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적인 무엇이 아닌, 현지화된 한국의 문화를 다루는 방법
오늘도 키워드 하나를 먼저 던지고 시작하겠다, 그건 바로
'그라데이션 K'
단순히 한국 문화의 해외 진출을 넘어 다양한 문화와의 융합 및 변화를 통해
새로운 형태의 한국 문화가 탄생하고 확산되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트렌드 코리아 2025에서 발췌한 내용인데, 해외 제작사가 케이팝을 소재로 영화를 제작해
대히트를 친 현재의 상황은 이 그라데이션 K를 대입하기에 최적의 상황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이 작품의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수많은 색안경이 눈앞에 벽을 치는 것 같았다.
애초에 케이팝을 크게 좋아하지도 않을뿐더러, '데몬 헌터스'라니 쉽게 클릭할 수 없는 제목이었다.
물론 내용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제목의 장점도 분명 존재한다.
그걸 감안해도 유치해 보이는 제목은 케이팝 팬 이외의 시청자는 포기했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래도 대히트를 했다고 하니 겨우 제목의 벽을 넘고 영화를 끝끝내 다 보았다.
늘 그랬듯 복합적인 감상이었는데,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이 영화는 한국 문화를 어떻게 전달하고 표현할지에 대해 또 하나의 훌륭한 답안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점점 그라데이션화되어 완전한 전통이 아닌 한국적 요소로 가득한 영화.
그러나 본질을 뭉그려뜨리지 않고 확실하게 했다는 점에서 인상적인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 이 대중적 열광의 원인은 무엇인지, 그리고 아쉬운 점은 없었는지
몇 가지 얘깃거리와 함께 글을 진행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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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채색을 논하기 전에 밑그림부터 짚어보겠다.
영화의 뼈대를 담당하는 스토리 구조는 아주 보편적인 문법으로 구성되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익숙한 실루엣을 형성하는
'왕도물', 전형적인 영웅서사가 바로 그것이다.
명확한 선악 구조, 그 경계선에 걸친 채 정체성의 갈등을 겪는 주인공,
개심하여 내면의 혼란을 극복하고 결국 동료들과 같이 악을 물리치는 결말부.
단순하고 직관적이면서 뻔하디 뻔한 서사 구조다.
그러나 이 구조는 서구권 기준에서 다소 마이너 하게 느껴질 수 있는
케이팝이라는 소재가 가진 거리감을 좁히는 데에 어느정도 도움이 되었다고 본다.
매기 강 감독은 '한국의 문화와 정체성을 세계적인 언어로 표현'하고 싶었음을 인터뷰에서 언급했다.
여러 한국문화와 이의 정체성을 표현한 여러 가지가 곧잘 전달되기 위해선
복잡한 스토리 구조는 오히려 추구할 필요 없는 욕심, 혹은 어쩔 수 없이 포기한 선택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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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은 그 자체가 무엇이라고 정의 내리기 어려운 것 같다.
음악 스타일도 부르는 사람도 가사도 모두 해외의 것들과 점점 섞이고 있다.
게다가 케이팝은 음악만으로 지금의 위상을 획득한 것이 아니기에 음악만으로 구분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케이팝은 장르로서의 위치를 가진다기보단 하나의 문화, 복합적인 문화콘텐츠에 가깝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음악이지만, 음악뿐 아니라 자체적인 SNS 콘텐츠, 단순 안무를 넘어선 퍼포먼스, 패션, 굿즈, 소통 앱 등 음악을 중심으로 여러 콘텐츠가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모두 팬과 가수의 감정적 연결, 공동체적 유대, 이른바 팬덤 문화 형성이 목적이다.
케이팝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던진 이유는 그 본질이 명확히 한국적이냐는 의문이 있더라도
결국 이것이 한국과 유리될 순 없으며, 일본 걸그룹, 유럽-아메리카인이 섞인 걸그룹 등이
등장하는 지금까지도 케이팝이라는 단어 자체의 지위가 흔들린 적은 없다.
물론 대형 기획사가 해외로 넘어가 외국인들로만 꾸린 이들을
케이팝 걸그룹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이나(일례로 JYP의 NiziU가 있다)
그들과 케이팝 그룹이 혼동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결론적으로 케이팝은 분명 하나의 거대한 문화로서 다른 국가, 음악 생태계와 구분되는
개성과 정체성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얘기하는 바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왕도물이라는 밑그림 위에 선명하고 강렬한 케이팝, 한국색을 과감히 칠했다.
제목무터 케이팝이 들어가니 당연한 것이지만 그저 배경과 설정만 빌린 것이 아니다.
케이팝이 팬들을 열광시키고 몰입을 유도한 구조가 그대로 영화 속 장치로 사용되었다.
헌트릭스와 사자보이즈가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 힘을 얻고, 영혼을 뺏고
팬들의 마음과 유대감이 절대악을 물리치는 데 동력으로 사용된다는 것
여기엔 골든, 소다팝 등 음악을 중심으로 여러 SNS 활동 등 다양한 교류가 동반된다는 점 또한 그러하다.
케이팝을 구성하는 '음악'과 '연대'라는 강력한 뼈대가 고스란히 영화로 이어진 것이다.
헌트릭스와 사자보이즈는 영화 내에서 아이돌이자 동시에 히어로, 악귀다.
그리고 이들은 영화 밖에서는 영화의 주인공이면서 또 하나의 케이팝 아이돌이다.
케이팝은 영화를 규정하는 정체성이자 성격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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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띠는 그라데이션의 가장 매혹적인 부분이 이 연출과 디자인이 아닐까 싶다.
