇지. 그래, 그렇더라, 그 미국 놈들 당최 까다로워서 예측을 할 수가 없더라구. 여기 사람들 쇼핑하러 국경 가끔 넘어 다니잖아. 그 때마다 툭하면 사람 붙잡고 늘어지는 통에 아휴, 생각 같아서는 안 가도 그만이겠다 싶은데 그래도 거기가 물건 값이 싸. 내 참.”

아침식사로 먹은 햄버거의 잔해들을 정리해 일어서려는데 H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나도 모르게 콧등이 시큰해졌다.

“아 참! 우리 사진 찍어야지. 이 쪽에 서 봐. 아니다. 저 쪽이 좋겠다.”

아내의 붉어진 눈가를 본 게 분명하다. J는 이미 후드득 떨어지는 눈물을 들키지 않으려 괜스레 천정을 올려다봤다. 그는 카메라가방을 둘러메고는 삼각대를 세울 위치를 찾는다는 핑계로 허둥대고 있었다. 밴쿠버라는 표시는 없지만 맥도날드 간판이 크게 보이는 자리에서 나와 H가 가운데 서고 내 옆으로 남편이, H의 옆자리는 비워둔 채 섰다. 왕년에 사진관을 했던 J가 구도를 잡는데 무척 시간이 오래 걸렸다. 타이머의 빨간 불빛이 숨 가쁘게 깜박거린 후 한 셔터가 끊기자 당연한 절차인 양 한 컷 더! 를 외치며 J가 카메라를 향해 달려갔다. 그러고도 비슷한 배경으로 열 컷도 넘게 셀프사진을 찍고 나서야 J는 카메라를 접었다.

“꼭 다시 올게요. 올 사람 없으면 우리 둘이라도 오면 되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던 H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내 목을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저 사람 또 한 몇 달은 잠도 못자고 술만 마실 거야.”

“꼭 와, 애들 다 데리고 꼭 와. 내가 다 준비할 테니까 비행기표만 사서 와. 알았지?”

남편은 비행기 시간을 핑계로 대답을 얼버무렸다. 반드시 둘이서라도 오겠다는 내 결연한 의지가 무색하게도 삼십 년 지기 이 친구들이 다시 만나게 될 확률은 거의 없는 걸 나는 안다.


J는 남편과 내 친정오빠의 고등학교동창이다. 한 반이었던 여덟 명이 늘 어울렸는데 그 중에는 나와 동갑인 동생이 있는 친구가 넷 있었다. 친구 동생이었던 내가 친구의 아내가 되자 친구들의 나를 대하는 호칭이 애매해졌다. 어떤 친구는 예전대로 무심히 이름을 부르다 말끝을 흐리기도 했고 똑 부러진 성격의 I는 깍듯이 존대를 했다. 이도저도 어색한 대부분의 친구들은 아예 나를 부르지 않았다. J는 세 번째 유형이었다. 학교 때 밴드부에서 수자폰을 연주했다는 그의 첫인상은 오빠 친구들 중 가장 상 남자 스타일이었다. 남학교에서 밴드부의 위상은 대단하다고 했다. 음악만 좀 한다고 해서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건장한 체격과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두루 갖춰야 한다는 얘기를 남편에게서 들었다. 외형상 J는 그 조건에 딱 들어맞았다. 그는 재능이 다양했다. 카메라가 드물던 시절이었는데도 늘 카메라를 가지고 다녔다. 나이가 차서 친구들이 하나씩 결혼을 할 때마다 사진촬영은 늘 J의 몫이었다. 산을 좋아했고 낚시왕이기도 했다. 하여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한동안 낚시점을 겸한 사진관을 할 때에는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됐다며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었다. 그랬던 그가 돌연 캐나다 이민을 결정했을 때 친구들은 그가 집을 세 채나 지었다 팔았다고 했을 때보다 더 멍해진 표정이었다. 세 딸의 교육문제라고만 말하고 그는 홀연히 한국을 떠났었다. 그 딸이 지난 해 결혼을 해서 지난 봄 친구 중 제일 먼저 할아버지가 되었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에는 헛웃음이 났다. 그야말로 늘 첨단을 걷는 친구의 행로가 나는 그저 부러울 따름이었다.

남편의 연수로 식구들이 모두 미국에서 일 년 간 살게 되었다. 캐나다가 어디인가! 아무리 친구가 그립다고 한들 한국에서 친구 보러 밴쿠버에 갈 생각은 친구들 술자리에 모였을 때

“그래 한 번 가자!”

호기롭게 외쳐보는 객기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래도 미국에서라면 얘기가 다르다. 혹시나 식구들이 싫다고 하면 남편 혼자서라도 다녀올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남편은 미국에서의 학업스트레스와 경제적인 이유를 들어 캐나다 여행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당황스러웠다. 남편의 친구를 만나러 가기위해 내가 남편을 설득하고 회유한 끝에 급기야 항공편으로 짧은 캐나다 일정을 잡았다. 여행을 앞두고 약간의 긴장감과 설렘으로 들떠있는 나와는 달리 남편은 덤덤했다. 비행기로 시애틀까지 가서 렌터카로 국경을 넘기로 했다. 시애틀에 사는 내 친구도 만나고 미국드라마에 나오는 스페이스니들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의 톰행크스도 떠올렸다. 이제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를 낯선 도시가 설레서 나 역시 잠을 이루지 못했던 것 같다.

