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저 다음 달에 한국으로 귀임해요.”
갑작스러운 그녀의 말에 나는 깜짝 놀라서 눈이 커졌다. 아부다비에 온 지 이제 일 년 반밖에 안 되는데 벌써 한국 귀임이라니. 게다가 아들은 한국으로 가면 고등학교 1학년 2학기로 전학을 해야 한다. 그녀에게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농담이지? 장난하지 마!” 난 웃으며 말했다.
학부모 모임에서 처음 만난 그녀의 첫인상은 환함 그 자체였다. 밝게 웃는 모습이 꼭 앤 해서웨이처럼 시원시원해 보였다. 아이들이 같은 학교를 다니고, 같은 아파트에 사는 것도 반가웠고 무엇보다 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어서 대화가 통했다. 첫 만남부터 뭔가 잘 통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느낌은 적중했고, 만날 때마다 울고 웃으며 쉽게 털어놓지 못하는 속마음을 서로 꺼내 놨다.
밝은 성품의 그녀에게 주어진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아부다비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의 교통사고가 있었고 그것이 수습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친오빠의 시한부 소식을 들었다. 아는 사람 없이 혼자서 속앓이를 해오던 그녀는 나를 만나고 조금씩 그 응어리를 털어놓았다.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 눈으로 조심히 상황을 얘기하는 그녀를 보며 나는 가슴이 아렸다. 안타까운 상황에도 마음이 아팠지만 거기에 적절히 위로하지 못하는 내가 더 답답하고 갑갑했다. ‘도대체 이럴 때는 뭐라고 위로를 해야 하는 거야? 이 안타까운 마음을 뭐라고 말하는 게 적절한 거야? 왜 학교에서는 이런 걸 가르쳐주지 않은 거야!’ 나는 잠자코 그녀의 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내 눈가에도 눈물이 맺혔다. 하지만 내가 그녀의 마음을 전적으로 다 공감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쩌니, 어쩌면 좋아.” 내 말은 공허했고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누군가에게서 안타깝고 슬픈 소식을 들으면 어떤 말이 적절한 건지 찾지 못해 당황하다가 고작 하는 말이라곤 “어쩜 좋니. 어떡하니” 그거다. 위로력이라는 말이 있다면 내게는 100점 만점에 겨우 10점이나 될까. 이런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사람들은 내게 속사정을 곧잘 털어놓는다. 그럴 때마다 “어쩌냐.”를 연발하다가는 내가 알고 있는 비슷한 얘기를 꺼냈다가 웃긴 얘기로 화재를 돌린다. 어린 자녀가 속상해서 울 때, 감정을 공감해 주기보다 관심을 딴 데로 돌리려고 화제 전환을 하는 그 잘못된 방법밖에 모르는 것이다. 잘못된 방법인 줄 알면서도 다른 방도를 알지 못하니 어쩌냔 말이다.
그녀와 맛있는 커피를 마시러 가기로 했다. 그런데 하루전날 연락이 왔다.
“내일 약속 취소해야 할 것 같아요. 내일 한국에 들어가야 해요. 오빠가 호스피스병동으로 갔대요.” 나는 또 머릿속이 흐릿해졌다. 할 말을 찾지 못한 나는 또 “어떡하니”를 연발했다. 오빠는 물 한 모금도 못 넘긴다는데 배가 고픈 자신이 한심하다며 엉엉 울고 있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니 명치끝이 아려왔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적당한 말이 생각나진 않았지만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전화를 끊고 부엌으로 가서 냉장고를 열었다. 이것저것 있는 재료를 꺼내 계란말이와 어묵볶음을 했다. 사다 놓은 곰탕이 있기에 그것도 챙겼다. 이 정도는 얼마든지 해줄 수 있다.
“자기 못 먹겠으면 남아 있는 가족들 줘. 가족 들 거 챙길 정신없잖아.”
쇼핑백을 받아 든 그녀는 또 펑펑 울었다. 그녀의 마음을 다 공감하지도 못하면서 위로랍시고 건네는 말은 초라하게 느껴졌다. 아파트 로비에서 한참 동안 얘기를 나눴다. 오빠 얘기에서 학창 시절 얘기로 또 어린 시절 얘기로 대화의 무게가 가벼워질수록 마음 한편은 가벼워졌지만 또 한편 답답했다. 이럴 때 발휘할 위로력이 필요한데 아주 난감하다.
‘좋은 위로란 함께 펑펑 울어주고 따뜻하게 안아주고 깊이 공감해 주는 것’ 이란건 이론적으로 안다. 허나 문제 앞에서 감정보다 해결책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나는 자꾸 솔루션을 찾아주려 한다. 위로가 필요한 대상 앞에서 공감보다는 ‘힘이 되는 말 한마디’를 찾기 위해 분주하다. 진짜 위로를 잘하는 사람은 어떻게 할까? 위로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면, 배운다고 좀 더 잘 공감해 주는 사람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계란말이와 어묵볶음은 진정 위로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