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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레테 클래식 Jul 02. 2024

7층 테라스에서

젊은 괴테의 집

어제 월마토 행사를 마치고 피곤한 나머지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골아 떨어졌다. 그런데 일요일 이른 아침 전화 한 통이 나의 단잠을 깨운다.


"재영 씨, 혹시 걸은리에서 주무시고 계셔요? 우리 7층 테라스에서 같이 일하고 있는데 비 온 뒤 풍광이 너무 좋아서. 우리만 보기 아까워서 전화드려요. 괜찮으시면 천천히 챙겨서 이리로 오셔요. 같이 얘기하면서 일하니 너무 재미있고 좋네요. 우리끼리 보기 너무 아까워서 아침 일찍이지만 이렇게 무례를 무릅쓰고 전화했어요. 그런데 서두르지는 않으셔도 돼요. 천천히 오세요."


나는 교수님의 말을 이렇게 꼭꼭 씹어서 되돌려 드린다. 그녀의 음성에 담긴 염려와 배려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네, 천천히 준비해서 올라가겠습니다. 꼭 그렇게 할게요"


간단히 세수하고 7층 테라스로 올라갈 준비를 마쳤다. 그단새 또 부재중 전화 한 통과 메시지가 도착했다.


"재영 씨 차 좋아서...

비탈 시작되기 전에 두고 오는 것도 좋겠어요.

자갈 깐

고속도로^^ 에

물길 만드느라 군데군데 도랑 파놓았거든요."


그녀는 내 걱정을 넘어 이제 내 차가 산길에 긁히기라도 할까 봐 또 이런 메시지를 보내셨다. 나는 또 이렇게 답신을 보냈다.


"네"


7층 테라스는 괴테 마을 뒷 산 중턱에 있는 7층 짜리 밭이다. 괴테정원집 사이의 소로를 따라 올라가면 널찍한 밭 하나가 있는데 거기는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괴테의 생가를 지을 본관 터가 나온다. 그 넓을 터를 가로질러 가면 넓은 숲 속 길이 이어진다. 나의 평범한 포폭으로 산 길을 올라가다가 숨이 차오를 즈음 하늘로 길쭉하게 뻗은 버드나무 한 그루를 만나게 된다. 그 웅장한 나무가 서 있는 곳의 왼편부터 3층 짜리 연못이 시작된다. 1층, 2층 연못에는 교수님이 틈틈이 옮겨 놓은 수생 식물이 자라고 있고, 3층 연못에는 자생하는 갈대가 자라고 있다. 그리고 그 위로 4~7층 까지는 밭이 층층이 쌓여 있다. 4층 밭에는 몇 해 전에 심어 놓은 포도나무, 복숭아나무와 연연한 꽃들이 자리 잡고 있다.


교수님의 설명에 따르면 1층 연못 반대편에 있는 느티나무가 북극성이고 북두칠성을 상징하는 총 7개의 소박한 오두막들이 만들어지게 될 거라 하신다. 5층에는 4개의 책 오두막이, 6층에는 괴테 천문대와 온실, 그리고 7층에 오두막 하나가 지어지면 북극성을 지향하는 북두칠성 7층 테라스의 완전체가 될 거라 하신다.


속도와 물량의 시대! 불필요한 것들을 얻으려 죽을 듯이 달려가는 많은 이들이 멈추어서 생각해 보기를 바라는 마음! 이 거대한 자본주의적 메커니즘 속에서 부속이 되어 그저 마모되지 않고 멈추어 자신이 진정으로 지향하는 바를 고민해 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7층 테라스를 고민해 오신 듯하다. 평화로운 일요일 아침에 그녀가 나를 불러 이곳에 세운 이유도 바로 그런 것이었으리라.


내가 이곳에 도착해 보니 제주에서 매월 마지막 주 봉사하고 계신 강 선생 님과 함께 올 가을 이곳을 아름답게 수놓을 코스모스를 심고 계셨다. 교수님은 여백서원을 짓고, 10여 년이 넘는 동안 혼자 나무를 심으셨다. 이제는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괴테의 여러 집들을 짓고 힘께 만든 이 터에서 여럿이 멈추어 쉬어가고 또 배우기를 꿈꾸고 계신다. 오늘 아침에는 그 곁에서 함께 모으는 강 선생 님이 계셔서 너무 감사했다. 그리고 영문을 모르고 불려 온 나도 미약하나마 힘을 보탰다.


그리고 이제 믿지도 않는 신께 잠시 기도했다.


"늘 혼신의 힘을 다하는
그녀의 건강을 지켜주시되,  
그 뜻한 바-괴테 전집 완역-가 완성될 때까지
특히 그녀의 눈을 보호해 주소서"


교수님이 매진하고 계시는 괴테 전집 번역은 세계문학사에도 전무후무한 프로젝트이다. 대문호 괴테의 방대한 책을 학문의 깊이를 더한 학자가 혼자가 완역해 내는 것은 괴테가 수많은 책들을 창작한 것만큼이나 의미가 있는 일이다. 무엇보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소홀히 하지 않는 대단한 집념을 잘 알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부디 수많은 일들 속에서도 후학들에게 울려 퍼질 훌륭한 번역서가 그녀의 시간표 대로 잘 마무리되길 간절히 기도한다.


산 위에서 여주 시내를 굽어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포스트 코로나를 살고 있는 우리는 벌써 코로나를 잊은 듯하다. 우리의 일상이라는 무대를 완전히 전복시킨 팬데믹이라는 질병은 아직도 우리 삶 도처에 남아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전쟁, 전체주의. 각종 질병들은 아직도 망령처럼 살아남아 우리의 일상을 점령한다. 코로나 창궐 이전 우리가 그랬듯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도시는 여전히 무감각하다.



1등 만능주의, 의대입시, 의대정원확대, 총선, 무역, 돈벌이, 유희와 유흥은 우리의 발검음을 재촉하며 주의를 분산시킨다. 이런 바쁜 일상 생활 속에서 어쩌면 우리는 점점 더 긴장감을 잃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질병은 언제라도 우리의 일상에 틈을 낼 것이다. 누군가는 불가항력적인 재난 앞에 자포자기하며 술이나 마시리라. 또 어떤 이들은 이 재난적 상황에서도 실낱 같은 희망을 바라보며 변치 않을 우정을 약속하고, 가족을 돌아보고, 보건대를 조직하며 보이지 않는 적과 대결할 것이다. 신은 보이지 없고, 하늘은 어둡기만 할지라도, 이 성스러운 투쟁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반항하는 특징을 가진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질병이든, 이념이든, 독재자든 상관없다. 혹 우리의 내면을 갉아먹는 악마적 특성이어도 마찬가지이다. 또다시 질병이 우리의 온 삶을 흔들어댄다 해도...나는 다시 깨어날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반항하는 인간이다.


Resísto. 나는 반항한다.

Ergo sum 고로, 나는 존재한다.


그렇게 일요일 아침 우리는 함께 산속을 거닐었다, 아무런 바람도 없는 바람처럼. 우리들 팔과 다리 사이로 상쾌한 바람이 지나다니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딱히 갈 곳 없는 인생이지만 지향해 볼 수 있는 별과 쉬어갈만한 좋은 산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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