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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레테 클래식 Dec 24. 2023

김밥할머니 그리고 숨김없는 말들

정심화 장학생, 이복순 여사,

<에세이> 김밥할머니가 심은 한 알의 밀알


1990년 ‘김밥 할머니’로 세상에 알려진 이복순 여사가 김밥 판매와 여관을 경영을 하며 근검절약 해 모은 50억 상당의 재산을 지역의 대학에 기부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그녀가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가난한 대학생들에게 당신의 전 재산을 남김없이 주고 떠난 것은 전국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는 소식이었다. 이 기부금은 1991년 1월 정심화장학회를 설립하는 마중물이 되었다. 이 장학금은 ‘김밥 할머니’의 정신에 따라 성적 기준이 아닌, 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이어나가기 힘든 학생들에게 우선적으로 지급되고 있다.

<정심화 이복순 여사 상, 사진 출처: 연합뉴스>


나는 30년도 넘은 이 일을 마음속 깊이 기억하고 있다. 왜냐하면 내가 바로 그녀가 남기고 간 나눔의 씨앗을 받은 정심화 장학생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 시절 나는 힘든 집안 환경 때문에 대학을 진학한다는 것이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다행히도 등록금이 저렴하고 장학 혜택이 있는 지역의 국립대를 진학하게 되어 학비 부담은 덜었지만 기숙사비, 책값, 교통비, 식대는 내 손으로 해결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90년대 후반 학번이었던 나는 IMF 구제 금융으로 인해 학기 중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운 좋게도 방학 때 건설현장의 일당 노동자로 일해 일부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그마저도 쉽게 구할 수 없을 만큼 당시 경제 사정은 사상 최악이었다. 기억해 보면 집도 절도 없던 가난한 고학생의 삶은 춥고 배고픈 정말 고단하기 그지 없는 삶이었다. 1학년 때는 비교적 저렴한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할 수 있었지만 2학년 때부터는 기숙사에 머무를 수 있는 인원 제약이 있었다. 당시 버스로 20~30분 거리에 숙소를 얻었는데, 그 흔한 마을버스 차비가 없어 1시간이나 되는 거리를 자전거로 통학하기도 했다. 먼 거리를 통학하기가 힘들다는 사정을 알고 출석하던 교회 목사님께서 교회에서 한 학기를 숙식하며 생활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적도 있다.  


 그러던 중 우연히 김밥 할머니 장학회(정심화 장학회)에서 장학생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알고 지원하게 되었다. 다행히도 3학년 1학기부터 장학생으로 선정되어 한 학기 학자금에 준하는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 나는 당시 학교에서 지급하는 성적 장학금을 받기도 했기 때문에 김밥 할머니 장학금은 온전히 생활비로 활용할 수 있었다. 그 시절 팍팍하던 내 생활 속에 그녀의 장학금은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았다. 그 후 나는 비교적 안정적인 학교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고 무사히 대학 과정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그 도움의 손길을 잊은 적이 없다. 무엇보다 한평생 김밥을 말아서 얻은 누군가의 땀과 피가 청년 시절 내게 소중한 마중물이 되었다는 생각을 하면 지금도 마음이 뜨거워지고, 눈시울이 붉어진다. 40대 중반이 된 지금 늘 마음 한 구석에 남 모를 부채의식을 가지고, 시시 때때로 어떻게 하면 그 숭고한 사랑에 보답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살고 있다.  


 최근 내가 살고 있는 판교 대장동에 ‘아라보다’라는 작은 카페가 생겼다. 이 카페를 운영하는 청년은 <숨김없는 말들>이라는 에세이를 출간한 작가이기도 했다. 우연히 방문한 그 카페에서 나는 그녀의 책을 단숨에 읽어버렸다. 이 책에 따르면 청년이 운영하는 이 카페는 자립준비청년들이 함께 살아갈 세상을 꿈꾸며 운영 중이다. 자립준비청년이란 보호자가 없거나 적당한 양육을 받기 어려워 아동복지시설이나 위탁가정에서 생활하다가 보호종료 된 청년들을 뜻한다. ‘18살이 되면 아무도 없이 홀로 서야 하는 아이들, 척박한 세상 속 너른 바다처럼 살아가는 한 자립준비청년의 숨김없는 이야기’를 읽고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자신도 힘들게 세상을 헤쳐나가고 있으면서도 그녀가 알고 있는 자립준비청년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고, 소품을 만들고, 과일청을 팔고, 작은 콘서트를 열면서 같은 처지에 있는 어린 친구들에게 생계를 이어 나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나가고자 몸부림치고 있다.


