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악마저 상속받는 지독한 천륜이여(스포주의)
가장 끔찍한 유산을 물려받은, 나약하고 비겁한 후계자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폭력은 세대를 건너 이어지는가.
자비에 르그랑 감독의 <후계자>는 이 무거운 질문을 짊어지고 시작한다.
파리에서 잘나가는 패션 디자이너로 막 커리어의 정점에 선 주인공 바르네스는
오랜 세월 의절하고 지냈던 아버지 장자크의 부고를 듣고 퀘벡으로 향한다, 어쩔 수 없이.
바르네스뿐만 아니라 어머니를 비롯한 장자크의 형제마저도 20년 전 그와 연을 끊었다.
혈연 중 누구도 그의 죽음에 슬퍼하지 않는다.
영화는 이 기묘한 단절 속에서 관객을 추측의 소용돌이로 끌어 들인다.
영화의 초중반부, 관객은 바르네스의 불안한 감정선을 따라감과 동시에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추측의 선을 긋게 된다.
"도대체 장자크는 어떤 괴물이었기에 모두가 이토록 그를 지워버렸는가?"
감독은 정답을 쉽게 쥐여주지 않는다.
다소 느리고 정적인 리듬 때문에 작가주의 영화에 익숙한 관객이라 할지라도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템포다.
그래도 본인은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본다.
관객이 영화 안에서 계속 생각하고, 의심하고,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게 만든다.
후계자는 관객을 능동적인 추리자로 만드는 데에 성공했다.
그리고 마침내 비밀이 밝혀진다. 와인 저장고 뒤에 감춰진 비밀 공간,
그리고 그곳에 갇혀 생활한 흔적이 역력한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
문이 열리는 순간, 가해자의 공간에 갇혀있던 여자도,
그것을 발견한 바르네스도 경악과 공포의 괴성을 지른다.
이 순간 영화의 진짜 모습이 민낯을 드러낸다.
바르네스가 장자크의 '후계자'인 이유는 그가 아들이라서, 아버지와 닮은 눈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다.
아버지가 저지른 이 끔찍하고 구역질 나는 '죄악의 현장'을 고스란히 상속받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관객을 좌절시키고 분노하게 만드는 것은
진실을 마주한 이후 바르네스의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막 정점에 오른 자신의 커리어가 무너질까 봐 경찰에 신고하지 못하는 이기심은
백번 양보해 그럴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그는 아주 수동적이다.
피해자인 여자를 지나치게 두려워하며, 문을 걸어 잠그고 음식에 수면제를 탄다.
잠든 그녀의 이불을 들추고 자신의 담요를 덮어주려다
여자가 기겁하며 도망치는 장면은 언뜻 변태스럽기도 하다.
이 비상식적인 태도는 어쩌면, 타인을 철저히 통제하려 했던 아버지 장자크의 폭력성이
바르네스에게 이미 전염(세습)되어 그를 소용돌이치게 만들고 있음을 보여주는 은유일 수도 있겠다.
다만, 이 과정에서 여자가 죽음에 이르는 연출은 분명 허술했다고 느낀다.
어두컴컴한 집안, 정체불명의 소리, 그리고 갑자기 숨을 거둔 채 쓰러져 있는 여자.
세심함이 결여된 작위적인 전개다.
들이닥친 기사를 피해 바르네스가 여자를 지하실로 거칠게 던져 넣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일련의 과정은 섬세하지 못함이 다소 아쉬웠다.
바르네스라는 인물의 성장이 정체되어 있음을 보여주려 했다 해도,
관객을 설득하기엔 그 이음새가 너무 투박했다.
영화의 결말부가 주는 충격과 냉소는 서늘하다.
여자의 시신을 남몰래 매장하고 치른 장자크의 장례식.
바르네스는 자신이 죽인(혹은 방치한) 여자가 다름 아닌
'장자크의 절친한 친구의 실종된 딸'이었음을 알게 된다.
장자크는 친구의 딸을 지하실에 납치해 두고서,
겉으로는 딸을 잃은 친구를 물심양면으로 위로하고 도왔던 것이다.
인간의 탈을 쓴 악마가 따로 없다.
장례식장에서 바르네스는 통곡한다. 그리고 곁에 선 장자크의 친구 역시 통곡한다.
한 명은 진실을 알고서 짓눌리는 죄책감과 끔찍함에 울고,
다른 한 명은 그 악마를 진정한 친구라 믿으며 상실감에 운다.
완벽하게 다른 두 눈물이 한 공간에서 섞이는 이 장례식 장면은,
영화가 만들어낸 가장 잔인하고도 압도적인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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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계자>는 가부장적 폭력의 상속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진득하게 보여준다.
끔찍한 진실을 다루는 감독의 뚝심은 좋았으나,
주인공의 답답한 행보와 중간중간 엿보이는 서사의 허술함은 짙은 아쉬움을 남긴다.
바르네스는 결국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또 다른 괴물이자 후계자가 되어버렸다.
나약함과 비겁함 역시 타인을 해치는 무서운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영화는 퀘벡의 차가운 눈밭 위로 서늘하게 경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