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에서 딸을 기다릴 때마다 만난 한쪽 발이 뭉뚝한 비둘기가 있다. 사고로 불구가 됐는지 애초에 그 모양으로 태어났는지 아무튼 녀석은 늘 태연하고 내 다리 사이로 아무렇지 않게 지나다녔다. 비슷비슷하게 생겨 구별이 되지 않는 비둘기들 사이에서 유달리 눈에 띄는 녀석이다. 장애는 녀석을 특별한 존재로 여겨지게 했다. 그것은 연민이라든가 동정이 아니라 씩씩함에 대한 감탄이었다. 어쩐지 친밀감이 느껴졌고 배울 점이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 평 남짓한 고시원 방에 처박혀 소설을 썼던 어느 날을 기억한다. 창문엔 커다란 포스터 족자가 걸려 있었다. 그날 나는 머리와 발이 벽에 닿을 정도로 작은 침대에 누워 <Are you going with me?>를 들으며 펄럭이는 족자를 바라보다 황량한 벌판에 가로놓인, 소실점으로 사라지는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떠올렸다. 어제도 내일도 심지어 오늘조차도 불확실한 시절이었다. 나에게는 그 길이 맞다고 지지해 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어깨동무할 친구가 한 명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용기를 갖고 계속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는 내 곁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까 골몰한 끝에 선택한 길이 소설이었다. 그저 행복하게 살고 싶었을 뿐인데 한쪽 발이 뭉뚝해진 기분이었다.
얼마 전 일이다. 종일 소설 속의 세계-300년쯤 후의 미래-를 헤매다 머리가 복잡해져 집을 나섰다가 어? 하며 놀랐다. 이거 뭐, 다 구식이잖아. 촌스럽고, 불편하고.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날아온 듯했다.
기분 전환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소설도, 나의 삶도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어디서부터 꼬였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을 때였다. 아내가 지나가다 나를 쳐다보더니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윗도리 거꾸로 입었네.” 아, 그래서 그랬구나. 하하하.
추석 전날 선물 같은 수상 소식을 접했다. 기회를 준 심사위원분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삶 자체가 크게 바뀌지는 않겠지만 덕분에 마음가짐은 크게 달라졌다. “포기하지 마. 포기하는 순간이 바로 시합 종료야.” 비둘기는 그때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녀석도 어디선가 잘 살고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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