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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대식 Aug 17. 2015

아들아, 왜 “아빠”라고 못하니

#33

아이가 태어난 지 8개월. 아이가 자라는 게 하루하루 다르다. 언제까지나 갓난아이일 것만 같았는데, 이젠 제법 몸을 잘 움직인다. 장모님이 “설친다”고 표현할 정도로, 아이는 한 순간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아이를 어딘가에 두면, 그 반경 50cm는 초토화된다. 바구니가 있으면, 다 뒤집어 놓고 물건들을 빤다.


앞으로 기어 다니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제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아이를 보면, 벌써부터 골치가 아프다. 지난 일주일 동안 처가에 있으면서, 장모님이 주로 아이를 돌보셨다. 많이 고생하셨을 것이다. 그래도 장모님은 “아이가 건강하게 잘 자라면 좋은 것 아니냐”하며 웃으신다.     


아이는 자기 의사를 표현할 줄 안다. 배고프면 울기만 하는 아기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배부르면 먹지 않는다. 이유식이 담긴 숟가락이나 분유병 젖꼭지를 아이 입에 넣으려고 하면, 혀로 밀어낸다.      


아이는 답답한 걸 싫어한다. 아이를 꼭 안고 있으면,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내 품 밖의 세상을 보려 한다. 더욱 꽉 안으면, 아이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드러눕는다. 싫다는 표현이다. 목욕시킬 때는 앉으려 하지 않고 일어서려 한다. 주저앉히려 하면, 다리에 힘을 줘서 제법 버틴다. 엄마아빠가 안 보이면 큰 소리로 울고, 안아주면 그렇게 싱글벙글 웃을 수가 없다.      


아이는 요새 부쩍 옹알이가 늘었다. 그 모습을 보면 참 귀엽다. 아이가 최근에 이런 말들을 한다.     


“음마”, “옴마”, “엄머”...     


아이가 엄마를 알아보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이가 엄마를 보고 활짝 웃을 때는 엄마를 알아보는 것 같다. 최근 아이가 “엄마”와 비슷한 발음을 하는 걸 보니, 그런 생각이 더욱 확실해진다. 하루 종일 엄마와 같이 있으니까,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는 것도 이상하지 않으리라.     


아이가 말을 뗀다면 참 좋은 일이다. 그런데 내겐 작은 근심거리가 생겼다. 아이는 왜 아빠를 “아빠”라고 부르지 못할까. 주 양육자인 엄마를 먼저 말한 다음에, 아빠를 부르는 게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얼마 전 아내의 말에 충격을 받았다. 조리원 동기 엄마들을 만나고 돌아온 후, 내게 놀리듯 말했다.      

누구는 엄마보다 아빠를 먼저 말했고, 아빠를 더 자주 말한 대요. 발음이 더 쉬워서 그런 건가...     

웃으며 넘겼지만, 괜히 서운했다. 나름대로 아이와 잘 놀아주는 아빠라고 생각하고 있다. 야근하는 날이 아니면, 집에 가서 아이를 돌보고 씻기고 재웠다. 아이가 태어난 후, 저녁에 개인적인 약속을 잡은 날은 손에 꼽을 정도다. 주말에는 아내에게 자유 시간을 주기 위해 아이와 하루 종일 뒹굴기도 했다. 어제는 아내 없이 아이를 데리고 본가에 다녀오기도 했다.     


아이는 내가 퇴근해서 문을 여는 모습을 보고, 밝게 웃는다. 내가 안을 것처럼 팔을 벌리면, 아이도 안아달라고 팔을 벌린다. 아내는 곧잘 “아빠를 알아본다”고 말하기도 했다. 근데 이 녀석은 왜 아빠를 “아빠”라고 못하는 걸까. 그 뒤, 최대한 빨리 아이에게 “아빠” 소리를 듣기 위해 노력했다. 언젠가는 아이를 앉혀두고 아빠라는 말을 수십 번 하기도 했다. 물론 효과는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아빠”라는 말을 빨리 듣는 게 뭔 대수인가 싶다. “아빠”라는 말을 늦게 들어도 내가 좋은 아빠가 된다면, 언젠가 아이는 애틋하게 “아빠”라고 말할 것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참 많으니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 더욱이 좋은 아빠가 되면, 아이는 좋은 사람으로 클 것이다.      

엄마가 그렇게 좋니?

그러고 보니, 아이를 어떤 사람으로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구체적으로 한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얼마 전, 마종하 시인의 시를 읽다가 아이를 이렇게 키우면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관찰을 잘 하는 사람’으로 말이다.     


딸을 위한 시 / 마종하     


한 시인이 어린 딸에게 말했다.

'착한 사람도, 공부 잘하는 사람도 다 말고

관찰을 잘 하는 사람이 되라고.

겨울 창가의 양파는 어떻게 뿌리를 내리며

사람들은 언제 웃고, 언제 우는지를.

오늘은 학교에 가서

도시락을 안 싸온 아이가 누구인지 살펴서

함께 나누어 먹기도 하라고.'     


- 마종하 시인의 시집 <활주로가 있는 밤>(문학동네,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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