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해력 가득한 위로, 앙증 맞고도 사랑스러운 이야기 <미지의 서울>
얼마 전 영풍문고에서 트렌드 코리아 2025의 서두를 읽었다.
열 개의 키워드 중 한 가지가 특히 눈에 띄었는데, 그건
'무해력'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심리적 안정감과 위안을 주는 존재나 콘텐츠가 주목받는 현상

도파민이 단어로서 이리도 일상적으로 쓰이는 광경을 과거엔 상상치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시대에서 '자극'을 우선하지 않는 콘텐츠는
그 성공을 가늠하기 힘들다.
갈등과 혐오의 시대가 현재 진행 중이고
상처 입고 입히는 사회 풍토는 여전히 사회를 지배하고 있지만
이러한 것들에 점점 위협과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의 반대급부로 해를 끼치지 않는 착하고 귀여운,
'무해력' 가득한 콘텐츠가 오히려 트렌드로 자리잡은 것이다.
인형, 미니어쳐, 이모티콘 너나 할 것 없이 순수하고 귀여운, 서투른 존재들이 인기를 끌고
이러한 현상이 드라마, 유튜브 등 영상 콘텐츠 세계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자극, 흥분, 갈등과 혐오 등 뾰족하고 격앙된 콘텐츠들이 온, 오프라인을 한바탕 휩쓸고 나니
이젠 생각을 비워주고 심박수를 늦추는, 안정감을 주는 것들에 서서히 시선이 가는 모양이다.
<미지의 서울>은 이러한 흐름에 부합하는 이야기다.
무해하지만 지루하지 않고 재밌기도 함을 보여주는 이야기.
그리고 수치로 보이는 성공까지 거둔 이야기인지라 글을 통해 다루고 싶었다.
유행은 돌고 돈다.
이번 유행도 언제까지 흐를 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나는 자극적이고 소모적인 것에 지쳤다.
그래서 이 시류가 최대한 오래가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
해악을 배제한 위안과 위로, 무해한 영향력만을 주는 드라마 <미지의 서울>
그것의 성공 포인트가 무엇인지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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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서울>은 분명 무해력 가득한 이야기다.
무해력은 작거나 귀엽거나 서툴지만 순수한 것들이 가진 힘이다.
그럼 배우는 작거나 귀엽고, 서툴지만 순수한 성격이 어울려야 한다.
이 뿐인가, 1인 2역이니까 컷이 바뀔 때마다 나와도 질리지 않아야 한다.
자극이나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 호감상이어야 한다는 의미다.
게다가 각각 다른 인물을 명확히 표현하고 묘사할 수 있는 연기력까지 갖춰야 한다.
박보영 씨는 더할 나위 없이 이 까다로운 조건들을 충족시킨다.
물론 박보영이 떠오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외관이 주는 대중적 호감도를 반박할 이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혹시 연기력에 반문하고 싶다면
그들에게 <미지의 서울>을 우선 보여주겠다.
그 이후엔 나의 의견에 분명 동감하리라 감히 예상해본다.
배우의 인지도와 인기가 흥행에 영향을 끼치는 강력한 힘인 건 분명하다.
다만 콘텐츠 포화 상태인 현재, 아무리 유명 배우가 출연하더라도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퇴장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래서 배우의 힘을 어느새 경시하게 되다가도
이런 작품을 보면 생각을 다시 고쳐 잡게 된다.
밝음과 사랑스러움이 기본값인 얼굴에서 그려지는
더 없이 어둡고 조용한 그늘
애써 그늘을 감추려는 상처 입은 미소
상처를 내보이고 다시 나아가려는 용기
그 용기를 타인에게까지 쥐어주는 온기
한 단어로 형언키 힘든 여러 감정과 태도가
너무나도 유려하게, 그리고 진심 가득하게 박보영은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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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2030 청년들을 겨냥한 위로의 각본, 확실히 닿았다.
몇 년 전부터, 아니 그보다 훨씬 전부터 이어지고 있는
2030 세대의 지나친 경쟁과 계급화
험난해질 일만 남은 사회 진출, 이에 따른 좌절과 무기력함.
여러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놀라움을 주는데
어째 어둠은 가시지 않고 천천히 세상을 잠식해 나가는 듯한 와중,
서른의 재도전 이야기는 언제나 애틋하다.
<미지의 서울>의 각본은 얼핏 판타지스럽고도 현실적인 재도전을 훌륭한 문장과 함께 녹여냈다.
