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슨 이야길 쓰고 싶었을까

좋아 좋아 너무 좋아 정말 사랑해

by 걍마늘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마음으로, 서랍 속에 처박아 둔 소설들을 뒤적거리고 있는 요즘이다. 다행히 브런치 같은 플랫폼을 만나 못질하기 직전에 관 뚜껑을 열고 산소호흡기를 댈 수 있었다. 덕분에 때려치울까 하는 마음을 조금 접었다. 해 보는 데까지 해 보자는 마음이 됐다. 쓰고 싶은 얘기가 많았던 시절의 에너지까지 전해져 온 기분이다.

사실 나는 글을 잘 못 쓴다. 솔직히 말하면, 하루에 A4지 절반도 못 쓴다. 매번 쓴 것보다 지우는 것이 더 많다. 남들한테는 초고는 뒤도 돌아보지 말고 쓰라고 하면서 정작 나는 뒤로 걷는 사람처럼 쓰고 있다. 끈기도 부족하고, 딱히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사람도 아니다. 하지만 쓰고 싶은 마음만큼은 장편소설 분량을 1년에 한 권씩 척척 써내는 사람들 못지않을 것이다.

도대체 나는 무슨 이야길 쓰고 싶었을까 생각하게 된 것도 요즘이다. 정확히 말하면, 쓰고 싶은 이야기는 있지만 왜 그 이야길 쓰고 싶은지, 하고 싶은 말이 무언지 깊이 생각하고 쓴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다 쓰고 나서 이런 얘기였나? 싶을 때가 많았다.

그런데 이참에 모아놓고 보니 왠지 그런 게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라고 딱 꼬집어 말하기는 어려워 고민하던 차에 어떤 소설의 한 대목이 떠올랐다.


어차피 한 번 엉망이 된 곳이니까, 다른 깨끗한 곳을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것보다야 나을 거야. 그럴까? 레거스는 외과 의사니까, 사람의 몸을 자르는 일에 익숙하다. 여러 가지 일에도 익숙하다. 치에코의 왼팔이 심하게 엉망진창이 되어서 원래 상태로 되돌릴 수 없다고 하더라도, 정말로 위급한 상황이 닥치면 잘라내 버리면 그만이라고 레거스는 생각하는 눈치다. 팔도 다리도 두 개나 있으니까, 하나가 없더라도 목숨을 잃는 것에 비하면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은, 말은 틀리지 않지만, 나는 생각한다. 목숨을 잃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그렇다고 그 소중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치에코의 왼팔은 소중하다. 치에코에게도, 내게도. 내가 셀 수도 없이 잡아왔던 치에코의 왼손. 그것이 사라져 오른손만 남았을 때, 치에코가 자기 가방을 오른손으로 들고 있다면, 나는 어느 쪽 손을 잡아야만 좋단 말인가?

정말 바보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치에코가 팔을 잃을지도 모르는 판국에 나는 쥐어야 할 손만을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는 안 돼. 나는 치에코가 느끼고 있는 두려움과 고통과 아픔을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야만 한다. 하지만 내가 정말로 쓸쓸한 것은 치에코의 손을 쥘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마이조 오타로는 순문학부터 장르, 만화 스토리에 번역, 평론까지 넘나드는 전방위적 작가다. 다른 글들은 읽어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거침없이 달리는 문체와 괴이하게 아름다운 감상의 전개가 나에게는 대단히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인간이란 본래 갖지 못한 것을 욕망하는 법. 그러니 그냥 취향에서 만족하는 걸로.

여하튼 그가 말한 쓸쓸함 같은 것이 내가 쓰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은 들었으나, 나도 나를 잘 모르는데 내가 내 소설에 대해 말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싶어 오늘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