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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니따 Apr 22. 2020

낳으면 아이가 알아서 큰다는 말

세상 제일 무책임한 말



아기를 낳은 지 만 5개월. 정신없이 시간이 흘렀고 흐르고 있다. 아기는 무럭무럭 자라 몸무게 8kg을 찍고, 뒤집기를 수시로 하며 이번 주부터는 이유식도 먹는다. 집안은 온통 알록달록 아기 장난감으로 채워졌고 내 일과는 아침 7시부터 아기의 먹놀잠 리듬에 맞춰 돌아간다. 제법 ‘엄마’의 모습을 갖추고 아기를 돌보고 있다.(내 스스로 호평?)


아기가 잘 먹고 잘 자는 하루를 보내면 세상 뿌듯하다. 하지만 이런 기분은 잠깐이다. 금방 놓치고 있는 부분들이 어딘가에서 불쑥 나타난다. 아기는 새로운 장난감을 원하는데 뒤늦게 알아차렸고, 이유식 시작할 준비가 됐다는 신호를 보내는데도 한 달이 지나서야 첫 미음을 먹였다. 아기가 쑥쑥 큰지도 모르고 작은 사이즈의 옷을 주문하고 계절이 바뀌었는데도 두꺼운 옷을 입혀 땀을 뻘뻘 흘리게 했다. 지금이야 그저 며칠 늦거나 어쩌다 한번 하는 실수 정도지만 가끔 두려움이 확 밀려온다. 이런 작은 문제가 아니라 아기의 성장 발달에 중요한 문제를 내가 놓치면 어떡하나 걱정이 폭풍처럼 몰아친다.



낳아 놓으면 알아서 다 큰다

주변 어른들이 말했었다. 세상 그렇게 무책임한 말이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아기를 낳고 보니 정말 나쁜 말이다 싶다. 육아는 단 한 가지도 쉬운 게 없고 거저 되는 것도 없다. 아기가 절로 크는 일은 더더구나 없다. 물론 나의 노력과 정성에 비해 훨씬 더 아기가 잘 먹고 잘 자고 잘 자라 주는 것이 고맙다. 그래서 가끔은 알아서 큰다는 말이 이런 의미도 있겠구나 싶다. 하지만 절대 아기는 알아서 크지 않는다. 그래서는 안될 것 같다.


사람을 키우는 일이다.

고작 몇 달 차 초보 엄마지만 아기를 갖기 전부터 고민하고 마음에 꼭 새겨두었던 말이다. 그냥 내 자식이 아니라 20년 후에 세상에 내놓아야 할 ‘사람’을 키우는 일이다. 대단한 업적을 쌓거나 이름을 날리거나 엄청난 위인을 만들자는 게 아니다. 사회에서 제 몫은 하는, 평범하지만 가치 있고 존중받는 한 사람으로 키우는 일, 그게 육아다. 그게 어렵기 때문에 육아가 힘든 것 같다.


온전한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 신체적 발달은 물론이고 정서적 안정과 발달을 위해 많은 노력과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끊임없이 관찰하고 아이의 기질에 맞는 양육법을 공부하고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신기한 것이 사회는 아이를 낳으라며 출산을 장려하면서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가르치질 않는다. 육아 공부는 온전히 부모의 몫이다. (그리고 부모들은 육아 공부를 맘X홀릭으로 하지...ㅡ.ㅡ) 적어도 필수교과과정 어딘가에 양육과 관련된 내용 몇 구절, 수능에 한두 문제 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아이를 키우는 매 순간 궁금하고 난해한 상황 투성이다. 그럴 때 어디 물어볼 곳도 없다. 그래서 결국 육아 서적을 뒤적이고 최신 트렌드라는 수면교육 책을 사고 이유식 레시피를 찾아 블로그를 헤맨다. 이럴 거면 허접한 제품으로 가득한 서울시 출산선물세트에 문화상품권이나 넣어주지.


아무튼,

아기를 낳고 보니 생각할 시간도 부족, 생각을 정리하고 기록할 시간은 더더욱 부족하다. 두서없는 말이라도 끄적여야 이 어려운 사람 만들기 프로젝트를 고민하며 잘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아기가 잠에서 깨나 보다. 글을 급 마무리

해야겠다. 오늘처럼 앞으로도 이 매거진 글은 이렇게 끝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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