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이른 퇴근을 한 날이었다. 안방에 ‘L. O. V. E!’ 풍선이 붙여있다. 머리까지 땀으로 범벅되고 벌겋게 상기된 딸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며 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별생각 없이 뚜껑을 열어본 나는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블루베리 요거트와 라면 스낵, 콩나물 불고기를 만들 수 있는 음식재료들과 편지! 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들이다. 이건 멀리 있는 친환경마트에서만 파는 건데! 얼굴이 왜 벌건지 알겠다. 자전거를 타고 거기까지 다녀왔구나!
“엄마 오기 전에 음식도 만들어놓고 깜짝 파티해드리려고 했는데, 엄마가 갑자기 너무 빨리 오셨어요. 그런데요 제가 맛있게 만들 줄 모르는 거예요. 너무 죄송해요.”
지난 내 생일을 너무 가벼이 지나간 것 같아 이번 어버이날은 잘해보고 싶었단다. 자전거를 타고 1시간을 가서 장을 봐다가 1시간을 다시 와서 숨고를 새도 없이 풍선을 붙이고 선물 상자를 꾸미는 찰나, 내가 들어온 것이다. 이렇게 감동을 주다니! 상자를 들여다보고 한참을 울었다. 2020년 어버이날. 딸이 중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우리 부부의 자녀계획은 ‘둘만 낳아 잘 기르자!’였다. 아들, 딸. 이렇게 딱 둘이면 다른 성별의 아이를 키우는 재미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난 아들보다는 딸이 좋으니 딸만 둘이어도 좋겠다고 했다. 허나 그게 어디 사람 뜻대로 되는 일인가? 첫아들을 낳고, 둘째도 아들인 것을 알고 나서 ‘교회에 남자 청년이 부족하니 내게 아들만 둘 주시는구나.’하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딸이 확실하다면 셋째를 낳겠지만 확신할 수 없으니 두 아들이라도 잘 키우자며 딸에 대한 마음을 접었다.
둘째가 세 돌 때쯤 되었던 것 같다. 셋째를 낳을 생각이 없으니 육아용품과 장난감에 파묻혀 제 모습을 잃어버린 집과 가구들을 깨끗하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자리를 차지하던 유아용품을 정리하고, 옷이 작아지면 바로바로 나눔을 하고, 필요 없다고 생각되는 물품이 보일 때마다 즉시 이웃에게 넘겼다. 아이 둘을 낳았어도 20대 후반이었으니 이제 몸매도 가꾸고, 다시 예뻐지고 싶어서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그러나 너무 무리한 다이어트를 했는지 생리주기가 불규칙해졌다.
그리고는 빠밤! 셋째가 생겼다. 남편에게 셋째를 가졌다고 얘기했다. 1초도 망설임 없이 다섯 손가락이 꽉 찬 가족이 제일 좋아 보였다고, 자기 꿈이었다며 너무 좋다고 함박 웃었다. 나는 내심 그동안 약까지 먹으며 한 다이어트가 아까웠다. 이제 좀 살만하다 싶은데 다시 힘든 열 달을 견뎌야 하고, 잠 못 자는 신생아, 영아기를 또 보내야 한다니 아득했다. 그리고 셋째마저 아들이면 난 목메달인가? 딸 딸은 금메달, 딸 아들은 은메달, 아들 딸은 동메달, 아들 아들은 목메달이라는데 아들 셋은 목을 메달아도 부족할 듯싶었다. 그래도 남편이 기뻐하는 모습에 힘이 났고, 생명을 주신 것에 감사할 수 있었다.
다행히 셋째는 딸이다! 막내라는 생각에 온 사랑을 쏟았다. 신생아를 쳐다보는데, 내 안에서 무언가가 아이에게 쏙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냥 그렇게 아이와 내가 연결이 되는 듯했다. 갓 태어난 아이가 왠지 내 마음을 다 알아줄 것 같은 기분. 너랑 나랑 이심전심이 되겠구나! 육아용품이 없어도 불편하지 않았다. 젖병 하나 없이 18개월까지 모유수유를 했다. 모유수유는 정말 편리하고 좋다. 아이와 엄마의 리듬이 맞기 시작하면 언제 어디서든 신선한 모유를 아이가 원하는 만큼 줄 수 있다. 따로 젖병을 챙길 필요가 없으니 내 가방은 항상 가벼웠다. 아이와 반나절 외출을 해도 작은 가방에 기저귀 2~3개, 물티슈, 가제손수건이면 끝이다. 작은 가방 하나 달랑 메고, 아이를 골반에 툭 걸치면 나무에 매달린 코알라처럼 안정감 있게 딱 붙어서 뛰어다닐 수도 있었다.
막내는 그저 수월했다. 어느 상황이든 ‘안 돼’라는 말은 한 번이면 족했고, 워낙 조심성이 많아서 컵으로 물을 마셔도 흘린 적이 없다. 잠투정도 없이 엄마 가슴에 손만 얹으면 편안히 잠이 들었고, 대소변을 가릴 때도 어른 변기를 바로 적용했다. 장난감이 없어도 주방도구들 몇 개만 꺼내 주면 신나게 놀고, 퍼즐 조각을 맞춰주면 한 조각씩 떼었다 맞췄다 하면서 반나절을 놀았다. 셋 키우기가 어렵지 않았냐고 물어보면 나는 이렇게 말한다. “아이 하나가 제일 어렵고, 둘이 그다음이고, 셋은 껌이다. 그러니 애는 셋 낳아라!”
애덤 그랜트 Adam Grant의 [기브 앤드 테이크]라는 책을 보면 타인과 상호작용할 때 ‘줄 것이냐, 받을 것이냐’를 선택하는 유형에 따라 기버(give), 테이커(taker), 매쳐(matcher)로 나눈다. ‘기버 giver’는 자신이 받은 것과 상관없이 최대한 많이 주고 싶어 한다. 반면, ‘테이커 taker’는 준 것보다 더 많이 받고 싶어 하고, ‘매처 matcher’는 주는 만큼 받고, 받은 만큼 주고자 한다.
이 아이는 분명한 기버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을 더 좋아하고 손해를 봐도 다른 사람이 이익이라면 얼마든지 희생을 감수한다. 빠릿빠릿하고, 욕심 많고, 열정 많고, 똑똑해 보이는 세상속 아이들과는 거리가 멀다. 이래서 험난한 세상에서 자기 실속은 챙기겠나 싶은 어리숙함에 안타까울 때도 있다. 그런 아이에게 신앙의 명품교육까지 덧입혀졌다. 사춘기나 중2병이란 말은 해당사항이 없다. 이제 한국 나이로 고2인 딸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집안 청소기를 돌린다. 빨래를 널어놓은 모양새는 구김 하나 없고, 설거지한 뒤끝은 물기 하나 없이 깔끔하다. 침대 이부자리며 책상 위를 정돈한 것을 보면 호텔방 저리 가라니 어디 내놔도 안심이다. 주말이면 이번 주중에 너무 엄마를 안도와드린것 같다며 혼자 반성모드다. 어른 공경할 줄 알고, 아이들 예뻐할 줄 알고, 친구들 사랑할 줄 아는 아이다. 바라보고 있으면 사랑스러운 그녀! 셋째는 선물이고 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