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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식 Aug 10. 2015

제 아내는 '경단녀'입니다

#31

아내는 경력단절여성이다. 이른바 경단녀. 아내가 아이를 낳은 지 정확히 8개월이 지났다. 내달부터 대학원에 다니는 아내는 일도 병행하려 한다. 특수전문대학원이라 일주일에 세 번, 저녁에 수업을 듣는다. 낮에 시간이 남는다 해도 공부와 일을 병행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이미 육아와 프리랜서 작가 일을 병행한 아내다. 옆에서 아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힘들지 않겠어요?’ 이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요즘 시대에 맞벌이 아니면 어떻게 살 수 있어요?”라는 아내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흔들지도 못했다. 특수전문대학원도, 박사과정이라는 아내의 꿈을 접어두고 돈을 벌기 위해 선택한 것이다. 아내는 이미 마음을 굳혔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갈 때까지, 장모님의 도움을 받자고 한 걸 보면.     


아내는 곧 구직활동을 시작했다. 공공기관이라면 돈은 적어도 나이, 경력단절 탓에 불이익을 받지 않을 거라 봤다. 공공기관 쪽 일자리를 알아보니, 임기제 공무원을 뽑는 공공기관이 몇 군데 있었다. 나도 공무원 남편이 되는 걸까. 한껏 기대를 키웠다.     


사실 공공기관 임기제 공무원의 월급은 많지 않다. 월급에 월 노동시간을 나눠보면 최저임금을 겨우 웃도는 수준이다. 최저임금에 더 관심을 가질 걸 그랬다. 내게 최저임금은 안타까운 청년들의 문제였다. 하지만 경단녀 역시 최저임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 공공기관의 임기제 공무원 모집 공고가 떴다. 비슷한 업무를 맡기는 다른 공공기관과 비교하면, 비교적 월급이 많았다. 또한 오후 5시 퇴근이었다. 아내는 여기에 집중하기로 했다. 마침 프리랜서 원고 작업 막바지에 있는 아내의 육아를 덜어주기 위해 장모님이 잠시 올라오셨다. 아내는 그때를 이용해 자기소개서와 업무계획서를 최대한 정성껏 썼다.     


며칠 뒤 아내는 직접 원서를 냈다. 다음날 서류전형 합격자를 발표한단다.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날 저녁, 아내의 휴대전화에 문자메시지가 왔다.     

‘서류전형 합격자가 게시되었습니다.'     

“어머” 아내는 깜짝 놀랐다. 아내에게 휴대전화를 건네 받았다. 면접전형 일시, 장소, 준비물을 안내하는 내용이었다. 아내를 얼싸안으면 말했다.

조금만 배려했다면 상처는 깊지 않았을 것이다
“서류 전형 합격 축하해요.”     

우리 부부는 홈페이지에 둘러봤다. 서류전형 합격자 공고 클릭! 스크롤을 내렸다. “어?” 아내의 수험번호를 찾을 수 없었다. 아내는 꽤 실망한 눈치였다. 인사담당자가 모든 지원자에게 문자를 보낸 것 같다. 아내는 경력 인정이 애매한 부분이 있었으니, 그것 때문에 탈락한 것 같다며 애써 담담하게 말했다.     


아내와 나는 그날 맥주 한 잔 들이켰다. “너무 실망하지 말아요. 이제 한 군데 서류 낸 것뿐이잖아요.” 아내는 다시 구직 활동에 나섰다. 그녀의 구직 활동을 응원한다. 아이를 낳은 뒤 다시 세상으로 나오려는 모든 엄마들을 응원한다. “경단녀 파이팅!”     


뒷날 이제 과거가 되어버린 그날 일을 생각하다가, 동질이라는 시가 생각났다. 내가 좋아하는 시 중에 하나다. 예전에 아내에게 들려줬더니, 아내가 참 좋아했다.               


동질(同質) / 조은     


이른 아침 문자메시지가 온다     

- 나지금입사시험보러가잘보라고해줘너의그말이꼭필요해     


모르는 사람이다     

다시 봐도 모르는 사람이다     

메시지를 삭제하려는 순간     


지하철 안에서 전화기를 생명처럼 잡고 있는     

절박한 젊은이가 보인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신도 사람도 믿지 않아     

잡을 검불조차 없었다     

그 긴장을 못 이겨     

아무 데서나 꾸벅꾸벅 졸았다     


답장을 쓴다     

- 시험꼭잘보세요행운을빕니다!     


- 조은 시인의 시집 <생의 빛살>(문학과지성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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