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널>, 다시 시작되는 우리의 무전

안녕하세요, 세 번째 글을 들고 왔습니다.
제가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된 이유는 그저 리뷰도 좋지만
흥행의 이유에 대해 주안점을 두고,
어떤 이야기가
어떤 사람들에게
어떤 종류의 사랑을 받는지
생각해보기 위함이었는데요.
최근 여러 드라마를 보고 의자에 앉아 곰곰히 생각해봤습니다만,
작품들, 저마다의 이유와 장점을 찾아보고 싶은데
항상 뭉뚱그려
'시청자 타겟팅을 잘했다.'
'초반 전개가 빠르다.'
이런 식의,,,
누구나 댈 법한 이유나 메모장에 써재끼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그래도 오래 곱씹다 보면 머릿속에서 배어 나오는 무언가가 있어서
약소한, 눈곱만큼 나오는 그것들을 한 방울씩 모아 써보려 합니다.
물론 <시그널>은 이러한 공정을 예전에 다 거친 것이지만서도요
<시그널>이 거진 10년이 지난 지금도 시즌2 제작이 가능할 만큼
기대감을 불러오는지, 그 찬란했던 성과를 짚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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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tvN에서 방영된 <시그널>은 가히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습니다.
6.3%로 시작한 시청률은 최고 12.5%까지 기록했죠.
TV 드라마에서 범죄 수사물은 마니아층을 끌어 모으고 이를 공고히 다질 수 있지만
장르적 한계를 고려하면 시청률의 상한선이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당시 tvN 내에서 '응답하라' 시리즈 다음 가는 기록을 세운 데에
크게 네 가지 포인트가 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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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바꿔서 현재, 그리고 미래를 바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그널> 시나리오의 흡인력을 설명할 수 있는 한 문장
제가 시나리오를 판매해야 한다면 이 문장을 먼저 던지고 이후의 이야기를 설명할 겁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가슴 아파하는 수많은 미제 사건들.
실제로 이 드라마가 방영될 당시에는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도 잡히기 전이었어요.
<시그널>은 바로 그 현실의 안타까움을 파고들었습니다.
과거의 형사와 무전을 통해 억울하게 묻혔던 사건들을 해결해 나가는 모습은
단순한 판타지를 넘어 시청자들에게 강력한 대리만족과 희망을 선사했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사람에 따라 간절하게 바랐을 지도 모르는 과정과 결과를
화면으로 완벽하게 구현하며 <시그널>은 시청자의 감정 깊숙한 곳까지
침투한 장르물이 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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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가 가장 강렬했던 드라마의 후보를 꼽는다면
저는 <시그널>이 그 후보에 마땅히 들어가야 한다고 봅니다.
드라마에서 초반부의 중요성은 몇 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죠.
콘텐츠 홍수 속에서 사람들의 시선과 집중도를 후킹할 수 없다면 흥행하기 어려울 거예요.
소위 말해 역주행이 힘든 세상이 되어 버렸죠.
<시그널>은 2016년 드라마지만 역시 이러한 추세를 어느정도 따른다고 봅니다.
범죄물인데도 시청자에게 추리하는 재미를 주기보단 쉴새 없이 몰아칩니다.
빈정거리고 정의롭지 못해 보이는 경찰 박해영(이제훈)이
베테랑 형사 차수현(김혜수)을 만나고,
의문의 무전기를 통해 시체를 찾아내 세상에 터뜨리기까지
다른 드라마라면 한 회차의 엔딩으로 사용했을 법한 이 모든 사건이 불과 50분 만에 일어납니다.
그리고 2화 시작 15분 만에 위 사진 속 범인을 검거하는 데 성공합니다.
<시그널>은 약 85분이라는 시간 동안
'누가, 어떻게, 무엇을 헤쳐 나갈 것인가'까지 드라마의 핵심을 모두 설명합니다.
인물 서사는 잠시 미뤄두고 오직 무전기가 어떻게 사건의 실마리를 푸는지 빠르게 보여주죠
드라마 내내 등장할 무전기와 공조가 주는 짜릿함을 시식대에 올려줍니다.
시청자를 정신 없이 만들다가 다음 회차까지 본식을 기다리게 하는 영리한 선택입니다.
+ 위 사진에 등장하는 오연아 배우의 임팩트도 한 몫했죠. 그야말로 개국공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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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널>의 상징인 무전기는 '만능 해결사'가 아닙니다.
만약 주인공들이 원할 때마다 무전기를 사용할 수 있었다면
그들은 고생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고 극의 긴장감도 당연히 없었을 것이죠.
오브젝트가 등장하는 정도와 활용성을 적절히 조정해야 했는데, 이것이 아주 성공적이었습니다.
기능적으로 완벽한 균형점을 찾은 것이죠.
꼭 필요한 순간에만 제한적으로 작동하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고리' 역할을 충실히 해냈고,
시청자들은 무전기의 존재에 의문을 갖기보다 그 절실함에 함께 빠져 들었습니다.
조진웅 씨와 김혜수 씨가 언제쯤 무전을 하게 될까,, 하면서요
즉, 후반부로 갈수록 무전기는 단순한 사건 해결 도구를 넘어
인물 간 감정 교류를 위한 도구로 발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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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짚을 점은 매 사건의 범인은 다르지만
이야기 내내 깔려 있던 적대관계는 분명했습니다.
여러 사건이 얼기설기 얽힌 실타래가
하나의 바늘 구멍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죠.
정밀한 설계를 해내는 김은희 작가님의 역량이 아주 놀라울 따름입니다.
세 번째 '대도 사건'부터 마지막 '인주 여고생 사건'까지,
모든 사건은 김범주 국장과 그 위의 국회의원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악의 세력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명확한 선악 대립 구도 덕분에, 추리물에 익숙지 않은 시청자들도
복잡하게 얽힌 사건들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드라마의 큰 줄기를 따라올 수 있었다고 봅니다.
각 사건의 범인들 역시 이들과 연관되어 있어
복잡한 두뇌 싸움 없이도 충분히 이야기를 즐길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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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작품이지만 역시나 아쉬운 점을 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완벽한 작품은 존재하기 어려우니까요
대중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은 당연히 필요하나 이것들이 오히려 아쉬움을 남길 때가 있습니다.
저에겐 압도적인 초반부의 반대 급부로 오는 희생된 디테일이 보였습니다.
무엇보다 연출상 '우연'에 기대는 듯한 장면들이 꽤나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일례로, 1화에서 범인을 발견한 것은 치밀한 프로파일링의 결과라기보다
2층을 우연히 올려다 본 박해영과 거리에서 마주친 차수현 덕분이었죠.
물론 프로파일링을 통해 수색 지역을 좁혔지만
비장하게 올려다 본 창문에서 얼핏 보이는 악역의 얼굴
그녀를 쫓는 두 주인공
디테일한 연출이라고 보기엔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
이외에도 '이제훈이 총을 맞는다'는 15화의 충격적인 사건을 위해
김혜수가 범인을 체포하는 과정은 허술하기 짝이 없고,
악당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때맞춰 나타납니다.
이러한 장면들은 속도감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수 있지만
장면을 조금이라도 뜯어 보는 사람들은
현실감이 부족하다고 느껴지지 않았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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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위에서 언급한 현실감과 연결되는 부분인데
주요 인물 외 비중이 적은 캐릭터가 평면적으로 보이는 건 흔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이를 생각하고 최대한 모든 캐릭터를 세밀하게 쓰는 경우가 있죠