J의 집은 밴쿠버 시내에서도 한 시간 정도 떨어진 시골에 있었다. 그 곳에서 그들 부부는 각자 무척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직장을 가지고 있는 그의 아내 H는 편의상 밴쿠버 시내에서 막내딸과 함께 생활하고 있고 J는 혼자 집을 지키고 있었다. 잡풀이 무성한 큰 마당이 있고 허름하지만 이국적인 집, 그 뒤로 우거진 숲이 모두 그의 소유라고 했다. H가 일주일에 한 번씩은 다녀간다고 했지만 각자 바쁜 그들의 일상은 이곳저곳 정리되지 않은 채 널브러진 살림살이가 말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이 남자 캐나다인으로 산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혼자 밥을 챙겨먹는 게 무척 서툴다. 집에 있던 달걀 한 판을 한 번에 부쳤는지 커다란 디너접시에 산처럼 쌓아놓은 달걀부침에 재료만 다를 뿐 두부 역시 듬뿍 부쳐 쌓아놓았다. 마침 떨어졌다며 국물만 남은 김치통을 긁는 그의 표정이 소년처럼 바알갛다. 보온밥통에 담겨있던 것 같은 밥은 언제 지었는지 주변이 말라붙기 시작했다. 평생 다시 못 받아볼, 투박하고 어색하나 그리움과 반가움이 계란과 두부처럼 쌓인 눈물겨운 저녁 밥상이었다. 김치는 떨어졌지만 소주는 많았다. 이십 년 만에 만난 두 남자는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술잔을 기울였다. 몇 시나 되었을까, 그 많던 두부와 달걀 접시가 비어갈 무렵 두 남자의 이야기는 자꾸 되풀이되기 시작했다.

“아, 내가 그 때 있잖아. 삼 반애들하고 한 판 붙을 뻔 했잖냐. “

“너 그거 알아? 나 퇴학 맞을 뻔했어. 아마 그랬음 00이 하고 처남매부도 못됐을 거야 그치? 하하”

“야, 근데 정말 너넨 언제 그렇게 된 거냐? 난 그게 궁금했어.”

이 얘기는 벌써 세 번째다. 이쯤 되면 서울의 어느 곱창집에서 라면 문 닫을 시간이라며 청소를 시작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화장실에 간다는 핑계로 자리에서 물러서서 두 남자를 보니 까까머리 고등학생은 없고 머리카락 허연 두 중년남자의 선한 눈꼬리에 물기가 맺혀있었다. 하지만 내가 보고 있는 건 껍데기일 뿐 그들은 지금 열일곱의 친구들과 함께 있을 것이 분명하다. 집 안을 둘러보았다. 구석구석 이방인의 공허한 외로움이 배어있었다.

다음 날에는 J가 하루 일을 접고 온전히 우리를 위해 하루를 내어주었다. 턱도 없이 짧은 우리일정에 그는 뭐부터 해야 할지 허둥거렸다.

“로키는 봐야지. 아! 안되나? 내일 간다고 했지? 아, 그럼 동쪽으로 네 시간 쯤 가면 무지하게 멋진 호수가 있는데 거기 가면 되겠다. 내일 기숙사 있는 애 데리러 가는 길이니까 오는 길에 들르면 되겠다. 그치?”

“안되지, 가느라 네 시간이면 오는 시간도 생각해야지.”

H가 차분차분 정리해주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비행기를 타는 대신 로키로 갔을지 모르겠다. 난 그 순간 비행기 따위 잊어버리고 싶었다. 남한의 삼분의 일 크기라는 밴쿠버 섬에 배를 타고 들어가서도 J의 핸들을 쥔 손은 부산했다.

“여기 말이야. 무척 아름다운 섬인데, 시간이 너무 없네. 그...그래 다른 덴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부처드가든은 가자. 거기 진짜 멋있어. 사진 찍을 거리도 많고...”

점심을 먹고 다시 출발을 해서 한 시간이 넘도록 부처드가든은 나오지 않았다.

“어? 이상하다. 지나왔나? 아! 지나쳤나보다. 어쩌냐?”

J의 난감한 표정이 핸들을 잡은 그의 손의 분주함으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숨 가쁘게 달려 다시 그의 집에서 이틀째이자 캐나다에서의 마지막 밤을 맞았다. 두 남자는 말 수가 부쩍 줄었다. 친구를 만나지 않고 귀국하려던 남편은 어디가고 그는 반가움과 안타까움에 깊어가는 밤을 붙잡고 매달리고 싶은 듯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장봐둔 재료가 하나도 없어 아침은 나가서 먹자며 H가 미안한 표정을 했다. J의 부부와 우리 부부 넷이서 밴쿠버 변두리 어느 맥도널드에서 모닝세트를 앞에 두고 마주 앉았다. 햄버거 치즈가 다 굳어지도록 쉬이 음식이 없어지지 않았다. 문득 생각난 듯 J가 먼저 입을 떼었다.

“ 아 맞다! 캠핑카가 사는 것보다 렌트하는 게 훨씬 싸고 편하겠더라? 우리 캠핑카 타고 캐나다 일주 한 번 하자. 어때 좋겠지?”

대답대신 고개를 숙여 떨어진 냅킨을 주워드는 남편의 눈에 맺힌 물방울을 얼핏 본 것 같았다.


우리가 탄 차가 멀어지도록 J의 부부는 맥도널드 앞에 서 있었다. 우리는 캐나다에 로키보다 소중한 오래 전 추억을 만나러 갔었다.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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