그녀의 책 내용에 따르면 ‘보호받던 가정이나 시설에서 나오는 자립준비청년은 매년 2500명 정도로 추산된다. 그러나 자립준비청년에게 주어지는 장학금은 세상의 물가에 한참 뒤처진 300만 원~500만 원 정도에 불과했다. 쉼터에서 자립한 친구들은 고작 50만 원, 혹은 그마저도 받지 못한 채 맨몸으로 나와 세상을 마주 해야 했다’는 말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런 척박한 환경 속에서 ‘자립준비청년 친구들은 원가정에서 분리되는 순간부터 포기하는 법을 먼저 배운다. 먹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놀러 가고 싶은 마음, 무엇도 바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일찌감치 배운다. 그리고 조금씩 꿈꾸는 법을 잊어버린다. 먼저 자립한 선배들의 끔찍한 생활, 유흥업소에서 일하며 망가져 가는 언니, 누나들, 자립정착금을 사기당한 형들, 도박이나 불법적인 일에 휘말려 위기에 놓인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불안함이 밀려온다. 나이를 한 살 먹는다는 것은 이들에게 축하받을 일이 아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세상으로 내몰리게 되는 두려운 시기가 점점 다가오는 것이다’라는 대목에서는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이 청년이 운영하는 카페 ‘아라보다’를 알고 난 후 나는 몇 날 며칠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이 사회에 은혜를 입은 자로써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꿈과 소망을 잃고, 현실 한계 속에 절망하는 청년’들을 도외시한다면 나게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갈수 있다는 건 허위이고 위선이라는 생각에 괴로웠었다. 그리고 나는 결심했다. 광야와 같은 인생길에서 혼자라는 두려움에 힘들어 쓰러져갈 청년들의 손을 잡아 주기로, 내게 손을 내밀어 줬던 많은 어른들처럼 누군가 아픔을 공감하고 그 상처를 싸매주는 어른이 되어주기로, 무엇보다 함께 울고, 함께 웃어주는 맘 따뜻한 이웃이 되어 주기로. 나는 그들의 꿈을 돕는 멘토가 되어 주기로 한 것이다. 그 청년들이 꾸는 꿈은 아래와 같다.

 '아라보다'는 이태리어 아라레 arare에서 영감을 얻었다. 아라레에는 경작하다(cultivate), 항해하다(navigate)라는 2가지 뜻이 담겨 있다. 생명이 자라게 하기 위해 땅을 갈고 가꾸는 것처럼 자립준비청년들이 살아갈 세상을 조금 더 다정하게 일구는, 생계 걱정과 노동으로 점차 꿈을 잃어가는 친구들에게 새로운 목표를 함께 정하고 항해할 수 있도록 돕는 곳. 그곳이 바로 내가 꿈꾸는 아라보다 공방 카페다. 그림을 그리거나 작은 소품을 만들 수 있는 청년이 찾아오면 함께 상품화할 수 있도록 고민하고, 카페에서 판매해 청년의 후원금으로 지원하고, 한편에서 매달 작은 콘서트를 열고, 언제든 고민을 안고 찾아오는 청년들의 만남의 장이 되는 곳. 가능하다면 작은 마당이 있어서 소박한 정원을 꾸미고, 때때로 자립청년들과 식물을 가꾸어볼 수 있는 그런 카페를 만들고 싶다. 내부를 바다처럼 꾸미고, 카운터는 하얀 배 모양, 조명은 구름 모양으로 달아 도시 속 작은 바다에서 나는 사장이 아닌 선장이 되고, 함께 일할 자립청년들은 직원이 아닌 선원이 되는 그런 꿈을 꾸고 있다.

“가장 큰 꿈이 있는데, 일단 꿈이니까 말해볼게요." 혹시나 비웃지는 않을까 먼저 말을 꺼낸 내게, 제작사 피디님은 답했다.

