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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수레 Sep 20. 2022

담배는 성공, 남성복은 실패

브랜드 던힐 이야기

20세기 초 유럽에서 담배는 꽤나 힙한 기호품이었다. 

오늘날 고급 와인을 음미하는 것과 비슷했다  


현대에는 담배 유해성이 여러 방면에서 입증되고 금연캠페인이 확산되면서 흡연자들이 음지로 움츠러든다. 

수십여 년 전에는 비행기에 흡연석이 별도로 있었다. 

대학교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옆사람들이 버젓이 담배를 피워 댔다. 

신입사원 때는 부장님 재떨이 치우는 것이 여직원 하루 일과 중 하나였다. 


지금 들으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처럼 느껴진다.


dunhill이라는 브랜드가 있다.

어떤 사람은 DUNHLL 하면 담배를 떠올린다

다른 사람은 dunhill 하면 남성복, 지갑, 라이터, 벨트 등의 잡화를 떠올린다.

10여 년 전 나는 dunhill 브랜드의  Retail Manager로 근무했다. 


던힐은 담배이기도 하고 남성복 패션잡화 브랜드이기도 하다.

동명이인이 아니고 동명 이종(同名異種)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단, 구분하는 방법이 있다

대소문자 표기를 통해서 구분할 수 있다. 잘 살펴보시라.

담배 던힐은 영어 대문자로 표기한다 (DUNHLL)

남성 명품 던힐은 영어 소문자로 표기한다 (dunhill)

일반인은 모르는 그들만의 내부 약속이다. 


브랜드 사회에서는 이런 암묵적 약속이 꽤 있는 것 같다. 

생 로랑 패션이 뷰티업종에 가서는 '입생 로랑 뷰티'로 변한다. 

Yves Saint Laurent이라는 브랜드 창립자는 한 명이지만, 

후대에 가서 브랜드 이름은 분화한다. 


브랜드 던힐의 창립자 Alfred Dunhill은 유명한 Tobacconist (담뱃잎을 섞어 전문적으로 파이프 담배 블랜드를 만드는 사람)이며 혁신적인 사업가이자 발명가였다.  

그 당시 '토바코 니스트'는 지금의 커피 바리스타, 와인 소믈리에 같은 전문가 이미지를 가졌다.  


알프레드 던힐은 1900년대 초반 런던의 ‘스티브 잡스'였다.  

고급 담배와 파이프를 제조 판매하였으며, 한 손으로 불을 켤 수 있는 라이터, ‘경찰관 발견용 안경’을 만들어 낸 발명가이기도 하였다.  이 얼마나 깜찍한 아이디어인가? 

도둑을 발견하는 안경이 아니라 '경찰관을 발견하는 안경'이라는 생각이 익살스럽다. 


그는 20세기 초 자동차사업에 미래비전이 있다고 내다봤다. 자동차 잡화 액세서리 판매회사 Dunhill Motorities를 설립하면서 사업을 확대해 나갔다. 


21세기에 일론 머스크는 내연기관 자동차에서 전기자동차로 전환을 선도하고 있다.

20세기에 알프레드 던힐은 수천 년간 지속되었던 마차 시대에서 내연기관 자동차로의 전환을 예감했다. 

가문 대대로 운영하던 마구 사업에서 자동차 관련 잡화용품 제조 판매업으로 업종을 전환했다. 


알프레드 던힐이 죽고 난 후 담배사업은 BAT(British American Tobacco)에 매각했다. 명품 잡화사업은 스위스에 본사를 둔 글로벌 명품그룹 리치몬트가 인수했다 


한국에서 DUNHILL 담배 인지도는 무척 높다. BAT 마케팅의 힘이다. 한 때 DUNHILL담배는 외산담배 중 점유율 1위를 차지하였다. 

한국 소비자에게 dunhill은 명품 이미지보다는 담배 이미지가 훨씬 크다. 


300만 원대 슈트를 파는 명품 남성 브랜드 이미지는 편의점 판매 1위 담배 브랜드 이미지에 묻혀버렸다. 

아시아에서 유독 한국이 이런 경향이 두드러졌다. 명품 패션 브랜드 시장이 우리보다 먼저 형성된 일본과 홍콩만 하더라도 dunhill 하면 남성 명품 브랜드로 인식되는 경향이 높았다. 

일본 국가대표 축구팀 공식 양복을 제공하는 브랜드가  dunhill이다.  이탈리아는 아르마니, 영국은 막스 앤 스펜서, 한국은 제일모직 갤럭시에서 만든 양복을 단복으로 사용하였다. 


'와타나베 쇼이치'라고 하는 일본 작가가 1977년도에 발행한 '레토릭의 시대'라는 책에

"던힐 라이터를 갖고, 구찌 구두를 신어도 일본인은 백인이 될 수 없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작가가 책에서 주장하는 바는 차치하고 70년대 후반 일본인들에게 던힐 라이터구찌 슈즈가 서양을 대표하는 명품 브랜드로 상징되고 있었음을 짐작했다. 


1986년 외산담배 수입이 허용되었다.  던힐 담배는 언제부터인가 한국 담배시장에서 인기 브랜드로 자리를 잡았다. 반면, 남성 명품 dunhill은 매출이 저조하여 한국시장에서 2015년 철수하였다. 4년이 지난 2019년 재진출을 하였으나 역시 시장에서 존재감을 보이지 못하고 2021년 또다시 철수하고 말았다. 


백화점 남성 명품 시장은 루이뷔통, 구찌, 프라다, 지방시 등 토털 명품 브랜드 등이 남성라인을 별도로 독립시키고 톰 브라우니와 같은 새로운 남성복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한국 명품 구매 소비자들은 낮은 인지도와 모호한 포지셔닝의 dunhill 브랜드에게 눈길을 줄 여유도 관심도 없었다.  

한국 고객들은 핫한 브랜드 남들이 인정해주는 브랜드에 몰려드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루이비통에 샤넬에 몰린다. 요즘 뜨는 브랜드인지 파악 후 구매 여부를 결정한다. 


한국 시장에서 남성복 dunhill 브랜드는 실패했다. 

비흡연자인 나는 DUNHILL담배가 지금도 인기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여전히 한국 편의점에서 판매하고 있다. 담배 DUNHILL은 건재하다.


동양문화에는 좋은 사주, 좋은 풍수에 대한 믿음과 더불어 좋은 이름에 대한 믿음도 있던가!  

같은 이름 던힐을 썼지만, 남성복은 실패하고 담배는 성공했다. 


사람이나 브랜드나 이름 하나로 성공 여부를 단정 지을 수는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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