그 자체로 대단한 문장이 명대사가 되기도 하지만
드라마나 영화에선 이야기의 상황과 맞물려 조화를 이룰 때
가히 명대사라 부를 수 있지 않나 싶다.
<미지의 서울>은 특히나 여러 대사가 시청자에게 주목받고 기억되는데
이건 단지 극 중 인물들과 사건뿐만 아니라
현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청년, 중년, 노년과 맞물렸기 때문일 것이다.
"어제는 끝났고, 내일은 멀었고, 오늘은 아직 모른다."
"아이고, 우리 번데기. 얼마나 큰 나비가 되려고 이러나."
"다 살려고 싸우는 거잖아. 미지도 살려고 숨은 거야.
암만 모양 빠지고 추저분해 보여도 살자고 하는 짓은 다 용감한 거야."
위로, 믿음, 애정.
손발이 오그라드는가?
그러나 이러한 감정들 없이 살아가기에 세상은 녹록치 않다.
극 중 인물에게, 그리고 현시대의 한국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이강 작가의 문장은 시청자의 마음 속에서 진하게 기억된다.

다만, 예쁘고 울림있는 대사지만
한편으론 너무 소중하기만 해 거리감이 조금 들기도 했다.
털털한 행동거지를 보고 더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기에.
게다가, 오히려 메시지 강조를 위해 대사를 지나치게 수단으로 사용하는 듯한 감상도 없지않았다.
극 후반부, 인물들은 부닥치는 갈등 속에서
서로가 불안을 잠재우고 상황을 나아지게 할 수 있도록 돕는 의미 아래,
'꼭 필요한 대사만을 주고받고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미지와 달리 미래는 캐릭터에 녹아 든 개인화된 대사와 상황보다
직장에서의 고통을 딛고 재도약하는 30대 직장인의 전형 정도로 작동하는 것 같았다.
세진과 상호 작용하며 더욱 돋보일 수 있는 순간이 있었는데, 그러지 못한 것 같기도 하다.
이는 후술 할 서사와 분량 부족으로 인한 문제로 추측한다.
그래서 분명 청년들과 진중하게 교류한 작품이지만
그건 미지에 한했던 것 같다.
미래의 개인화된 성장을 보여줬다고 보기엔 조금 힘들지 않나 싶다.
미래뿐 아니라 사실 후반부에선 이러한 감상이 곳곳에서 생겼다.
적은 시간 내에 어쨌든 메시지를 함유해야 했고
그래서 대사가 정말 극에서 필요한, 일상적임과는 거리가 있는
강력한 대사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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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는 90퍼센트의 익숙함과 10퍼센트의 새로움이라는 말이 있다.
'쌍둥이가 서로 역할을 바꿔 문제를 해결하고 성장한다.'
아주 독특하고 창의적인 소재라고 보긴 어렵다, 분명 기시감이 많은 설정이긴 하다.
다만, 익숙한데 귀엽다. 소위 말해 뽀짝한 배우가 당당하게 문제에 맞서 싸우는 과정을 보고
어쩐지 나와 우리 같아 점점 응원하고 싶어진다.
큰 기업에서의 사내 부조리 등 이야기는 확장의 가능성이 열려 있지만
서로를 의지하고 사랑하며 치유하고 회복하는 청춘의 흔적으로 규모는 유지된다.
물론 이것 자체가 기존에 보지 못했던 톤과 전개는 아니지만
확실히 다수의 콘텐츠와 반대의 기류를 탄 건 확실하다.
즉, 보편적인 설정과 배경이지만
그 사뭇 침착한 이야기의 톤과 속도에 10퍼센트의 새로움이 있다고 본다.
앞서 여러 번 언급한 무해력.
트렌드 코리아 2025의 내용을 인용하자면
무해력이 트렌드가 되는 시대에 이를 효과적으로 이용하려면
무해한 것을 전달함에 있어 진정성이 있어야 하고,
해가 없음과 매력 없음이 동의어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를 <미지의 서울>에 그대로 적용해 보자.
진정성은 더할 나위 없다.
이강 작가의 각본과 배우들의 연기는 청년들의 마음에 확실히 와닿았다고 본다.
진정성이 없었으면 흥행도 못했을 것이고, 이런 글을 작성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매력은 어떠한가.
이것이야 말로 아주 주관적이지만 위의 90/10 비율로 따져보자.
이 비율로 적절히 구성되면 드라마는 대중적 매력을 갖춘다.
