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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도시, 지상의 지옥

신곡_인페르노_제3곡 지옥의 파토스

by 아레테 클래식

지옥의 파토스

신곡_인페르노_제3곡 지옥의 파토스


1. Read and Note Me


1-1. 슬픔의 도시(citta' dolente)


제목에 사용된 파토스, πάθος (pathos)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신의 윤리학에서 설명했던 단어로 욕정, 노여움, 공포, 즐거움, 증오, 연민 등 쾌락 또는 고통을 수반하는 감정을 의미한다. 에토스, ήθος(ethos)가 지속되는 정념 혹은 성격이라면 파토스는 일시적인 상태를 지칭하기도 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는 우주에 내재하는 형식과 의미를 신의 이성으로 파악했으므로 파토스는 로고스와 상대적인 개념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Pathos의 영어의 사전적 의미는 연민의 정을 자아내는 힘, 비애감 정도이다. 내가 앞으로 사용할 용어 파토스는 슬픔을 당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의 감정 혹은 그로 인해 격앙된 감정의 상태 정도로 한정하면 좋겠다.


3곡 1행에 나오는 dolente는 이탈리아어로 '괴로움을 당한, 슬픔에 잠긴, 처참한'의 뜻을 가진 형용사이다. 타인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한 인간이나 상처가 난 아픈 부위들을 수식할 때 자주 사용하는 단어이다. 우리는 보통 지옥은 죄 많고 나쁜 일을 많이 한 인간이 가는 종착역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늘 단테가 사용하는 단어는 그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지옥은 잔악 무도한 사람들이 가는 곳이 맞지만, 그들은 큰 상처와 슬픔을 간직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생전에 이미 희망이 없었고, 끔찍한 삶을 살았고, 성스러운 이성의 빛을 잃어버린 저주받은 무리들이었다.


나는 이 빛을 잃어버린 도시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무채색의 도시와 겹쳐진다. 오늘날 신문에 나오는 흔한 이야기들 절망적인 상황에서, 괴로운 나날을 보내며, 이성의 빛을 잃어버린 채 광기와 피로 물든 우리 도시의 얼룩진 이야기들이 떠올라 가슴이 아팠다. 오늘도 많은 이들은 이 무채색 도시 안에서 맹목적인 발걸음을 걷고 있을지 모른다. 저녁이 되면 파김치가 되어 퇴근하는 무리에 휩쓸려 은둔의 지하로 향하는 사람들에게 이미 빛은 가리어진 게 아닐까?


1-2. 빛(Logos)이 없는 공간


Quivi sospiri, pianti e alti guai risonavan per l'aere sanza stelle, per ch'io al cominciar ne lagrimai. .(Inferno3:22-24)

이곳의 한숨, 비통, 많은 고난은 별이 없는 공간에 울려 퍼졌다. 처음에 이 소리들을 듣자마자 난 울었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대학 시절 자취방 보증금이 없어 지하교회에서 살았던 8개월이 생각났다. 반지하는 그나마 햇볕을 볼 수 있으므로 조금 어둡기는 해도 아침저녁을 구분할 수 있다. 그러나 지하실의 생활은 반지하와는 전혀 다르다. 그 안에 있으면 시간의 구분이 사라진다. 단순히 빛이 없는 것뿐인데 알람 시계 없이는 제시간에 일어날 수 없다. 나는 당시 생체시계는 허구 가까운 것이라 생각했다. 하루 이틀만 지하에서 지내보면 안다. 인간의 생체리듬이라는 것이 얼마나 손상되기 쉬운지.


지하생활이 한 달 정도 되었을까? 몸에 이상이 생겼다. 안 하던 기침을 하고 만성 피로와 감기에 시달렸다. 잠을 자도 잔 것 같지 않았다. 무엇보다 괴로운 것은 나의 정서가 공간의 지배를 받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우울하고 무기력해졌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귀찮아지면서 점점 주위 사람들과 단절되어 갔다. 지하실은 나를 지하생활자로 만들고 고립시켰다.


