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막 안은 온기로 가득하다. 한쪽에 아궁이와 조리대가 있고, 조리대와 만나는 벽에는 선반이 있어 갖가지 솥과 프라이팬과 그릇 들을 차곡차곡 포개어 놓았다. 그 아래 냄비와 국자와 뒤집개 같은 조리도구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아궁이에 놓인 커다란 솥에서는 연록빛 수프가 끓었다. 고소한 냄새가 식욕을 돋우고 보글거리는 소리가 허기진 속을 달랜다.
“생각보다 빨리 찾았군.”
고양이가 자기보다 큰 궤짝을 낑낑거리며 끌고 들어왔다. 나는 하마터면 조리대에 놓인 국자를 쳐 떨어뜨릴 뻔했다. 고양이가 두 발로 걸어 다니고 사람처럼 말을 해도 하나 이상하지 않은 세계였으나 적응은 또 다른 문제다.
궤짝 안은 책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맨 위에 놓인 책이 아무래도 눈에 익다. 도스토예프스키 사망 100주년 기념판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다. 한 세기 전의 스타일을 복원했다는 고풍스러운 장정보다도, 이사하는 집에서 내 놓은 헌책을 가지러 갔다가 온전한 컬렉션 한 질을 얻은 행운으로 기억하는 판이다.
“책을 훔친 게 너야?”
“훔치다니! 나한테는 생존의 문제라고. 대신 재밌는 책 줬잖아. 정말이지 교수 양반 하필 그 책을 사 가는 바람에 한국까지 와서 아주 생고생을 했다고. 비고 페데르센 선생의 그림책 말이야.”
“숲?”
고양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베니스에 있을 때는 말이지….”
“잠깐만, 그럼 교수님이 밤중에 책을 빌려간 날부터 서점에 있었던 거야?”
“그렇지. 고백하자면 그 즈음 어여쁜 여성분을 알게 됐거든. 밤늦게까지 같이 놀다가 돌아와 보니 어라, 책이 사라졌네. 별 수 있나. 동네도 낯설고. 일단 대추나무 옆에서 눈을 붙였지. 화분 많은 자리 말이야.”
“그날이 다음날이었구나.”
“그러고 보니 인사가 늦었네. 악당들한테서 날 구해줬잖아.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었는데 보시다시피 고양이라서 말이지. 초록 책은 보답이랄까. 그렇게 빨리 읽을 줄은 몰랐는데 언제 노란 책까지 다 읽었어.”
“그걸 어떻게 알았어?”
“여기서 만든 책은 다 읽고 나면 사라지거든.”
“사라져?”
그녀가 읽은 책도 그랬을까.
“너의 세상에서는.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책이랄까. 아무튼 그래. 그렇잖아도 한번 초대해야겠다 싶었는데 오늘이 될 줄은 몰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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