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의 아이들, 비치
어떤 소설을 좋아하게 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는 어땠나 생각하다가 좋았던 요소들을 범주화해 보기로 했다.
1. 소년, 소녀가 만난다. 이때 소년 소녀는 진짜 소년 소녀일 수도 있고 소년, 소녀 같은 어른일 수도 있다. 불안한 청춘이면 더 좋다. 이들은 여정 중에 우연히 만나 함께 여정을 이어가거나, 우연히 만나 새로운 모험을 시작한다. 여정이 끝날 때 둘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전개이면 더 좋다.
2. 일상을 벗어나는 상황을 겪는다. 길을 잃거나, 낯선 장소에 도착하거나,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된다. 죽음, 이별, 사고 등과 같은 갑작스러운 사건도 나쁘지 않다. 휴가, 혹은 방학 중에 생긴 일이라든가 폭설, 폭우 등으로 인한 고립도 좋다.
3. 계절이 봄이면 시골이, 여름이면 바다나 섬이 좋다. 가을엔 성, 혹은 대저택에 머물고 싶고, 겨울은 산이나 산장에 가고 싶다. 도시는 밤이 좋고, 사랑은 낮이 좋다. 낭만은 밤이, 비극은 낮이 좋다. 그러나 반대도 나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어울리는 정서다. 계절과 시간을 알 수 없으면 더 좋다. 기간은 하루 정도. 길어도 일 년은 넘기지 않게.
물론 이런 소설들을 일부러 찾아 읽진 않는다.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다 읽기 전까지는 어떤 소설인지 알 수가 없으니까. 보통은 책 소개를 보고 대충 감을 잡은 다음 도입부만 읽어보고 책을 고른다. 성공과 실패가 대략 반반이다. 끝까지 읽은 소설과 읽다만 소설의 양이 비슷하다. 굳이 생각해 보니 이런 공통점이 있었을까 싶은 것이다.
어떤 소설이 매력적인 이유는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이유만큼이나 다양하다. 문체(필력)가 매력적인 경우도 있고, 주제 의식(작가의 문제의식, 가치관, 태도 등)에 감탄하는 경우도 있고, 대사가 좋아서, 구조가 훌륭해서…
게다가 누가 소설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 그때는 또 다른 기준을 생각하게 된다. 역시 검증된 고전이 좋지 않을까. 베스트셀러 중에서 골라볼까. 하지만 이 경우 대부분 실패했다. 대체로, 추천해 달라는 건 자기가 어떤 소설을 좋아하는지 잘 모른다는 뜻이고, 그것은 많이 읽어보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책을 선물하지 않았다. 책을 선물하고 싶을 땐 도서상품권을 주거나 차라리 원하는 책을 말해 달라고 한다. 추천이 도움이 되는 경우는 자신이 어떤 소설을 좋아하는지 잘 알 때뿐이다. 그리고 어떤 소설을 좋아하는지 알려면 일단 다양하게 접해 보아야 한다. 이성(연인)을 만날 때도 똑같지 않나.
얼핏 떠오른, 위의 조건에 모두 부합하는 소설은 황순원의 <소나기>였다. 소년과 소녀가, 대책 없이 산 너머로 놀러 갔다가 소나기를 만나고, 그 일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결국 소녀가 죽는다. 마지막까지 완벽하다.
그런데 참 이번 기집애는 어린것이 여간 잔망스럽지가 않어. 글쎄 죽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지 않어? 자기가 죽거든 자기 입던 옷을 꼭 그대루 입혀서 묻어달라구….
중학교 때였나. 교과서에서 소설을 읽고 난 후의 감흥은 대단했다. 지금 다시 읽어도 그때 느낀 감정이, 그 여운이 그대로 올라올 정도다. 마치 첫사랑의 추억 같다.
다른 작품은 또 뭐가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바로 떠오르는 작품은 없다. 사실 그것은 충분조건쯤 되는 거니까. 미인의 눈, 코, 입 중 하나 같은 거니까.
언뜻 두 작품이 떠올랐는데, 미리 말해 두자면 '추천'은 아니다. 궁금해서 읽어보는 것이야 말릴 이유가 없겠으나, 꼭 읽어 볼 필요는 없다. 누군가는 이미 읽어 보았을 수도 있고, 별로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아래 소개글은 이 점을 감안하여 슬쩍 넘어가도 상관없겠다.
하나는 김성중의 <허공의 아이들>이다. 어느 날 지구상의 모든 것들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어른들은 투명해지다가 사라지고, 세상에는 소년과 소녀 둘만 남는다. 집은 계속해서 떠오르고,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바다는 너무나 멋지다.
높은 고도에서 내려다보면 대지는 끓어 넘치는 진흙 수프처럼 보였다. 거대한 구덩이들은 모두 한복판에 검은 눈알을 달고 있었다. 끝을 알 수 없는 깊이로 뻥 뚫려 있는 그 눈알이 어쩌면 우주와 이어져 있는지도 모른다고 소녀는 생각했다.
