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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부라이프 May 28. 2022

뚜벅이 모녀, 예루살렘 가다!

1탄!

처음 시도는 코로나 락다운으로, 두 번째 시도는 코로나 양성 판정으로 이스라엘 여행은 무산되었다. 오기가 발동한 나는 세 번째 이스라엘의 문을 두드렸다. 고등학생 딸과 함께하는 예루살렘 도시탐험. 지금부터 시작이다.  

라브 카브 교통카드

2022년 5월, 이스라엘 벤구리온 공항에 도착했다. 코시국이 거의 끝나가는지 이스라엘을 들어가는 입국심사는 생각보다 간결했다. 그저 무리 지어 가는 인파의 흐름대로 쫓아가면 그뿐이었다. 검은색의 코트와 중절모, 그리고 긴 옆머리를 한 정통파 유대인들이 보였다. 드디어 온 것이다! 이스라엘의 밤공기는 약간 서늘할 정도로 상쾌했다. 바람을 타고 풍겨오는 도시 냄새는 여느 도시 냄새와 다르지 않다. 뉴스에서 보도되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분쟁, 테러, 갈등의 소식과는 달리 친근하고 포근했다. 

한산한 벤구리온 거리의 모습


 라브 카브(Rav-Kav)라는 교통카드를 사서 숙소를 찾아갔다. 공항에서 예루살렘까지 기차가 잘 연결되어 있고, 버스도 깨끗하고 편리하다. 숙소에 짐을 풀고 벤구리온 거리로 나왔다. 생각보다 사람이 없었다. 화요일 저녁인데 대부분의 가게들이 문을 닫았다. ‘예루살렘은 일찍 잠이 드는구나’하고 생각했다. 알고 보니 그날 저녁부터 다음날 해지기 전까지는 현충일로 군 전사자, 순국 희생자를 기리는 국가기념일이었다. 그날은 나라 전체가 슬픈 날인 거다. 하지만 내일 저녁부터는 완전 반전이다. 바로 독립기념일! 나라 전체가 정말 기쁜 날이 된다. 해가 진 후부터를 하루의 시작으로 생각하는 이스라엘의 문화를 피부로 느낄 수가 있었다. 아무튼 슬픈 날이니 빨리 잠을 청하는 걸로. 



5월 4일 수요일 오전.

준비해 간 햇반으로 아침을 먹고, 운동화 끈을 졸라매고 올드시티로 향했다. 오늘의 목표는 올드시티 남쪽 정복! 트램길을 따라 10분 정도 걸어가니 누르스름하고 거대한 성벽이 보였다. 예루살렘은 모두 베이지색 석회암으로 건물을 짓는다. 아예 법으로 모든 건축물은 예루살렘에서 나는 돌을 사용하도록 정해놓았다. 그래서 웅장한 올드시티의 성벽은 도시 안에 있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자파 게이트 앞

우리는 욥바 문이라고 불리는 자파 게이트(jaffa gate)로 들어갔다. 처음으로 방문한 곳은 ‘다윗의 탑’이다. 사실 성경에 나오는 다윗과는 상관이 없다. 요세푸스의 기록을 잘못 이해한 그리스도교 교부들에 의해 붙여진 이름이다. 기원전 2세기부터 있었다는 망대로 지금도 유물이 발굴되고 있다. 다윗의 탑 꼭대기에 올라가니 올드시티가 한눈에 보인다. 탁 트인 성 안 저 멀리에 황금돔이 보였다. ‘아! 예루살렘에 왔구나!’ 

다윗의 탑에서 본 올드시티 모습
다윗의 탑 안쪽 모습

다윗의 탑에서 나와 아르메니안 구역을 걸었다. 조용하고 단조로운 길이다. 그 길의 끝에는 시온 게이트(zion gate)가 있다. 시온 문을 지나 성 밖으로 나가면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을 하셨다는 곳으로 갈 수 있다. 좁은 철제 계단을 올라가 문을 열면 그 안쪽으로 자그마한 강당 같은 것이 있다. ‘최후의 만찬(레오나르도 다 빈치)’ 그림 때문일까? 마가의 ‘다락방’이라는 우리말의 친근함 때문일까? 성경에 나오는 장소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일까? 인위적인 아치 기둥들이 아쉬움을 줬다. 

