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의 도가니 vs 분노의 쓰나미

가족, 문득 그립고 때로 서러운 이름

by 이연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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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의 교육과정이 막바지에 왔다.

네 과목 중

하나는 성공 두 번 째는 실패였다.

첫 번 째보다 오히려 더 합격을 확신하던 두 번째 과목이 탈락이라는 통보를 받은 후

K의 후유증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보통은 무슨 일이든 시작하기 까지 스스로를 볶지만

끝나고 나면 뒤도 돌아보지 않는 것이 그의 성향이었기 때문에

옆에서 지켜보던 나도 꽤나 당황했었다.

살다보면 그런 일도 있더라, 라는 씁쓸한 교훈을 얻었는지 어떤지

이 후로 전의를 상실한 것 같은 모습에 마음이 다 짠했다.

세 번째 과목 실기를 남겨둔 요즘은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 하는 심정으로 다닌다고 했다.

수업의 분위기도 전처럼 치열하지 않고

될수록 맛있고 재미있는 요리를 즐기는 쪽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집에 돌아오면 가방에서 오늘 만든 음식들을 식탁 위에 꺼내 놓으며

음식 이름과 조리과정, 만들면서 있었던 일들을 얘기한다.

그걸 같이 앉아 먹으면서

어쩐지 어미가 물어다준 먹이를 받아먹는 아기새가 된 기분이 들고는 했다.


이틀 전에는 가방에서

샌드위치와 뭔가 비닐 봉투에 담긴 것을 한 무더기 꺼내놓았다.

스콘이었다.


“와! 이걸 다 당신이 만들었다고?”

“그럼! 연숙이가 좋아하는 것들이니 신나게 만들었지.”

“......”


손발이 조금 오그라드는 것 같기도 하고

목덜미가 간질거리는 것 같기도 한 것이

그 느낌은 분명 감동이었다.

일산에 살 때 반미 맛 집이 있었는데

K가 자전거를 타고 들어오는 길에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그 집에 들렀다.

방문 스티커를 열 개 모으면 아메리카노를 준다는 것도 몰랐는데

워낙 자주 오니 주인이 알아보고 어느 날엔가는 커피를 들려 보낸 적도 있었다.

그 동네에는 스콘 맛집도 있었다.

스콘을 좋아하지 않으면 맛집이 있는 줄도 몰랐겠지만

비싸서 자주는 아니었지만 가끔 사다 먹었고

이사를 온 후에도 그 쪽에 갈 일이 있으면 들러오고는 했다.

아침에 말한 것을 점심 때 쯤이면 잊어버리는 사람이 그걸 기억하고 있었다.


“이건 내일 점심으로 먹고 내일도 샌드위치를 만들 거니까 그건 모레 점심으로 먹으면 되겠다.”


와이프 점심 걱정까지 해주는 이 남자 덕분에

그 날 저녁 식탁은 감정의 도가니탕이었다.



집에서 같이 나섰고 승강기도 같이 탔는데

이상하게도 산책로에 내려섰을 때면 K는 저만치 앞 서 걷고 있다.

손에 뭘 들고 있을 때나 빈손일 때도

단추를 데리고 나갔을 때나 둘만 나갔을 때도

어느 틈에 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걷고 있다.

좇아가서 팔짱을 끼거나 손을 잡기도 한다.

그가 특별하게 뿌리치거나 하지 않는데도

조금 있으면 또 저만큼 멀어져있다.

그 거리가 멀리도 아닌 꼭 다섯 걸음 정도다.

내가 속도를 내봐도

혹은 일부러 속도를 줄여 봐도

신기하게도 거리는 늘 그 정도다.

그런 상황이고 보니

산책을 하면서 대화는 없다.

분명히 서운하고 때로 빈정이 상하기도 하는데

뭐라고 말을 하기는 싫다.

개학을 하기 하루 전 날

부모님 식사초대에 병원진료 등등으로

방학이라고 변변히 드라이브 한 번 못한 것 같아 산책을 같이 나가자고 했다.

그러자 이제까지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피곤한 기색을 하며

심지어 식탁에 팔을 베고 엎드리기까지 한다.

그 모습이 어이없어 단추만 데리고 집을 나섰다.

한 시간 반 정도 후에 집에 와 출입문 번호를 누르는데 문이 벌컥 열린다.

올 줄 알고 문을 열어 준거라며.

이게 대체 무슨 시츄에이션인지 모르겠다.

(나랑 산책 나가면 창피한가? 나한테 냄새 나냐? 내가 너랑 산책을 나가면 내가 단추닷!)

라고 쏘아붙이고 싶은 걸 마음속으로 꾹꾹 눌러 담았다.


그래 뭐, 사람이 어떻게 감동의 도가니만 기대하겠니

가끔 분노의 쓰나미도 겪어봐야

감동이 더 귀해지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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