(중략)
투덜거리는 했어도 소년 역시 오랜만에 보는 바다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해가 저물자 수평선에는 오렌지와 핑크 색이 섞인 구름이 리본처럼 드리워졌다. 그들이 볼 수 있는 건 끝장나는 세계뿐이었지만, 그래도 아름다웠다.
꼭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것 같네.
소녀는 반쯤 투명해진 어머니와 함께 포치에 앉아 비행기를 바라보던 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비행기에 탄 사람들은 최후의 희망을 가지고 무너지는 땅과 하늘 사이를 날아가며 필사적인 도피 중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과연 단단한 땅을 발견했을까? 아니면 어느 고도에 이르러 투명해지는 소멸을 맞이했을까? 어느새 비행기는 사라지고 하늘에는 긴 비행운만 남아 있었다. 소녀는 희망과 절망의 무늬들이 파란 하늘 속으로 완전히 흩어져버릴 때까지 포치에 앉아 있었다.
내 생각에 이 소설의 킥은 마지막 장면에 있는데, 언젠가 이 소설을 찾아 읽을지도 모르는 분들을 위해 남겨두기로 하고 일부를 옮긴다.
놀라운 곳을 지나고 있었다. 그곳은 말라버린 뿌리들의 숲. 지상에서 사라진 식물들이 떠 있는 곳이었다. 거꾸로 된 꽃다발처럼 풍성한 뿌리 뭉치가 있는가 하면, 몇 가닥 되지 않는 잔뿌리들도 있었다. 좀더 올라가자 잎이 다 떨어진 나무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이 풍경을 소녀에게 보여줄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온 세상의 부품이 공중에 떠 있어. 낱낱의 부품이 다른 세상으로 옮겨지는 중인 거야. 소녀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무들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소녀는 어떤 말을 들려줄까?
(중략)
소년은 기억에 사로잡힌 채 조금 울었다. 그러자 모든 틈이 맞물리고, 길이 떠오르고, 길 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그 사이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갑자기 노인이 된 기분이었다. 어딘가 끝이 있을 수밖에 없다면 나는 거의 다 왔어, 라고 소년은 생각했다. 소녀는 사라지고 소년도 사라지고 이 순간의 기억도 소멸될 것이다. 과일 사탕의 맛, 책 속의 사람들, 허공의 금빛 무덤, 시트러스, 사이프러스, 혹은 미노타우르스라는 발음, 옅게 부풀어 오른 소녀의 가슴과 애처로운 배…… 그 모든 것이 그와 함께 사라질 것이다. 소년은 허공의 거리에 매달린 기억의 왕국이었다.
다른 하나는 이상우의 <비치>다. 이 소설에 대해서는 소설집 뒤에 실린 정지돈의 해설을 옮기면 재미있을 듯싶다.
나(정지돈)와 금정연은 공동묘지로 가끔 산책을 간다. 금정연은 아무래도 <비치>의 판권을 할리우드에서 사갈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비치>가 영화화될 가능성은 없다고 했다. 왜요? <알로하(카메론 크로우 감독, 엠마 스톤, 브래들리 쿠퍼 주연)>를 봐요. 금정연이 반문했다. <비치>는 모든 게 완벽한 작품입니다. 특히 영화화하기엔 더할 나위 없지요. 대사, 타이밍, 인물. 나는 <비치>엔 상업 영화에 가장 필요한 갈등과 클라이맥스, 카타르시스가 없다고 말했다. 금정연은 고개를 저었다. <알로하>를 보고도 그런 소리를 하다니, 당신은 머저리군요.
나는 두 사람의 말에 반씩만 동의한다. 금정연의 말처럼 할리우드에 판권이 팔릴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정지돈의 말대로 이 소설에는 상업 영화에 필요한 갈등과 클라이맥스, 카타르시스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정연의 말대로 대사, 타이밍, 인물의 완벽함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또 정지돈의 말에 완벽히 동의하지는 못하겠다. 적어도 나는 갈등과 클라이맥스, 카타르시스를 느꼈기 때문이다.
<비치>는 이렇게 시작된다.
커튼을 젖히자 해변이 보였다. 사람이 없으니 파도는 의미 없어 보였다. 나는 유리창에 비친 벌거벗은 내 모습을 바라봤다. 목 주위에 벌건 자국이 있어 살펴보려 고개를 돌릴 때마다 몸에서 술냄새와 토냄새가 올라왔다.
- 어제 너무 많이 마셨나 봐.
여자가 이불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올리브톤의 피부와 초록색 눈동자. 그리고 자연스러운 금발머리.
- 누구세요?
이제 여자는 이모의 시신을 수습하러 가는 주인공을 따라나선다. 주인공이 이모의 시신을 수습하러 먼 외국땅까지 온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 가족 중에 마일리지로 비행기를 탈 수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거든.
주인공은 이모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인지도 기억 안 나는 사람이다. 스토리는 단선적이고, 정지돈의 말대로 상업 영화에 필요한 갈등도, 클라이맥스도, 카타르시스도 없는 여정이 계속된다.
