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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부라이프 Jun 04. 2022

뚜벅이 모녀, 예루살렘 가다!

2탄

오늘도 예루살렘의 하늘은 쾌청하다! 상쾌한 바람에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호기롭게 하루를 시작한다. 올드 시티로 향하는 트램길은 걷고 또 걸어도 좋다. 예루살렘의 베이지색 건물과 돌바닥이 하루 사이에 친근하게 느껴진다. 

팔팔한 십 대의 딸과 걷는 건 자신 있다고 믿은 엄마는 겁도 없이 감람산 등반을 시작했다. 성경에 나오는 감람산은 산 전체에 올리브나무가 심어져 있어서 올리브 산이라고 부른다. 오전에 통곡의 벽 지하 터널 투어와 가든 툼(예수님의 무덤)을 다녀왔지만, 아직 체력이 남아있다고 믿었다. 1 세켈 하는 길거리 빵을 띁어먹으며 올드시티 성벽 외곽을 따라 걸었다. ‘버스라도 탈걸.’ 하는 후회가 밀려올 무렵, ‘올리브 산(mt. olive)‘이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드디어 감람산의 초입에 섰다. 차들이 다니는 도로 옆으로 길게 이어지는 계단길이 보였다. '이 정도는 뭐! 쉬엄쉬엄 가보자!' 하는 결심도 잠시, 10분 정도 올라가니 가슴이 아려오도록 숨이 찼다. 가도 가도 끝도 없는 계단을 바라보며 혹시 잘못된 길이면 억울해서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감람산 전망대에 제대로 도착했다. 올리브 산 전체를 휘감아 불어오는 바람에 번지르르 흘렀던 땀이 씻겼다. 저 멀리 황금돔 사원과 돌로 막아놓은 황금 문이 보였고 그 앞에 아랍인의 무덤, 유대인의 무덤들이 보인다. 

감람산을 오르는 계단길
감람산 전망대

쉰들러 리스트 마지막 장면에 유대인들이 쉰들러의 돌무덤 위에 돌멩이를 하나씩 얹어놓는다. 변하지 않는 돌처럼 당신에 대한 기억을 영원히 간직하겠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렇게 돌이 얹어져 있는 돌무덤들이 소리 없이 누워있다. 산이라고 하기엔 낮고, 언덕이라고 하기엔 높은 감람산에 심긴 올리브나무들을 한참 바라봤다. 2천 년 전, 이곳 어딘가를 예수님과 제자들이 거닐었을 것이다. 예수님이 승천하셨고, 그리로 다시 오시겠다고 하신 곳, 멸망당할 예루살렘을 보며 우셨던 곳,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마지막 기도를 하셨던 곳이다. 

사진에서 제일 아래쪽은 유대인의 무덤, 성벽 쪽은 아랍인의 무덤이다.
올리브 나무가 많아서 감람산은 올리브 산이라고 부른다.

버스를 타고 ‘다윗의 도시’로 향했다. 여러 유적이 발굴되면서 이곳이 실제 다윗의 거처였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 기혼 샘, 히스기야 터널, 실로암 연못을 가 볼 수 있다. 지금도 물이 흐르고 있는 히스기야 터널 체험을 하기 위해 학교에서 단체로 온 아이들이 반바지에 샌들을 신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감람산을 다녀온 나는 엄두가 나질 않았다. 운동화 속 발가락이 아우성을 쳤다. 체력은 이미 소진되었고, 정신력으로 버티는 중이었다. 

다윗의 도시
이스라엘 정식 가이드인 이강근 박사님


터널의 입구까지 갔다가 포기하고 돌아가려는 찰나, 한국인 단체관광객들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그들을 안내하고 있는 가이드는 어디서 많이 본 익숙한 남자분이다. 이스라엘 여행 준비를 하면서 남편과 나는 많은 유튜브 동영상을 봤다. '걸어서 세계 속으로', '성지가 좋다' 등에 나왔던 이스라엘 정식 가이드 이강근 박사님이다! 눈이 마주치자 나도 모르게 인사를 했다. 같은 일행이냐고 하셔서 아니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냥 합류하라면서 히스기야 터널을 같이 가자고 하신다. ‘그 터널을 꼭 가야 하는 거구나!’ 


미국 한인교회에서 단체로 성지순례를 온 팀을 따라 얼떨결에 히스기야 터널을 들어갔다. 운동화와 양말을 손에 쥐고 처벅처벅 맨발로 수로를 따라 걸었다. 어른 한 명이 겨우 통과할 만한 좁은 터널에는 지금도 무릎 정도 높이의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불빛 하나 없는 어두컴컴한 동굴을 핸드폰 불빛에 의지해서 한걸음 한걸음 전진했다. 날카로운 돌바닥의 거친 표면이 맨발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한 줄로 줄줄이 걷고 있는 무리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걸어야 했다. 뒤에 쫓아오는 딸이 걱정되어도 돌아볼 수가 없었다. 그저 내가 가는 길을 잘 따라오도록 불빛을 비춰줄 뿐이었다. 

히스기야 터널


30분 정도를 걸어가니, 앞쪽에서부터 ‘거의 다 왔어요!’하는 소리가 들렸다. 반가웠다. 터널 끝에 놓아져 있는 계단을 오르니 작은 연못이 보였다. 예수님이 소경에게 가서 눈을 씻으라고 했던 실로암 연못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는데, 최근에 가까운 곳에 실제 실로암 연못의 한쪽 벽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히스기야 터널에서 나오면 바로 실로암 연못이 보인다.


히스기야 터널은 기원전 701년 앗시리아의 산헤립 왕이 예루살렘을 공격해왔을 때, 성 밖의 수원지인 기혼 샘에서부터 실로암 못으로 물을 끌어오기 위해 판 지하터널이다. 이 대규모 공사는 양쪽에서 뚫는 것으로 시작되어 중간지점에서 만났다는 기록이 있다. 그 옛날에는 변변한 장비도 없이 오직 도끼만으로 돌을 쪼갰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힘과 땀으로 수로가 뚫리고 성 안의 사람들은 물공급을 받을 수 있었다. 생명의 물길을 걸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했다. 기원전부터 물이 흘렀던 곳, 예루살렘 사람들을 살렸던 수로, 그 역사적 의미를 오롯이 받아내기에는 내 깜량이 부족한 듯 느껴졌다.   

 맨발로 간 히스기야 터널은 기분이 남다르다.


늦은 오후가 되어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축축한 바지를 입고 있으니, 체온이 떨어졌다. 서둘러 숙소로 돌아왔다. 

"봐야 할 것을 봤고, 가봐야 할 곳을 가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 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 시니라
-잠언 16장 9절-

오늘은 2만 2 천보를 걸었다. 내일은 또 어떤 곳을 가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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