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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식 Dec 03. 2015

아빠가 좋은 어린이집에 못보내 미안해

#42

며칠 전 아내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여기 OOO 어린이집이에요. 한 자리가 났어요."


아내는 놀라 "네?"라고 외쳤다. 얼마 전, 우리 부부는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서 아이를 데리고 건강검진을 받으러 갔다. 집 주변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고 싶어도 대기자가 많아 보낼 수가 없다. 그런 상황에서 걸려온 어린이집 전화였다. 며칠 뒤부터 0세 반 한 반을 더 만든다고 했다. 날짜가 급박해서인지 우리 앞 순위의 대기자들은 모두 거절한 것 같았다. 민간 어린이집이었지만, 기약없이 국공립 어린이집을 기다릴 수는 없었다.


아내는 온 집안에 '비상'을 걸었다. 이 기쁜 소식을 가족과 친구들에게 알렸다. 이제 아내도 육아에서 벗어나 사회에 복귀할 준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린이집에 갈 아이가 측은했지만, 한편으로는 육아에서 조금이라도 해방될 아내의 모습에 흐뭇했다.


그날 집에 가서 집 전체를 놀이터 삼아 곳곳을 기어 다니는 아이를 붙들고 한참 얘기했다.


너 어린이집에서 잘할 수 있겠어? 너 태어나서 1년 만에 첫 사회생활 하는 거야. 친구들이랑 잘 지낼 수 있겠어? 아빠는 괜히 마음이 짠해...


아이는 그저 실실 웃는다. 그러곤 내 품을 벗어나 기어 다니기 시작했다.


어린이집 상담날까지 우리 부부는 몇 번이나 길을 돌아서 그 어린이집 앞을 지나갔다. 우리 아이의 첫 어린이집은 겉보기엔 평범했다. 어떤 곳일까.어떤 선생님들이 있을까.





아이는 머리맡에 어린이집 가방을 두고 쿨쿨 자고 있다.

그날이 왔다. 우리 부부는 아이를 데리고 어린이집에 갔다. 어린이집은 집에서 5분 거리다. 그런데 그 5분이 참 길었다.


원장님과 마주 앉았다. 아내가 원장님과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 사이, 아이를 품은 나는 원장실 곳곳을 살폈다. 벽에는 온갖 알림 사항이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다. 책장까지 모두 살폈다. 곧 원장님은 우리를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데려갔다.


그곳에는 우리 아이와 함께할 아이들이 있었다. 방은 깔끔했지만, 전체적으로 낡아보였다. 장난감이나 시설이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 바닥에 깔린 카펫도 색이 많이 바랬다. 방 온도가 높지 않아 아이가 쌀쌀할 것 같았다.


괜히 마음이 짠했다. 아내와 내가 집에서 아이를 얼마나 애지중지하며 키웠는데, 이런 낡은 어린이집에 보내야 한다니. 그 생각을 하니 콧날이 시큰거렸다. 좋은 곳에 보내지 못해 아이한테 미안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하지만 이번 기회를 차버리면, 아이를 언제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동안 아내는 더욱 지치겠지. 그럼에도 말을 해야 했다. 짧은 상담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 솔직히 아내에게 말했다. “마음에 안 들어요.”


아내는 처형과 친구에게 전화를 돌렸다. 여러 의견을 듣고난 후 아내는 선생님을 믿고 한번 보내보자고 했다. 어린이집 원장님은 그 얘기를 했었다. “우리 어린이집 선생님을 하루에 8시간 이상 일하지 않게 하는 게 원칙”이라고. 이렇게 근무시간이 보장되면 선생님도 아이에게 더 잘 대해줄 수 있겠지. 부디 아이가 좋은 선생님을 만나기를. 고민 끝에 가까스로 아내에게 말했다.

그래요. 어린이집에 보냅시다.


글을 쓰고 있는 새벽 잠든 아이를 보니, 피천득 선생의 시 <기다림>이 떠올랐다. 나도 어느새 아이를 작은 학교에 보내는 아빠가 됐다.


기다림 – 피천득

 

아빠는 유리창으로

살며시 들여다보았다


뒷머리 모습을 더듬어

아빠는 너를 금방 찾아냈다


너는 선생님을 쳐다보고

웃고 있었다


아빠는 운동장에서

종 칠 때는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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