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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수레 Oct 04. 2022

향수 이야기

외국계 화장품 회사를 다니면서 느낀 점

전 직장이 LVMH P&C KOREA 였다.    

세계에서 가장 큰 럭셔리 소비재 브랜드 회사인 LVMH는 루이뷔통(LOUIS VUITTON)과 모엣 헤네시(MOET HENNESSY)의 앞 글자를 조합하여 만든 이름이다. 

P&C는 Perfumes and Cosmetics의 약자이다. 

LVMH Perfumes & Cosmetics그룹에는 약 15개의 향수와 화장품 브랜드가 있다. 


회사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향수는 화장품에 종속되지 않는다. 향수는 화장품과 매우 가깝지만 독립되어 있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문화로부터 깊이 영향을 받아왔지만 엄연히 독립국가인 것처럼, 향수는 화장품과 비슷한 부류에 속하지만 엄연히 독립되어 있다.  


아모레 화장품, LG 화장품, 코리아나 화장품 등 한국 대형 화장품 회사들은 스킨케어와 색조화장품 제조와 판매를 통해서 성장해왔다. 한국 화장품 브랜드의 품질과 혁신성은 글로벌 화장품 업계에서도 높이 인정한다. 

한국 여성들은 화장품을 많이 사용한다. 필연적으로 안목이 높아졌다. 질 좋은 상품을 구분하는 역량을 갖춘다. 인터넷 사용률이 높고 SNS 활동이 활발하니 브랜드와 제품에 대한 평가는 순식간에 확산된다. 한국 소비자들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한국 화장품 회사들은 역동적으로 신제품과 새로운 화장품을 창조하였다. 이 역동성이 글로벌 화장품 업계에서는 K-Cosmetic이라 불리며 추앙되는 이유 중 하나다.   

 

K-Cosmetic이라는 말은 있지만 K-Perfume이라는 말은 아직 들리지 않는다. 아쉽게도 한국의 향수 브랜드는 내세울 만한 브랜드가 없다. 


샤넬, 디올과 같은 브랜드는 카테고리를 SK(스킨케어), MU(메이크업), FR(Fragrance)로 분류한다. 

Jo Malon은 향수 브랜드다. NARS나 MAC은 메이크업 브랜드로 분류한다. Dior과 CHANEL은 자칭 3 Axis 브랜드라고 한다. Axis는 軸(축)이라는 의미이다. 브랜드를 이루는 축이 스킨케어, 메이크업, 프래그런스 세 개의 축인데, 이 세 개의 축을 모두 생산 판매하는 종합 브랜드라는 자부심을 내포한 의미가 3 Axis 브랜드다.


국내에서 넘버 1인 샤넬 화장품은 2021년도 매출 약 2천2백억 원 중, 향수 매출 비중이 40%를 넘는다고 한다. 디올 역시 13백억 원 매출 중 향수 매출 비중이 30% 이상을 차지한다. 


한국에서 향수는 지난 10년간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향수는 18세기 유럽의 귀족들이 사용하는 사치품이었다. 수백 년간 향수를 제조해온 노하우와 좋은 원산지의 원료에 대한 확보 등이 유럽 향수가 글로벌 향수 업계를 지배하는 이유이다.


스킨케어와 메이크업은 한국, 일본 브랜드 등도 품질과 시장지배력에서 유럽 브랜드와 대등한 수준에 이르렀다. 아직 향수만큼은 유럽 브랜드에 미치지 못한다. 한국 콜마와 같은 화장품 OEM 생산업체는 R&D에 막대한 투자를 하여서 스킨케어와 품질면에서는 세계적 수준에 이르렀다. 

BB크림, 쿠션 파운데이션, 마스크 팩 등 K-Beauty는 글로벌 화장품 업계에 새로운 제품을 창조하고 선도해 나가는 혁신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향수 시장 에서만큼은 아이콘 브랜드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영화로 더 잘 알려진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에서도 배경이 된 ‘향수의 성지’, ‘향수의 본고장’이 프랑스 그라스(Grasse) 지방이다. 

그라스는 향수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에게는 향수의 메카와 같은 곳이기에 한 번쯤은 방문하고 싶은 곳이다. 

그라스 지방은 중세시대 가죽 생산으로 유명했다. 가죽에서 발생하는 냄새를 억제하기 위해 향을 입혔던 것이 당시 귀족계층과 왕실의 인기를 얻고 새로운 유행을 창출하게 되자 점차 그라스는 가죽 생산보다는 향수 생산에 집중하게 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하나의 산업이 발전하는 데는 연관산업의 성쇠와 깊은 관련이 있다. 목축산업이 발전한 서양은 가축의 가죽을 활용한 의복 잡화 문화가 발달되었다. 반면 동양은 농경문화가 지배적이었으며 식물의 섬유를 통해 직물을 직조하고 직물로 의복을 만들었다. 가죽산업이 서양에 비해서 미미하였다. 가죽산업이 성행한 서양이 가죽 냄새를 없애기 위해 향수가 태동하였고 향수 산업이 성행한 반면 동양에서는 향수 산업에 대한 수요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유럽의 향수 브랜드가 전 세계 시장을 지배하는 것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다.  


그라스(Grasse) 지방의 꽃 재배농장은 샤넬, 디올 등의 브랜드와 독점 공급계약을 맺고 유기농 농법 등을 통해 재스민과 장미 등을 재배한다고 한다. 장미 20여만 송이가 있어야 장미 원액 1kg을 얻는다. 원액 1kg으로 1톤의 향수 농축액을 만든다. 1톤의 농축액에 알코올이 더해져 10여 톤의 오드 투왈렛 향수가 만들어진다. 즉, 장미 원액 1kg에 다른 성분을 섞어 향수 농축액 1톤을 만들 수 있고, 이 향수 농축액이 10% 든 오드 투왈렛 향수 10톤을 만들 수 있다는 얘기이다. 


쉽게 말하자면 샤넬이나 디올 오드 투왈렛 향수 100ml 한 병에 그라스 지방의 장미나 재스민 2~3송이가 들어가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이 얼마나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인가? 장미 1송이를 그대로 사면 얼마인가? 이것이 샤넬이나 디올의 이름과 함께 향수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올 때 가격은 수십 배가 높아진다. 


2020년 전 세계 향수 시장의 규모는 약 328억 달러(약 40조 원)이며 매년 성장하고 있다. 한국에서의 향수 시장 성장세는 더욱 가파르다. 백화점도 향수 조닝을 확장하고 있다. 

백화점 내 향수 브랜드 상위 20위는 모두 외국 브랜드이다. 향수에 관한 한 한국은 철저히 수입국이다.   


그라스 지방의 장미와 재스민을 통해서 세계적인 향수 브랜드가 만들어진 것처럼

한국의 야생화를 추출하여 전혀 새롭고 독특한 향의 향수 브랜드가 만들어지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일이다. 

향수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한국에서도 한국을 상징하는 향수 브랜드 하나쯤은 생기기를. 

K-Perfume도 언젠가 현실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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