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마지막, 그리고 찬란할 30대의 첫 발걸음

모래위에 화려한 성이 쌓여가는 느낌, 그 느낌은 뭘까

by Justin
KakaoTalk_Photo_2026-01-17-00-18-46.jpeg 어쩌면 내 20대의 전부였던, 포항공과대학교

20대가 지나갔다. 돌아보니 순식간이었고, 눈이 시리게 행복했으나, 때로는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만큼 고단했던 여정이었다. 나의 20대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그것은 '모래 위에 성을 쌓는 시간'이었다.


나의 성벽은 늘 밖에서 보기에 화려했다. 포항공과대학교(POSTECH) 학과 최우수 박사 졸업, 우수 연구자로 국가 포상 예정, 옥스포드의 경험을 넘어, 이젠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교로의 향하는 여정을 시작하려는 지금까지. 2026년 1월, 내가 그토록 바라고 기다려온 일들이 폭발하듯 터져 나오며 기나긴 기다림의 마침표를 찍고 있다.


하지만 남들이 보지 못하는 그 성벽 아래의 발등은 늘 차가웠다. 전세 사기로 5천만 원을 잃고, 주식 실패로 6천만 원 넘게 날려 보낸 상처. 내 삶의 기초가 되는 '자산'이라는 모래가 속절없이 흘러내릴 때마다, 나는 내가 쌓아 올린 학문적 성취들이 언제든 무너져 내릴 모래 위의 성처럼 느껴져 밤잠을 설치곤 했다. 또한, 스스로의 진로에 대한 불안과 회의감,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끝없는 의심은 나를 보이지 않게 병들게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래밭에는 분명한 발자국들이 남았다. 중학교 시절, 과학고 면접장에서 긴장감에 말을 잇지 못하던 소년에게 심사위원이 건네준 따뜻한 물 한 잔. 성적은 뛰어났으나 결국 낙방의 고배를 마시고 세상이 무너진 듯 울었던 어린 나에게 선생님들은 '새옹지마'라고 말씀하셨다. 그 당시엔 위로조차 싫었던 그 말이, 이제야 내 인생을 관통하는 진리였음을 깨닫는다.


방황하던 대학교 1학년, 아무런 방향성 없이 그저 남들이 가는 대로 흘러갔던 석사 시절. 나는 내가 연구에 소질이 없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무모한 내기를 걸었다. "석사가 끝나기 전, 내 힘으로 SCI 논문 한 편을 써내지 못하면 박사는 포기한다."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아니면 간절함의 응답이었을까. 석사 2년 차가 끝나가던 11월의 내 생일날, 거짓말처럼 나의 첫 SCI 논문이 출판되었다. 그날, 나는 비로소 박사가 되기로 결심했고, 그 결심의 점들이 연결되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이제 나는 안다.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완벽한 방법은, 그 미래를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는걸. 스티브 잡스의 말처럼, 우리는 그저 우리가 가는 방향을 믿고 필요한 재료들을 모아나갈 뿐이다. 머리로 그리고 발로 뛰며 모아온 그 재료들이 어느덧 내 눈앞에 내가 그리던 미래를 실현하고 있다.


내 20대에게 인사를 건넨다. 많이 실패하면서도, 많이 이뤄보고, 무엇보다 많이 아파해 본 나에게 고맙다고. 그 당시에는 죽을 만큼 힘들었을지 몰라도, 그 고통의 시간 덕분에 나는 어떤 풍파에도 굴하지 않는 단단한 뿌리를 갖게 되었다고. 나의 성은 모래 위에 세워진 듯 보였으나, 사실은 수만 번의 실패라는 모래를 다지고 다져 만든 견고한 지반 위에 서 있었다고.


이제 서른이다. 30대의 나는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겪은 시행착오와 극복의 서사가 누군가에게는 다시 일어설 용기가 되길 바란다. 그 영향력을 죽을힘을 다해 극대화하여, 세상의 많은 이들에게 닿겠다.


혹시 모른다. 오늘 이 떨리는 고백과 결심이, 어쩌면 지금 흔들리는 모래 위에 서 있는 당신에게도 언젠가 닿게 될지.


이제 나는 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그리고 나의 한계라는 것이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나의 30대를 향해 내딛는다. 20대보다 더 치열하게, 그보다 더 뜨겁게 부딪히고, 기꺼이 실패하며 끊임없이 도전하겠다고 다짐하며. 눈앞에 길이 보이지 않는다면, 나는 차라리 벽에 부딪히는 쪽을 택하겠다. 부딪히고 깨지는 그 찰나의 충격 속에서조차 반드시 무언가 얻는 것이 있다는 것을, 나는 이미 온몸으로 배웠기 때문이다.


나의 30대는 20대의 아픔을 딛고 비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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