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면 내가 세상과 접속하는 길을 열고, 그것을 닫음으로써 세계와 분리한다."[짐멜, 모더니티 읽기] 우리가 하나쯤은 갖고 있는 모바일에는, 각자가 입력한 패턴으로 잠금장치를 설정한다.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해, 정식 활동을 하려면 회원 가입이 필수적이다. 집의 출입구를 여는 일에도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한다. 어느 곳이든 세밀한 접근이 필요한 곳에서는 승인이 필요하다. 자신의 권리를 보호하는 측면에서는 불가피하고도 당연하다. 종래에 이방인이라고 하면, 낯선 곳을 방문해 기웃거리는, 얼굴이 익숙하지 않은 존재들이었다. 디지털 세상에도 접근이 허용되지 않으면 그렇기는 마찬가지이다. 그 문을 통과하려면 의례가 필요하다. 하지만 높은 성이나, 접근하기 힘들게 담장을 쌓거나 감시인을 두어 거리를 두거나 하던 것은, 더 이상 물리적 출입구가 아니라, 손가락에서 허용과 제한이 일어난다.
2. 이처럼 디지털식 출입구 개폐는, 아주 작은 몸놀림으로 일어나지만, 진입에는 갖은 심사가 따른다.
아주 통째로 신상을 복사해 제출할 정도이다. 나의 입장은 매우 힘들고, 퇴장 후에도 그 흔적이 오래 남아, 이번에는 내가 승인했는지도 모르는 제삼자가 내 안방에 들어와 있다. 그리고는 각종 협박을 가한다. '이번을 놓치면 30% 세일의 생애 마지막 기회를 걷어차는 것이란 것처럼...' 산책을 하다 보면, 작년에도 보았던 사람이 여전히 가방을 팔고 있다. 어김없이 '백화점 납품업체 부도로 눈물의 바겐세일, 폭탄 세일'을 진행 중이다. 어떤 업체이길래 매년 망한단 말인가? 암튼 이런 정체 모를 비즈니스가 매일 모바일 알링을 장식한다.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사소하게 생각해 빈칸을 채운 것이 이 영문도 모를 방문객이 날마다 나의 안방으로 들어오는 유래일 것이다. 보이는 불청객은 눈앞에서 축출하면 되지만, 보이지 않는 방문객은 그렇게 쉽지 않다. '그러면 포인트 적립이라든지, 공과금 납부 시 할인 혜택이 소멸되는 데, 그래도 계속하시겠습니까?'
3. 이런 체인식 협박에 모든 걸 포기할 사람은 아마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부지불식간에 입장한 이 이방인은, 거꾸로 권력의 우위에 서게 된다. 이번에는 문을 열고 닫는 주체가 역전된다. 내가 문의 개폐를 통해 세계와 접속과 차단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나의 문을 열고 닫는다. '귀하의 계정은 장기간 사용한 실적이 없어, 부득이하게 폐쇄될 예정이니....' 있는지 알지도 못한 게 나를 한 번 더 위협한다. 심지어, 문을 닫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늘 로그인으로 열려 있었는 데, 닫혀 있는 것으로 알고 지낸 것이다. 문을 닫는 게 여는 것이고, 여는 게 닫는 것이다. 디지털 문을 여닫는 것에는 연쇄 반응이 있어, 함부로 그러하기도 쉽지 않다. 광고처럼 그 틈으로 슬그머니 밀려들어 오는 부산물은 말할 것도 없다. 공장은 매일 망하며, 마르지 않는 눈물 세일은 수없이 반복된다. 현대적 문은, 산책로의 풍경을 차단하지 못한다. 오히려 그것들이 드나들 수 있는 훌륭한 통로이다. 내가 세계를 규정한다는 것은 오만이다. 세계가 나를 구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