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소설을 썼을까

by 걍마늘

아내는 종종 내게 말한다.

"작가라면 작가처럼 말해야 되지 않아?"

이를테면 멋진 풍경 앞에서 "대박"이라고밖에 말하지 못하는 나를 향해 하는 말이다. 물론 그 뜻이 유려한 말솜씨가 아니라는 것은 안다. 그렇지만 또, 실제로 말주변도 없고 아는 것도 별로 없어 우리가 작가에게 기대하는 어떤 바를 충족시켜 주기에는 모자란 사람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꿈이 소설가는 아니었다. 초등학생 꿈은 (확실히) 만화가였고, 고등학생 때쯤엔 (막연히) 영화감독을 꿈꾸었다. 하지만 학창 시절엔 그런 꿈들을 고이 접어둔 채 대학과 내신 성적과 수능 따위를 삶의 최우선에 두고 살았다. 그럼에도 공부를 잘하지는 못한 것이, 공부보다는 딴짓에 더 열중하는 아이였기 때문이다. 틈틈이 영어 단어를 외우고 수학 문제를 풀었으면 좋으련만, 그 시간에 교과서와 문제집보다 비디오와 만화책, 소설책을 더 많이 봤다. 오렌지로드와 전영소녀에 열광하고, 드래곤볼과 슬램덩크를 눈이 빠지게 기다렸으며, 아다치 미츠루로 사랑을 배웠다. 영화는 채플린과 히치콕을 좋아했고, 소설은 영웅문과 이외수였다. 문학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이나 멀었다. 그때 문학을 아는 친구들은 뭘 읽었을까. 기형도와 신경숙, 하루키 같은 것이었을까.

대학은 성적에 맞춰 갔고, 끝내 적응을 못 해 도망치듯 자원하여 입대했다. 나는 군대에서 처음 윤대녕과 은희경, 전경린과 배수아를 접했다. 그전까지 내가 읽은 한국 문학은 교과서에 실린 황순원, 김유정, 김동인, 현진건 정도가 다다. 난쏘공도 몰랐고, 황석영도 몰랐고, 이문열은 삼국지만 읽었다. 세계 문학은 노인과 바다, 갈매기의 꿈, 데미안, 모파상과 오 헨리, 알퐁스 도데 정도였다. (평범했다는 얘기를 길게도 썼다.) 복무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가려니 암담해 제대하자마자 다시 대학 시험을 쳤다. 얼렁뚱땅 본 수능으로 대체한 내신이 다행히 고등학교 때 내신보다는 나았지만 (그만큼 엉망이었다는 소리다.) 입시 미술을 해 본 적이 없으니 그림 관련 학과는 안 되겠다 싶어 일단 영화과에 원서를 넣었다. 마지막이 문창과였다. 붙으면 가고 떨어지면 복학이라는 마음이었다. 큰 기대는 없었다.

그러니까 그때 다 떨어졌으면 소설 역시 한여름밤의 꿈으로만 남았을지도 모른다. 하필 문창과에 붙었고, 나는 그길로 달려가 다니던 학교를 자퇴했다. 벌써 소설가가 된 기분이었다. 지금은 어떻게 그랬나 싶는데 그때는 정말이지 한 점의 미련도 없었다. 4세 고시니 선행 학습이니 하는 요즘 친구들에게는 생각 없는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기대가 많았던 부모님에게도 죄송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어쩌고 하는 정도로 반대하지는 않으셨다. 자식 이기는 부모가 있냐고 하셨던가, 산 입에 거미줄 치겠냐고 하셨던가.

새해 첫날 아침, 따뜻한 이불속에서 뒹굴거리며 신춘문예 결과를 찾아보다가 너무 놀라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응모한 소설이 최종심에 오른 것이다. 역시나 큰 기대는 하지 않았었다. 공을 들인 작품은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어찌나 공을 들였던지 마감을 놓쳐 하는 수 없이 다른 곳에 보냈다.) 어쨌든 두 곳 다 연락이 없었으므로 언제나처럼 허무하게 또 한 해가 가는구나 싶었는데, 죽으란 법은 없는 모양이다. 내내 우울의 늪에 빠져 있다 덕분에 가까스로 기어 올라왔다. 희망고문도 이런 희망고문이 없다. 게다가 이 소설은 20년 전에 쓴, 처음으로 완성한 소설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공들인 소설들은 본심조차 올라 본 적이 없다. 알다가도 모르겠는 게 인생이라더니.

요컨대 쓰고 싶으면 계속 쓰라는 것이다. 쓰지 않을 이유를 찾지 말고. 쓰고 싶지 않으면, 안 쓰면 된다.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다 자기 인생 살기 바쁘다. 차라리 써야 하는 이유를 찾아라. 이런저런 고민을 하며 계속 쓰다 보면 결국 한계를 깨닫게 된다. 그것은 현실(환경)의 한계일 수도 있고, 능력(글솜씨, 혹은 감각)의 한계일 수도 있고, 성격(인내심)의 한계일 수도 있고, 그저 운빨의 한계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것이 죄는 아니지 않나. 괴로워하지 말고 그냥, 쓰지 못할 때까지는 쓰자. 이것은 한계 앞에서 쩔쩔매고 있는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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