쌍둥이와 부조리를 파헤치는 미스터리 요소, 그리고 로맨스가 90
사건과 갈등을 키우지 않고 자극으로 승부하지 않는 무해함이 10
이 정도면 꽤 훌륭하게 조화를 이뤄냈다고 볼 수 있다.
<미지의 서울>은 상업 드라마가 고려해야 할 요소를 충실히 지킨
와중에 개성까지 가준 웰메이드 드라마라고 감히 평한다.

그러나, 완전무결한 작품은 존재하기 어렵다. <미지의 서울>, 역시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좋은 작품이라는 데엔 이견이 없지만, 깊은 애정과 이해도를 동반한 시청은
어쩔 수 없이 아쉬움과 더 나은 방향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 밑으론 애청자의 아쉬운 소리를 짧게나마 적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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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부작이지만 회차가 적어 보이진 않는다.
즉, 이야기를 감당할 수 있는 충분한 분량임에도
미래와 세진의 서사엔 배분이 적다, 그것도 아주 많이.
이는 곧 여기서 파생되는 감정과 메시지의 힘이 떨어지는 것으로 이어진다.
주인공은 엄밀히 미지지만, 결국 중심 서사는
'직장에서 고통받는 미래를 대신해 출근한 미지,
이를 통해 미래와 미지 각기 상처를 극복하고 다시 나아간다.'이다.
즉, 미래의 시련과 극복 역시 드라마의 핵심 플롯이다.
그래서 나는 미래가 보다 주도적으로 극복하고 도약하는 모습이 보고 싶었다.

그러나, 미래의 사내 갈등과 개인의 태도 변화는
미지에게 할애된 로사식당, 호수와의 서사에 밀린 듯 보인다.
주요 인물은 당연히 모두 드라마의 주제와 어긋나지 않는다.
그러나 메시지의 핵심을 가진 주요 인물은 시청자가 자연스럽게 인식한다.
미지 만큼이나 미래 역시 메시지의 핵심을 지닌 인물이었다고 생각하기에 아쉽다.
물론, 미래의 이야기가 핍진성에 안 맞거나 이해 불가한 영역까진 아니다.
그럼에도 미래가 회사를 정리하고 미국행도 거절하고 딸기밭으로 다시 오는 데까지
그녀의 선택은 따지고 보면, 묘사된 것보다 훨씬 용기 있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풍부하게 다뤄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을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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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성공이란 화제성과 시청률, 상업적 흥행 여부를 판단하는 지표에서의 성공이다.
착한 드라마의 딜레마이기도 한데
자극적이지 않은 건 '좋음'을 넘어 신드롬이 되기엔 쉽지 않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같은 케이스가 있지만,
소위 사람들을 미치게 만들지 않으면 더 큰 성공을 거두기란 쉽지 않다.
<미지의 서울>은 신드롬이 되기엔 성질부터 거리가 멀다.
이미 무해한 드라마이기에 성공했고, 호평받았다고 언급했기에
화제성을 높일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는 게 모순처럼 느껴질 수 있으나
창작을 업으로 삼고 싶은 사람으로선
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해 볼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 개선하고 싶은 부분은 역시
'미래' 이야기의 확장 및 톤의 일부 변화이다.
미래가 겪고 있었던 사내 부조리, 저항했던 흔적, 타인과의 직접적 갈등
왜 투신까지 해 가며 무너졌었는지, 더욱 진하게 보여줬으면 어땠을지 궁금하다.
세진과의 만남과 개인의 쇄신을 통한 극복,
이어진 두손리에서의 생활이 더욱 빛나고 애틋하게 느껴지도록 말이다.
미지만큼이나 미래의 삶에 더 눈길이 가는 사람들이 있었을지도
그래서 어쩌면 미래를 더 사랑할 사람들이 더 많았을지도 모르니까.
(이러한 부분을 직접 수정할 재간은 없지만 말이다)
이러한 방향은 인물을 좀 더 자극적으로 혹은 잔혹하게 묘사해야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청자도 미래에게 공감하고 위로를 건네려면 그녀의 전후를 확실하게 알아야 하는 법이다.
'미래'의 미래도 결국 미지수였기에 '미지'와 더불어 그녀의 삶은 또 하나의 반격이 될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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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나는 이 드라마가 좋다.
서두에서 언급했듯, <미지의 서울>과
이에 연상되는 다른 이야기들은 모두 나에게 소중하다.
(박보영 씨의 팬이어서 더욱 좋아지는 것 같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미래는 미지다.
미지 투성이인 미래를 나는 잘 살아가고 싶다.
모두가 그랬으면 하는 바람으로
공감을 나눴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드라마를 권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