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다 프로젝트>, 어땠지?

디즈니랜드의 그림자, 현실을 겉도는 위태로운 환상들

by 인절미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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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눈부신 색채로 그려낸, 우리 주변 약자들의 뼈아픈 도피처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 꿈과 환상의 세계인 '디즈니월드'

그 근처엔 여러 약자들이 켜켜이 쌓인 모텔들이 있다.

보통의 사람들에게 디즈니랜드가 현실의 고단함을 잊고 잠시 '환상'을 경험하러 가는 놀이공원이라면,

모텔에 사는 무니와 엄마 핼리에게는 그들의 삶 자체가 현실에 발 딛지 못한 채

둥실 떠다니는 거대한 환상이다.


그러나 그들이 억지로 포장해 놓은 즐거움의 껍데기를 벗겨내면,

그 안에는 처절한 경제적 궁핍과 타인의 싸늘한 시선이 고름처럼 가득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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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이 아닌, 일상으로부터의 뼈아픈 회피


무니, 스쿠티, 잰시 세 아이가 모텔 주변과 버려진 집들을 누비며 노는 모습은

언뜻 보면 동화 속 아이들의 신나는 모험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들의 뜀박질은 모험이 아니다. 그것은 지독한 현실로부터의 '회피'다.

교육의 사각지대에 놓인 채 방치된 아이들은 척박한 삶을 해소할 다른 방법을 모른다.

그저 본능적으로 눈앞의 우울을 지워내기 위해 더 자극적인 장난 속으로 도피할 뿐이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저마다의 속도로 '현실'이라는 중력에 끌려 내려온다.


무니의 친구 디키는 차에 침을 뱉는 장난을 치다 아버지에게 외출 금지를 당하고,

가장 먼저 뉴올리언스라는 현실로 떠나간다.

그다음은 스쿠티네 가족이다.

스쿠티의 엄마 애쉴리는 핼리와 함께 파티를 즐기며 철없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최소한 식당에서 일하며 생계를 꾸리는 등 현실의 끈을 쥐고 있는 인물이다.


아이들이 버려진 집에 불을 지르는 대형 사고를 친 후,

애쉴리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핼리와 무니를 매몰차게 배척한다.

무니와 핼리만의 문제는 아니었기에 애쉴리의 선 긋기가 다소 우습고 이기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위태로운 밑바닥 삶에서 자신과 아들만이라도 살아남기 위한,

약자 특유의 처절하고도 이성적인 생존 본능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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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니의 얼굴,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함이 아니기에


그렇다면 가장 늦게 현실로 당겨지는 무니와 핼리는 어떨까.

그들은 세상의 속도와 발을 맞추지 못한 채 끝없이 어긋난다.


하지만 무니가 마냥 상황을 모르는 철부지 어린아이인 것은 아니다.

밀린 방세를 구하기 위해 핼리가 낯선 남자들을 모텔 방으로 끌어들일 때,

화장실 욕조에 숨어 목욕을 하던 무니의 표정을 우리는 기억한다.

그 얼굴은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아이의 얼굴이 아니었다.

무니는 어렴풋이 자신의 삶에 생긴 거대한 균열과 어긋남을 감각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무니는 이 비참한 상황을 개선할 수도, 엉망진창인 엄마 핼리를 계몽시킬 수도 없다.

무니는 그저 디즈니랜드에서 티 없이 뛰어노는 것이 어울려야 할,

사회와 어른들로부터 전혀 보호받지 못한 '어린아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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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로 추락하기 직전, 잰시가 건넨 마지막 선물


결국 아동국 직원들이 들이닥치고,

무니가 그토록 외면하고 싶었던 진짜 현실과 강제로 마주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무니가 울음을 터뜨리며 도망친 곳은 친구 잰시의 문 앞이었다.

이때 잰시는 무니의 손을 잡고 냅다 달리기 시작한다.

매직 캐슬을 벗어나 진짜 디즈니랜드를 향해 내달리는 두 아이의 모습.


그것은 잰시가 무니에게 건넨,

현실로 완전히 끌려가기 전 허락된 마지막이자 가장 슬픈 '환상'이라는 선물이었다.


우리는 이 영화를 그저 먼 나라의 빈민가 이야기로 치부할 수 없다.

문화권의 차이를 걷어내고 나면, 한부모 가정,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들,

점점 세상의 궤도에서 이탈해 가는 소외된 약자들은 우리 주변 어디에나 존재한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우리에게 묵직한 다짐을 요구한다.

사회를, 그리고 그 안에 사는 인간을 결코 표면적인 색채로만 이해하고 판단하지 말자고.

그들의 척박한 이면을 들여다보고 이해하려 노력할 때,

비로소 우리는 환상을 환상으로서만 대할 수 있고 현실의 문제를 똑바로 직시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