전통은 거들뿐, 한국이 아닌 환경의 시선으로 본 한국문화가 다채롭게 영화를 채운다.
헌트릭스가 먹는 음식엔 김치와 불고기가 없고
악귀와 싸울 때 사용하는 무기는 옛 사극에서 볼 법한 도구에서 재디자인을 거쳤다.
무대 의상으로 보이는 그들의 전투복은 어째 사이버펑크 느낌도 난다.
주류가 오가야 할 것 같은 조명과 구도 아래에서 뚝배기에 담긴 설렁탕이 함께 한다.
루미와 진우는 북촌과 낙산공원에서 서로의 정체성에 대해 얘기하고,
한국화를 거친 까치와 호랑이는 영화의 아이콘이 되었다.
이렇듯 외부에서 대표되는 한국문화를 고스란히 전달한 것이 아닌 요소들을
영화의 서사에 녹아들게끔 하면서 재조립 과정을 거쳤다.
등장하는 사물, 배경 모든 것들이 한국적이지만 다른 무엇이 분명히 섞여 보였다.
창작자가 무엇을 관찰하고 아이디어를 얻어 재조립했는지, 이를 추측하는 것 자체가 큰 즐거움이었다.
강아지와 로봇의 관계를 다룬 애니메이션 <로봇 드림>의 감독 파블로 베르헤르는 인터뷰에서
작중 배경인 뉴욕을 영화의 또 다른 프로타고니스트 즉, 주인공으로 생각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마찬가지로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서울 역시 영화의 프로타고니스트다.
위에서 언급한 낙산공원과 북촌 말고도 다양한 서울 풍경들이 과하게 강조되지 않고 자연스레 녹아든다.
조경과 건축물에 더해 인물들이 서울에서 향유하는 한국문화는 하나의 주인공으로서 영화에 작용한다.
영화의 대흥행은 한국인뿐 아니라 외국인에게도 이 주인공의 존재감을 분명히 했음을 방증하는 것 같아
왜인지 모를 뿌듯함도 든다.
+ 하나 더 언급하자면 극장이 아닌 OTT 공개였다는 점도 주요했다고 본다.
OTT는 경계 없이 여러 국가의 문화콘텐츠를 향유할 수 있는 박람회 같은 공간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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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색감에 감탄하다가도, 캔버스 곳곳에 남은 얼룩과 빈틈이 아쉬움을 남긴다.
이 작품엔 이음매가 분명 부족하다.
수많은 캐릭터들의 신념과 감정선이 어떤 개연성을 갖는지 설명이 많이 생략되었기 때문이다.
강력한 이미지, 중독적인 음악, 코믹한 연출로 시청자의 눈과 귀를 붙잡아두고,
나머지 서사적 빈틈은 이해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가능성만 열어 놓고 넘어가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일례로 루미가 정체성 혼란을 극복하고 귀마와 싸우는 클라이맥스.
분명 혼란스럽고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자신을 죽여달라고 하는 지경까지 갔었는데
이를 극복하고 새로운 혼문을 만들겠다고 얘기하는 장면이 지나치게 빨리 나온다.
동료들에게 감추고 지낸 짧지 않은 세월, 노래할 수 없다는 두려움
루미를 몰아붙이는 여러 상황에서 어떠한 조력과 극복의 사건 없이 쉽게 절정으로 향한다.
그리고 영화는 이를 감추려는 듯 웅장한 노래로 틈을 메우려 하지만, 간단히 채워지는 틈은 아니었던 것 같다.
더불어, 까치와 호랑이의 작중 기능은 진우와 루미 간의 연락을 전달하는 정도다.
물론 이 정도로 기능해도 영화를 설명하기에 부족함은 없지만, 이는 연출이 조절하는 비중에 따라 다르다.
까치와 호랑이는 서사 내 어떠한 뒷설명이 없다. 등장 씬이 그리 많진 않지만 적지도 않다.
그럼에도 후반부엔 활약이 없다, 등장 자체가 거의 없다.
분명 각본상 분량을 할애했으리라 본다.
아마 넷플릭스의 러닝타임 제약으로 설명하지 못한 부분이 많았으리라.
이외에도 진우와 루미의 감정 교류가 부족하여 관계가 다소 급진전된다는 인상도 있고
조이와 미라가 악귀와 헌터, 그 역할과 관습에 대해 갖는 신념과 가치관도 나왔으면 좋았을 것이다.
매력적인 캐릭터들임에도 설명과 묘사에 풍부함이 부족했던 것 같다.
이는 짧고 강렬한 자극에 익숙해진 '쇼츠 시대'에 최적화된 전략이라고 생각하긴 한다.
그러나 어쨌든 영화라는 하나의 완결된 서사인 점을 고려하며 본다면
설정과 전개의 빈약함은 분명 단점이라고 생각한다.
알게 모를 경계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속편 제작이 확정되었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러닝타임 제약이 없어지고
보다 탄탄한 구조가 구축되어 개봉되면 어떨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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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마치며
한국문화를 무기로 해외 시장을 공략하려는 창작자들에겐 이 작품이 반가울 듯하다.
아주 좋은 선례를 남겨줬으니 말이다.

적절한 세계화란 비단 한 작품으로 절대적 설명은 불가하기에
이 영화만으로 시장 성공을 위한 해답을 얻었다고 보긴 힘들지만
영화 자체와 이에 대한 뜨겁고도 지속적인 반응은 분석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훌륭한 세계관을 꾸린 이 영화의 모든 제작진들에게 찬사를 보내며 이만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