소설 전반에 흐르는 정서는 허무와 냉소다. '나'와 싸우는 존재는 다름 아닌 자기 안의 또 다른 '나'가 아닌가 싶었다.
담배 연기처럼 몸에 해로운 허무로 가득 찬 주인공은, 누군지도 모르는 여자와 하룻밤을 보내고 함께 안치실로 가는 길에 딱 한 번 행복한 순간을 맞이한다. (작가가 동의할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이 부분이 소설의 클라이맥스 같았다.
메이는 몸을 길게 쭉 뻗고선 천천히 연기를 내뱉었다. 그러고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세탁소 안의 세탁기들 문을 열기 시작했다. 세탁소 가득 빨래 냄새가 풍겼다.
- 음악이 빠질 수 없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구석에 놓인 주크박스에 동전을 넣었다.
- <아베 마리아>라니. 세탁소 주인도 약을 빠나 본데.
음질은 후졌지만 멜로디는 성스러운. 카치나풍의 <아베 마리아>가 흘러나왔다.
- 춤을 춰야지.
메이가 내 손을 잡고 세탁소의 가운데로 끌고 갔다.
- 춤추기엔 너무 느린 음악이야.
- 고등학교 때 남자친구는 이런 느린 음악에도 춤을 춰줬어.
- 너 고등학교도 나왔단 말이야?
- 정말 경찰에 신고라도 하고 싶다. 커티스.
우리는 손을 잡고 춤을 췄다. 팔로 메이의 허리를 휘감는데 이상한 전율이 왔다. 매일 함께 이 짓을 해왔다는 듯이 자연스레 우리의 발이 함께 움직였다.
- 고등학교 때 남자친구랑은 왜 헤어졌는지 이야기해 봐.
- 갑자기 비가 오길래 헤어졌어.
- 이유가 좀 엉성한데.
- 정말 많이 내렸다고.
스텝을 밟을수록 바닥이 푹신푹신해졌다.
- 비라.
- 우린 약혼까지 했었어.
마치 솜사탕으로 만들어진 결혼식장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도돌이표 모양의 머리를 하고 있는 쿠션 천사들이 우리 곁에서 함께 춤췄고, 세탁기들은 우리를 보며 아주 행복한 웃음을 지어줬다. 그들은 너무 행복해서 그들의 동그란 입을 다물지도 못했다.
그리고 나는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러 마침내 카타르시스를 경험한다. 냉소가 지배하는 소설 속에서 유일하게 따뜻하고, 위로받는 느낌을 주는 대목들이다.
내가 수납장을 바라보며 가만히 서 있자 검시관은 나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투수와 어젯밤에 있었던 야구경기에 대해, 더 나아가 홍수가 났지만 매일 안치실에 나와 시신들을 받아들여야 하는 자신의 직업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이 이야기들을 들려주기 위해서 오늘 하루 종일 나를 기다린 사람처럼 굴었고, 나는 듣고 싶지 않아 전화를 받는 척 휴대폰을 꺼냈다. 나가기 위해 등을 돌리는데 문득 나에게서 무엇인가 새어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차 키, 지갑, 여권, 사진, 약상자. 주머니 속을 뒤져보니 모든 것들이 온전했다. 나는 손을 들어 천천히 얼굴 위를 더듬었다. 턱끝부터 시작해 입술, 코, 눈두덩이, 귓불까지. 손끝으로 얼굴의 선들을 모두 따라 그어봤다.
- 제 이야기 듣고 계시죠?
바짓단 밑으로 모래알들이 흘러내렸다. 검시관은 이제 가족사진까지 꺼내 보이며 지난 크리스마스날 덴마크로 떠났던 가족여행에 대해, 태어나서 처음으로 눈을 밟아보고 신기해하던 자신의 두 딸의 이름과 그 이름의 뜻, 그리고 그 아이들이 미래에 갖게 될 멋진 남자친구들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검시관의 이야기는 멈출 줄 몰랐고, 메이가 장난쳐놓은 내 주머니 속에서는 모래알들이 계속 바짓단 밑으로 새어나갔다. 아주 희미하고 낯선 감촉과 함께. 나는 검시관을 의자에 앉힌 뒤, 나도 그 앞 의자에 앉았다. 그는 말없이 자신의 손에 들린 가족사진을 바라봤고, 나는 바닥을 굴러가는 모래알들을 지켜봤다. 파도에 실린 바닷물이 모래사장 위로 쌓였다가 다시 흘러나가고, 그것들이 또다시 쌓여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소설들이 <소나기>와 비슷하다고? 의문이 들 수도 있다. 맞는 말이다. 나는 그저 내가 좋아하는 소설들의 공통점을 찾아보려고 한 것이다. <소나기>는 다른 소설들처럼 그 중 하나일뿐이다. 어쩌면 첫사랑 얘기 같은 것일 수도 있겠다. 오늘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