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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인 것이 이상한게 아니라면

무심한 듯 띠뜻하게 아들의 성장을 바라보고 싶습니다.

by 유쾌한 윤겸씨
걱정은 흔들의자와 같아서 계속 움직이지만 아무 데도 가지 않는다.
-윌 로저스


학교 앞 하교 길. 와글거리는 아이들 사이에서 덩그러니 혼자 나오는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다른 친구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이 친구 저 친구 눈을 마주쳐가며 말을 주고받기도, 장난을 주고 받기도 하는데 이 녀석은 오늘도 터덜터덜 혼자다. 휴. 오늘의 나는 어떤 엄마가 되어야 할까, 어떤 낯빛의 얼굴을 준비해야 하나, 무슨 말을 참아야 하지. 눈을 꼭 감았다 뜨는 찰나의 시간에 여러 생각들이 스친다. 물론 정답은 항상 정해져 있다. 나는 반달눈을 만들어 뜬 뒤 손을 들어 좌우로 크게 흔든다.


"아들~"


나는 걱정이 많은 편이 아니다. 당장 통장에 10만 원이 없어도 오늘 아이들 먹을 저녁거리만 있으면 불안하지 않다. 내일이 시험일이라도 오늘 하루 공부 더 한다고 바뀔 리가 있겠어를 외치며 평소보다 더 일찍 잠든다. 쿨한 편이다. 하지만 웬걸, 첫째 아이에게만은 예외다. 나는 초예민 불안맘이다.


첫째가 유치원을 다닐 무렵부터 친구들과 뭔가 어색하다는 기류를 느다. 어린이집을 다닐 때도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보단 혼자 개미를 쫒으며 놀던 아이였다. 그맘때쯤의 아이들이 다 그렇지 뭐. 순한 아들인가 보다. 그럴 수 있지 지나쳤다. 하지만 유치원 소풍에서 혼자 도시락을 까먹는 모습을 목격한 그 순간부터 나는 걱정 흔들의자에 탑승했다.


흔들의자에 탄 나는 앞으로는 아이를 재촉하고 뒤로는 엄마들 모임을 쫓아다녔다. 학교에서 하는 행사라는 행사는 모두 다 참석했다. 대문자 I 엄마이지만 아이가 외로운 것이 나의 부족한 모성애와 불성실한 육아 때문일까 봐 이 모임 저모임 얼굴을 들이밀며 내 아이와 놀아줄 친구를 찾아 헤맸다. "오늘은 누구랑 놀았어?"를 매일 물어보는 엄마에게 누구랑도 잘 놀지 못했다고 대답해야 하는 아이는 자신이 이상한 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불안해하는 아내를 도와주고 싶어 말을 거는 남편에게 "당신이 뭘 알아. 나 좀 가만히 내버려 둬.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고 있잖아" 라며 화를 내기 일쑤였다. 나는 아이를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치열하게 앞으로 나아갔다고 생각했지만 돌아보면 흔들의자 위에 있었다. 아이는 여전히 혼자였다.


아이가 학교에서 맞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의 흔들의자는 중심을 잃고 쓰러져버렸다. 열심히 노력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착각이었을 뿐, 난 그저 흔들의자를 앞 뒤로 흔들고만 있었던 것이다. 아이에게는 불행한 일이었지만 폭행 사건 이후, 흔들의자에서 내동댕이 쳐진 나는 그 의자에 앉아 손가락을 물어뜯고 있는 한 여자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아이의 상황에 과몰입하는 엄마. 아이의 외로운 모습을 마주칠 때마다 더 깊은 물속으로 추적추적 걸어 들어가는 엄마. 아이에게는 외로움을 잊을 수 있는 따뜻한 붕어빵 엄마가 필요한데 나는 가시 많은 생선 엄마였다.


이후로 자잘한듯 걸죽한 사건들을 겪으며 이제는 좀 더 빨리 물 속에서 헤엄쳐 나오는 법을 배우고 있다. 그곳에 있어봐야 내 가족과 나만 진창 속이라는 것을 배우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 맞겠. 가끔은 설거지를 하다가도 운전을 하다가도 눈물을 찔끔거리려는 나를 발견한다. 그럴 때면 그 부정적인 생각을 끊어내기 위한 나만의 묘약이 있다. 머리 한 대 탁. '정신 차려. 너 지금 오바야.'


느리고 엉뚱한 아이라고 언제까지나 엄마, 아빠, 동생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크게 할 수는 없다. 언젠가는 혼자 자기만의 길을 걸어가야한다. 그 길에서 툭 치고 지나가는 사람도, 다정히 인사하는 사람도, 뒷통수를 확 내려치는 사람도 만날 것이다. 그럴때마다 내가 그 사람들을 막아줄 수 있나. 그럴 수 없는 일이다. 엄마는 그저 그런 일이 있었냐고 토닥토닥 따뜻히 안아줄뿐이지.


오늘도 홀로 학교에서 나오는 아이를 보며 저것이 말은 안 해도 얼마나 외로울까 마음이 아리지만 좋은 친구를 만나기 전 자기 자신과 먼저 친구가 된 아들을 응원하는 엄마가 되어야 한다."오늘은 누구랑 놀았어?" "괴롭히는 친구는 없었니?" 물어보고 싶은 말들이 수만가지지만 "배고프지? 감자튀김 먹을까?" 유쾌하게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로 나의 입을 대신 한다. 혼자인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님을, 좋은 사람을 기다리는 시간도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엄마는 기꺼이 너를 기다릴 것을 선택한다.



혼자인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님을, 좋은 사람을 기다리는 시간도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무심한 듯 따뜻한 엄마는 기꺼이 너를 기다릴 것을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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