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적 논술이야, 어떤 주장의 타당성을 입증하려면 논거를 끌어 오는 것이 많아, 서술이 길어지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허점 하나가 발견되면 전체 주장이 무너져 버린다. 현대인의 생활처럼 복잡다단한 경우엔 더욱 타인의 말이나 글을 자세히 경청하거나 세심하게 읽어 주도록 기대하기는 힘들다. 말이나 글은 가급적 짧아지고, 가능한 두괄식으로 작성해, 저 멀리 아래 부분을 듣거나 읽지 않아도 의도하는 의사를 빨리 파악하도록 하는 걸 바란다. 문화적 차이겠지만, 유교권에서는 의도하는 것을 곧장 표현하는 것을 무례하다고 생각한다. "잘 지내냐? 애들은 결혼했고? 사는 곳 집 값은 어떻고?..., " 한참을 관계없는 맥락으로 이어가다가는, "다름이 아니라, 여유 있으면...." 정작 하고자 하는 말은 제법 주변을 훑고서야 나온다. 물론 이런 경우는 자신의 자존심, 본격적인 말을 하기 전의 라포(rapport(상호 신뢰관계 조성) 따위의 분위기 형성을 위한 준비단계이니 그럴 만 하기는 하다.
2. 그렇더라도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안다'는 말처럼, 결론은 제일 끝이나 그 후에 있다.
실제 이런 방식은, 정작 말해야 할 것은 항상 뒤로 밀려 사후에 보충을 받는 식이나, 진의를 표현하는 데 있어 이중적인 경우가 많다. 아마도 유교권 문화에서 후회, 회한이 많이 남는 게 이런 것에서 연유할 것이다. 요즘은 아예 말하는 것이나 글로 표현하는 일도 번거로워, shorts같이 길어봐야 몇 분짜리 영상이 이를 대체한다. 그러니 그 짧은 순간에 하고자 하는 뜻을 전달하는 데에는, 시선을 끄는 내용이 간결하게 구성되어야 한다. 도발적이며, 신경을 집중하는 내용일 수밖에 없다. 이 전광 석화같이 지나가는 영상에서 조차 뭔가를 생각하려면 할 수는 있겠지만, 결정 사회처럼 결론이 순식간에 제시되니, '왜'라는 뒷부분의 지루한(?) 설명은 그냥 지나친다. 아마 대부분은 불과 몇 초 정도 열람했다가 다른 콘텐츠로 넘어갈 듯 싶다. "***연예인이 음주운전으로..."
3. "그래서 결론이 뭔데? '왜'는 됐고, 구속이야, 뭐야?"
이미 마음속으로는, '저러다 비싼 변호인 고용해서 집행유예 처분받고 몇 년 숨어 지내다 다시 고개 쳐 들 텐 데 뭐!' 하는 판결이 난 상태라, 가뜩이나 관심 없는 데 더 권태롭게 만든다는 분위기이다. 그깐 그들의 일상사에 관심 없지만,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속칭 공인의 자세와 사법 정의, 엉뚱하게 출현하는 물신화 따위에 주목해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대부분의 매체는 소비적이다. 바쁘게 움직여 생각할 틈도 부족하고 공론 기능도 날로 축소되는 마당에, 짧게 끝내는 현대 의사소통과는 달리, 매일 집요하게 관련 기사가 뜬다. 어떤 반사회적 행위에 대한 철저한 반성일리는 만무하고, 이번에는 사회적 매장이라는 지독한 외설의 완성을 향해 가는 것 같다. 결론부터 제시하고 시작하는 경향에, 이런 방식은 사회를 피로하게 한다. 그것이 매체의 또 다른 숨은 의도이긴 하겠지만, 매일의 뉴스롤 접하는 국민은 피곤하다. '그래서 결론이 뭐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