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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서치 힐데 Sep 26. 2024

Hilde in Paris -낯선 영어-

꽤 오래 손 놓고 있던 블로그에 지난주부터 포스팅을 시작했다. 글을 쓰는 것도 의미 있지만, 내가 쓴 글에 이웃님들이 공감해 주면 더욱 기쁘다. 하지만 울트라 개복치인 나는 소심하게 댓글과 공감 버튼을 없앤 채로 글을 올렸다. 좋아요 하트 개수에 마음 상할까 봐 나를 보호하는 차원이었다.


몇 달간 적조했던 나를 잊지 않고 예전 포스팅에 댓글을 남기거나 안부글을 건네주는 이웃님들에게 감동을 받아 다음 글은 용기를 내서 댓글 창을 남겼다. 그리고 다음글은 좀 더 용기를 내서 공감창을 남기고, 어제 쓴 포스팅에는 드디어 댓글과 공감란을 모두 남겼다.


https://blog.naver.com/justina75/223586282718

https://blog.naver.com/justina75/223592653056

https://blog.naver.com/justina75/223594006851

https://blog.naver.com/justina75/223595371608


오랜만에 다시 이웃님들과 교류하니 오래 소식을 못 나눈 친구들과 도란도란 그간 쌓인 이야기를 나누는 느낌이다. 소식이 궁금했던 이웃님 중 한 분은 네델란드에 사시는데 구직활동에 성공하셨지만, 네델란드어로 일하는 고충을 <지인들과의 스몰톡은 외국어가 아니었다>고 토로하셨다.


한국인들과 여러 온라인 영어스터디를 하지만, 아무렇게나 말해도 다 알아듣는 편안한 안전지대 안에서 소통만으로 영어실력을 만족스러운 수준으로 올리는 건 한계가 있다. 사무실을 함께 쓰는 조지아출신 동료와 별 어려움 없이 담소를 나누지만, 스몰톡을 진검승부할 수 있는 외국어로 포함하기엔 아쉬움이 크다.


같은 스몰톡이라도 한 시간 남짓 식사를 함께 하면서 토킹분량의 절반 정도를 담당해야 할 때는 진땀을 빼기도 했으니, 스몰톡도 아직 가야 할 길이 첩첩산중인 걸까?




독립연구자 신분이고 아직 연구기간의 초반부라서 문헌연구로 상당시간을 할애하기에 "진짜 실력"을 쌓을 수 있는 스피킹 기회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아 아쉽던 차에, 흥미로운 소식을 인트라넷 메일을 통해 받았다.


내가 일하는 기관에는 아직 토스트 마스터즈 지부가 없는데, 비슷한 유관 국제기구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있기 때문에 데모 버전을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거다. 토스트 마스터즈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15년 전이다. 하지만 그 당시는 가입해서 활동할 여력이 되지 않았다.


스터디원 중 토스트 마스터즈 멤버로 활동하는 분이 계셔서 어떻게 운영이 되는지를 귀동냥으로 대충은 들었지만 제대로 경험해 본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프랑스에서 행사가 제시간에 시작되는 걸 본 적이 거의 없어서 10분 정도 늦게 도착했는데, 시간관리에 엄격한 토스트 마스터즈답게 예정된 시각에 시작됐는지 이미 프로그램 소개를 한참 하고 있었다.




과연 몇 명이나 참석했을지가 궁금했는데, 약 30~40명 정도가 참관 중이었고 이 중 열명 가까이는 데모 버전 시연을 위한 토스트 마스터즈 멤버들이었으니 순수 참관객은 스무 명 안팎이었던 듯싶다. 나처럼 홀로 참석한 이는 거의 보이지 않았고, 대부분 동료들 두셋이 함께 참석해서인지 전체적인 분위기는 밝았다.


대중연설 역량을 높인다는 취지에 맞게 미리 준비한 7분가량 스피치를 진행하고, 이어서 그 자리에서 선정한 주제를 토대로 3명을 임의로 선정해 짧은 즉흥 스피치도 전개되었다. 연사가 되지 않더라도 모든 참석자는 역할이 부여된다. 누군가는 연사의 스피치를 평가해서 장단점을 이야기해야 한다. 이 평가자도 다른 총평 평가자에게 평가를 받고, 시간관리자에게 시간관리 측면에서 피드백을 받는다. 심지어 시간관리자도 평가를 받는다.


대중연설 스킬을 쌓는 것에는 관심이 크지만, 누군가를 비판적인 시선으로 평가하고 심지어 이 평가시간이 실제 스피치 시간 이상으로 소요된다는 점이 그렇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게다가 이 모든 과정을 굉장히 풍부한 어휘를 사용해서 즉석에서 시간강박까지 느껴가며 진행해야 한다는 점이 부담이 컸다.




만약 한국에서 퇴근 후 이런 유사한 프로그램이 직장 안에서 진행되었다면, 별 망설임 없이 참여를 결정했을 것 같다. 그런데 영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는 다양한 이들 사이에서 농담까지 섞어가며 재치 있게 즉석 스피치를 하는 것은 슈퍼 J형인 내게는 상상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쌓이는 상황이다.


한 시간 남짓 데모 버전을 경험하며 프랑스어에 비해 꽤나 쉽고 익숙한 언어라고 여겼던 영어가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아프리카 협력 업무가 상당비중을 차지하는 부서에 있어서인지, 프랑스어로 일하는 동료들이 제법 많다. 일상대화는 보통 불어로 나눈다.


외국어 실력을 향상하는 것이 관건이기에 내가 근무하는 기관은 점심시간을 활용해 외국어 수업을 제공한다. 유료이지만, 사설학원보다는 저렴하다. 슈퍼바이저는 이 어학과정을 수강하라고 부서원들에게 여러 차례 강조했다. 2주 전에 치른 반 배정을 위한 프랑스어 구술, 작문, 문법 레벨테스트 결과가 오후에 나왔는데 다행히 원했던 중급반에 안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낯선 영어를 경험하고 나니, 이렇게 영어를 도외시하고 프랑스어에 매진해도 되는 건지 갑자기 의문스러워진다. 30년 이상 공부한 영어도 우리말처럼 편하게 말하지 못할 때가 많은데, 10개 외국어를 구사하고 싶다는 내 인생목표를 과연 이룰 수는 있을까?


매일 스터디 자료를 공유해 주시는 버디님께서 5일 전에는 스페인어로, 그제는 독일어로, 어제는 중국어로, 오늘은 일본어로 공부의욕 불씨를 제공해주고 계신데... 나의 한계에 대한 의구심으로 가득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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