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촉한 마음
"예전엔 이렇진 않았는데 말이야."
나이를 어느 정도, 그러니까 가끔 내 나이를 생각하다 흠칫 놀라거나 틀리기도 하는 정도의 나이를 먹은 후ㅡ그렇다고 그 정도의 나이는 아님에도ㅡ로는 그런 말을 종종 하곤 한다.
가을이 왔다.
사실 9월에 들어서고도 늘어지는 더위 탓에 가을을 실감키엔 무리지만 계절의 변화보다 먼저 알아차리는 건 몸이었다.
아직은 이른 거 같은데, 손발이 건조해지고 살짝 스쳤을 뿐인데 상처 입기 십상이다.
" 아야! 앗? 이런 피.."
벌써 손 곳곳에는 상처투성이다.
'가을이 왔구나..' 하고 반창고를 꺼내 두른다,
핸드크림으로 촉촉하게 유지하면 절반은 해결될 것을 그러지 못하는 건 게으른 탓도 일정 부분 있겠지만, 끊임없이 물에 손을 담글 일이 생기는 주부이기 때문이랄까?
게다가 자꾸 물이 들어가니 회복은 더디고 하나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새로운 상처가 생긴다.
'봄여름은 핸드크림 없이도 생채기 날 일이 잘 없는데 피부에 수분공급을 신경 써야 하는 가을겨울이 왔구나.' 반창고를 뜯으며 생각한다.
손 곳곳에 난 상처는 물에 담글 때마다 쓰라린 통증으로 존재감을 알린다.
올 가을 들어 이미 여러 번의 상처와 지금도 엄지에 반창고를 두른 채 휴대폰 액정을 터치 중인 나는 요즘, 핸드크림 대신 뭐든 손을 뻗을 때 조심하는 습관으로 손을 유지보수 중이다.
건조주의보를 주의해야 하는 것은 피부뿐만은 아니다.
'우리 마음, 사람의 마음은?'
그런 질문이 스친 건, 인간관계를 통해서였다.
그때 내 손에는 반창고가 둘러져 있었다.
가을로 접어들자 같은 일상임에도 손은 쉽게 상처 입기 시작했다. 습도가 높은 여름은 그렇지 않았는데 건조함이란 그런 것이다.
'사람의 마음도 건조해지지 않게 들여다보아야겠구나..'
같은 상황에서도 누군가는 태연한데 누군가는 화를 낸다. 같은 말이지만 누군가는 흘려보내고 누군가는 꽉 붙잡는다.
내 마음이 조금 더 촉촉하면 손에 스치는 자극처럼 마음에 닿는 외부의 자극에도 상처 입지 않는다.
(아니, 덜 입을 수 있다.)
내 마음이 건조하고 팍팍하면 살짝 스치기만 해도 패이는 피부처럼 상처 입기 십상이다.
뾰족하고 날 선 말에 상처받지 않기란 어렵다.
마음이란 것은 피부와는 다르게 상처를 상처로 돌려주려는 고약한 습성이 있다.
그래서 어쩌면 손발보다 마음의 결을 더 살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남'은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사건사고'는 늘 뜻밖이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단 하나, 내 마음은 내 마음대로 가능한 범주에 있으니 <촉촉한 마음>을 위해 노력해야겠다.
그것은 세상의 부딪힘과 자극으로부터 내 마음을 아프지 않게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겨울의 길목에 들어선 이 가을의 길모퉁이에서
모두의 손과 발,
모두의 마음이
촉촉하기를 바라며 핸드크림을 집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