마지막 만찬 장소라고 알려진 마가의 다락방

다시 시온 문으로 들어가 옛 로마시대부터 있었다는 돌기둥을 지나 알 악사 사원이 있는 황금돔과 통곡의 벽으로 갔다. 통곡의 벽은 서기 70년 로마 군대에 의해 파괴되지 않고 유일하게 남은 솔로몬 성전의 서쪽 벽이다. 유대인들에게 가장 귀한 장소로 여겨지고, 많은 사람들이 통곡의 벽 앞에서 성경을 읽고 기도한다. 남자는 왼쪽, 여자는 오른쪽으로 가야 하고, 기도문을 써서 돌 사이사이에 꽂아놓았다. 많은 유대인들이 성년식을 할 때도 이곳에서 하고, 안식일의 시작도 통곡의 벽에서 시작한다. 황금돔 사원이 있는 이곳은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성지가 된다. 황금색 지붕은 진짜 금이다. 

성전산에 지어진 황금돔 사원과 통곡의 벽

통곡의 벽 지하는 지금도 옛 솔로몬 시대의 유물부터 헤롯과 로마의 흔적이 발굴되고 있고 온라인으로 예약하면 가이드를 받으며 관람할 수 있다. 통곡의 벽 아래로 아래로 옛 흔적을 찾아 복원하려고 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집념이 보였다. 겹겹이 세월의 잔해가 덮여있는 땅 속을 보니 내가 밟고 지나가는 올드시티의 저 깊숙한 곳에는 어떤 시간이 숨겨져 있을지 궁금해졌다. 

아직도 유물이 발굴 중인 통곡의 벽 지하.

지하 투어를 하고 나와서는 라이온 게이트(lion gate)로 향했다. 사자문, 스데반 문이라고 하는 곳부터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가셨다는 비아 돌로로사 길이 시작된다. 빌라도가 판결을 내린 곳에서부터 십자가를 지신 곳, 처음 넘어지신 곳,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십자가를 지게 한 곳, 로마 병사에게 옷이 벗겨진 곳 등에 순서대로 번호를 매겨놓아 순례객들을 안내한다. 예루살렘에 한 번도 와본 적이 없는 16세기 유럽의 수도사들이 추정하여 정해놓은 곳이란다. 아직도 금요일이 되면 수도사들이 그 길을 행진한다. 


비아 돌로로사 길에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길이 표시되어 있다.

비아 돌로로사를 따라 걷다 보면 성분묘교회가 보인다. 그곳에는 예수님의 시신이 눕혀졌다고 하는 돌이 있는데, 많은 관광객들이 줄을 서서 그 돌에 입을 맞추고 기도를 한다. 그곳이 정말 골고다 언덕이었는지, 예수님의 무덤이 있었고, 부활하신 곳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예수님의 자취가 온통 관광지화 되었다는 것에 가슴 한쪽이 아려왔다. 매캐한 향내와 어두컴컴하고 음산한 분위기가 십자가의 사랑을 가리고 있는 것 같아 더불어 마음도 무거워졌다.

죽은 예수님의 시신이 있었다는 돌

모녀 뚜벅이는 이쯤에서 오늘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점심으로는 고기가 잔뜩 들어간 피타빵 샤왈마를 먹었다. 고소한 후무스(병아리콩 간 것)와 야채, 참깨소스가 고기와 어우러져 담백했다. 어른 손바닥보다 큰 피타빵에 잔뜩 속을 채워 넣은 샤왈마는 혼자서 하나를 다 먹기 벅찼다.

피타빵 샤왈마


어제 저녁부터 시작되었던 슬픈 날은 오늘의 해가 지면서 끝났다. 그리고 해진 후, 저녁부터 이스라엘의 독립기념일 시작이다! 이 나라의 제일 기쁜 날이 되었다. 알고 온 것은 아니었지만 얼떨결에 맞이한 흥겨운 축제에 어안이 벙벙했다. 벤구리온 거리에는 젊은이들이 가득 찼다. 손나팔을 불고, 국기를 두르고, 스프레이를 뿌리고, 춤을 춘다. 여기저기 노랫소리가 쩌렁쩌렁 울리고 도시는 들썩인다. 코시국이 무색하게 사람을 헤치고 다녀야 할 정도다. 젊은이들의 열기는 후끈하지만, 나는 발바닥이 화끈거렸다.

독립 기념일의 벤구리온 거리 모습

다리와 발바닥을 질질 끌며 숙소로 돌아왔다. 거의 2만보!!  뚜벅이 모녀의 예루살렘 도시탐험은 내일도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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