공간적 지하 생활이 나를 무력화시킬 그 무렵, 나는 대학 3학년을 보내고 있었다. 지하실의 어두움은 곧 내 삶에도 어두운 그늘을 확장시켜 갔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생활했던 곳은 교회였다. 그러나 그 교회 어디에도 신은 보이지 않았다. 목사가 되려 했던 나에게 신과의 단절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적막한 밤과 같았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세상 속에 나만 홀로 던져진 기분은 너무 공포스러웠다.


지하실 밖은 늘 소란스러웠지만 알 수 없는 사람들의 소음과 광기로 가득했다. 그 거리의 파토스가 나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수시로 신에게 기도하고, 절대적인 신의 은총을 깨닫기 위해 많은 책 속을 방황했으나 신은 내게 계시하지 않으셨다. 나는 누구인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기도는 더 간절해졌고, 읽고 또 읽었지만 무채색의 세계는 나를 비웃는 듯 침묵했다. 나의 한숨, 비통, 고난은 별이 없는 공간에 울려 그렇게 울려 퍼졌다.


1-3. 지옥의 파토스


Diverse lingue, orribili favelle, parole di dolore, accenti d'ira, voci alte e fioche, e suon di man con elle. facevano un tumulto, il qual s'aggira sempre in quell'aura sanza tempo tinta, come la rena quando turbo spira.(Inferno3:25-31)

이상한 언어들, 끔찍한 대화들, 크고 약한 목소리들, 그리고 손으로 때리는 소리들 이것은 큰 소란을 만들었고 태풍이 불어 닥칠 때의 모래처럼 영원히 어두운 하늘에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지옥 3:25-31)


나는 최근에 읽고 있는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죄와 벌>에 이 지옥을 묘사하는 것 같은 장면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내가 다시 설명하는 것보다 그 장면을 그대로 인용하는 것이 파토스를 느끼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 그대로 옮겨보겠다.

그가 자기 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저녁 무렵이었다. 여섯 시간 동안이나 돌아다녔던 것이다. 어디로 해서 어떻게 돌아왔는지 그는 거의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옷을 벗고, 몹시 달려 지친 말처럼 그는 온몸을 떨며 소파에 누워, 외투를 끌어당겨 덮고는 곧장 잠에 빠져들었다.

완전히 땅거미가 졌을 때, 그는 무시무시한 비명 소리 때문에 잠을 깼다. 맙소사, 대체 이게 무슨 비명 소리란 말인가! 그렇게 부자연스러운 소리, 그런 고함 소리, 통곡 소리, 이를 가는 소리, 눈물과 구타와 욕설을 그는 단 한 번도 듣고 목격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그런 짐승 같은 행위와 광분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두려움에 떨며 일어나, 그는 침대 위에 앉아서, 매 순간 가슴을 조이며 괴로워했다. 그러나 맞붙어 싸우는 소리와 통곡하는 소리와 욕설은 점점 더 심해졌다. 그러다가 문득 그는 여주인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소스라치게 놀라고야 말았다. 그녀는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고, 울부짖으며, 빠른 말씨로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애원하듯 내뱉고 있었다. 그것은 물론, 그녀가 무자비하게 얻어맞고 있던 계단에서 제발 때리기를 멈춰 달라고 애걸하는 소리였다. 때리던 사람의 목소리는 악의와 광기로 인해 쉬어서 무시무시한 소리를 냈다. 그 사람도 뭐라고 말하기 시작했으나, 역시 숨을 헐떡거리며 다급히 말을 했기 때문에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라스꼴리니꼬프는 갑자기 사시나무 떨듯 온몸을 떨기 시작했다. 일리야 뻬뜨로비치가 여기서 여주인을 때리고 있다니! 그는 그녀를 발로 차며, 그녀의 알소리를 들어 봐도 분명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세상이 뒤집히기라도 한 것일까? - <죄와 벌, 도스토옙프스키>