<시그널>의 일부 인물은 이 지점에서 아쉬움이 있습니다.
형사기동대를 포함한 주변 경찰들의 모습이 지나치게 단순하게 그려진 점이 그러합니다.
특히 후반부, 박해영이 살인 혐의를 받게 되자 베테랑 형사들이 확증도 없이
그를 잠정적 살인자로 몰아가는 모습은 극적 긴장감을 위해
캐릭터들을 과장되게 묘사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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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몇 가지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시그널>은 훌륭한 작품이라고 자신 있게 얘기합니다.
지금 다시 방영된다고 해도 혹은 OTT에 방영되더라도
비슷한 성공, 혹은 더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시그널>은 차갑고 잔혹한 사건에서 출발하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바뀔 수 있다"는 따뜻한 메시지가 흐릅니다.
주인공들의 첫 동기 역시 정의 구현을 넘어, 옛사랑을 찾거나 친형의 누명을 벗기려는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에서 비롯되죠.
따뜻한 추리극이라는 명칭이 꼭 알맞습니다.

시대를 잘 탄 작품이 아닌
작품 그 자체로 균형을 완벽하게 유지한 웰메이드 드라마
곧 시작될 무전이 여전히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 다음 번엔 비교적 최근에 방영되는 드라마를 한 번 써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