“파워 디지몬이 되는 꿈도 말해주셨는데요(웃음).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언젠가 외곽에 자립준비청년 마을을 짓고 싶어요. 그 안에 그룹 홈(최대 7명의 아이가 선생님들과 가정을 이루는 아동양육시설)도 몇 가정 짓고, 자립청년이 운영하는 카페, 음식점도여는 마을이요. 그렇게 그 안에서 자립준비청년들이 안전하게 세상에 나갈 준비를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말하자 피디님이 갸웃하며 되물었다.

“왜 밖으로 나가요? 마을이면 그 안에서 살아도 되잖아요."

“부모도 아이를 언제까지 품에 넣고 살지 않잖아요. 언젠가 사회 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교육하고 가르치는 것처럼, 자립준비청년끼리 사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세상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섞여서 살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그리고 분명 세상은 자립청년을 필요로 할 거예요. 어려움을 겪은 만큼 많은 재능이 있으니까요."피디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만약 큰 회사를 운영하는 CEO이고, 2명의 자녀가 있다고 가정해 본다. 첫째 아이는 가정에서 공부하며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이론적으로 경영을 배웠고, 둘째는 무수한 아르바이트부터 차곡차곡 사회경험을 쌓았다. 둘째는 하나씩 부딪히고 스스로 선택하며 부모의 도움 없이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익힌 것이다.

이후 회사를 물려줄 후계자를 정할 시기가 왔을 때 누구에게 물려주어야 할까. 나는 안전하게 울타리 안에서 자란 첫째가 아닌 어려움 속에서 이리저리 고난을 겪어가며 자란 둘째를 선택할 것이다. 나는 자립청년들이 둘째 같은 자녀라고 믿는다. 이렇듯 다듬지 않은 원석 같은 자립준비청년들은 자랄 때 자신을 신뢰하는 법을 잃고 낙담하는 경우가 많다. 찾아오는 불행과 고난이 자신의 탓이라고 여길 때 앞으로 한 걸음을 떼는 것도 버거워진다. 자립청년이 우울증을 겪고 있을 때 “네가 햇빛을 보지 않아서 그래. 매일 규칙적으로 생활해야지"라고 말한다면 청년은 상처가 자신의 탓이라고 여긴다. 회사를 근속하지 못하고 그만두기를 반복하는 자립 청년에게는 분명히 그럴 만한 아픔과 상처가 있다. 스스로 책망하게 두는 것이 아닌, 분명히 외부적인 요인으로 아픈 것임을 알려주고, 그 아픔이 단지 자신을 괴롭히는 '처벌'이 아니라 원석을 재련하는 '과정'이라고 믿는다면 청년은 그 시간을 견딜 수 있다. 그러므로 내 꿈은 파워 디지몬처럼 자립청년을 믿어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숨김없는 말들, 모유진, 린틴틴>

 나는 최근 여기저기서 ‘그들과 함께 울고, 웃어 주라’는 음성을 자주 듣는다. 이것이야 말로 전 재산을 기부한 ‘김밥할머니’의 숭고한 희생정신에 보답하는 길이고, 오늘도 내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에 응답하는 방법일까?


오늘 이런 핑계 저런 핑계로 자주 못 나가던 교회에 갔다. 오늘 목사님의 ‘함께 울고, 함께 웃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라는 말씀’을 듣고 가슴 먹먹해졌다. '함께 울고 웃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교회가 누리는 기쁨’이라 하셨다. 우리가 도망자처럼 비참한 인생을 살고 있을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큰 뜻 안에서 이어지는 구원의 사역임을 기억할 때 주님의 은혜가 임하게 된다는 말씀이 참 위안이 된다. 그리고 나는 슬픈 청년들을 믿어주고 함께 울고 웃어 주는 소박한 이웃이 되어 줄 것을 다시 다짐해봤다.


. 그리고 내일은 세상의 가장 낮은 곳으로 임하신 그리스도가 오신 날이다. 모두가 그 거룩한 축복 속에 행복할 이날, 누군가는 춥고 배고프고 외로운 밤을 보내고 있으리라. 나는 그 사랑이 누구보다 나를 통해 다른 이들에게 흘러나가길 간절히 소망하며 성탄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작은 밀알이 되어 땅에 떨어지고 죽지 않는다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복음 12장 24절)’


<참고 자료>

숨김없는 말들, 모유진, 린틴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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