도스토옙스키는 위 장면에서 지옥의 파토스를 지상으로 끌어내린다. 그가 단테의 작품을 읽었을까? 읽지 않았더라도 상관은 없다. 단테가 본 지옥과 도스토옙스키가 목격한 지옥은 서로 다르지 않아 보인다. 찬란한 도시의 이면에 자리 잡은 뒷골목, 가난하고 남루한 인생을 사는 사람들에게 운명의 여신은 더 냉혹하고 가차 없다. 오늘도 누군가는 짐승 같은 행위와 광분, 고함 소리, 통곡 소리, 눈물과 구타와 욕설이 난무하는 폭력 속에 신음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 폭력은 많은 희생자들을 낳는다. 나는 그중 아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려온다. 가족치료 전문가들은 부모가 싸우거나 불화가 있을 때 아이들이 이런 지옥을 경험한다고 한다. 아이들은 부모의 다툼이나 불화가 자신의 잘못이라 생각하며 자책한다. 꼭 자신이 나쁜 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아이는 불안하다. 그러면서 아이는 가정이 깨지는 것을 막기 위해 온몸으로 노력한다. 부모가 싸우는 동안 아이는 부모를 기쁘게 하려고 웃기도 하고 상황에 맞지 않는 행동으로 부모의 주의를 끌려고도 한다. 자신의 불안한 감정과 욕구는 해소되지 않은 채 부모의 갈등이 남긴 상흔을 간직한 채 아이는 성장해 간다. 어떤 아이는 오히려 문제 행동을 일으켜 부모의 시선을 자기에게로 향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과격한 행동은 부모를 성가시게 하고, 부부의 갈등의 대체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때 아이는 분노를 표현한 것 같지만 그 마음 이면에는 좌절감, 억울함, 무기력함 등의 복잡한 감정이 내재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부부가 자녀들 앞에서 싸우지 말아야 할 이유는 명확하다.


1-4. 나만 아니면 되는가?


어릴 적 교회 부흥회에서 천국과 지옥을 경험했다던 부흥회 강사의 설교를 들은 적이 있다. 톱, 칼, 창 등을 단상 위에 올려놓고 자신이 본 지옥의 무시 무시한 광경들을 쏟아냈다. 죽어서 이런 지옥에 가지 않으려면 신을 잘 믿어야 한다 했다. 그러나 어린 마음에 나는 이렇게 되뇌었다. 나만 아니면 되는가? 나만 아니면? 어린 마음에 나는 걱정이 되었다. 그럼 우리는 엄마, 아빠는? 살아서 예수를 몰랐으므로 지옥에서 고통받고 있을 우리 엄마 아빠는 어떻게 해? 어릴 적 일기장에 이렇게 쓴 적이 있다. “나는 세례를 거부합니다. 죽어서 천국이 아닌 지옥에 가야겠습니다. 지옥에 가서 엄마, 아빠를 구할 기회를 꼭 주세요”


나는 오늘 아침 지옥의 입구에서 고통받고 있는 자들을 향해 울고 있는 단테를 다시 바라본다. 그들은 어째서 지옥에 오게 됐을까? 그들은 어찌하여 빛을 잃고 한, 비통, 많은 고난 속에 처해졌을까? 그들이 이렇게 된 것은 단지 그들만의 잘못일까?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지옥은 저 멀리에 있는 초월적 공간이 아닐 수 있지 않을까? 오늘날에도 이상한 언어들, 끔찍한 대화들, 크고 약한 목소리들, 그리고 손으로 때리는 소리들을 듣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폭력에 시달리다 자기의 존재를 부정당하거나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도 역시 많은 뉴스들이 쏟아질 것이다. 연인과 연인, 가족과 가족, 민족과 민족이 한탄과 비통, 수많은 분노와 저주 속에 신음하고 있을 것이다. 이 소란은 내 마음에 큰 태풍을 만든다. 나만 아니면 되는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생각하면 할수록 괴롭고, 무기력해지기만 한다.


2. Remember Me

#학습된무기력#보호종료아동#20대청년여성의자살#혁명의시대#산업혁명#도시빈민#가난#OECD자살율1위#엄마어렸을적에#


3. 참고도서

The Devine Comedy by Dante_Inferno, Dante Alighieri, the classic

La Divina commedia, Inferno, Dante Alighieri

낯선 기억들, 김진영, 한겨례 출판사

단테 신곡 연구, 박상진, 대위학술총서

신곡 지옥(인페르노), 단테(이시연 역), 더클래식

일리아스, 호메로스(천병희 역), 숲

오뒷세이아, 호메로스(천병희 역), 숲

아이네이아스, 베르길리우스(천병희 역),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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