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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tom P Jul 16. 2024

시차

나에 대해 알지 못하면서 너를 알아가다

 발톱이 두 개, 삐죽삐죽 솟은 털, 흐린 동공과 메마른 몸뚱이. 내가 누구인지 나는 모른다. 아직 모른다. 어느 날 어느 시에 알게 된다면, 그때 내 삶의 시작을 선언할 수 있을까. 그렇게 헤매던 중 너를 만났다. 너에게는 나를 끌어당기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은 비스듬히 빛나는 초승달빛 같았다.


너에게 다가가는 만큼 너는 나에게 다가왔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가 되었다.


  발톱이 두 개, 삐죽삐죽 솟은 털, 흐린 동공과 메마른 몸뚱이. 남들보다 작은 체구로 체급이 나뉘지 않은 투기장에 던져질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아직 모른다. 나는 수도 없이 거울에 대고 묻는다. 너는 누구냐. 하지만 거울은 메아리를 되돌려줄 뿐, 어떤 대답도 들려오지 않는다. 나는 누구냐, 너는 누구냐... 그렇게 헤매던 중 너를 만났다. 너에게 다가가는 만큼 너는 나에게 다가왔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가 되었다.


  발톱이 두 개, 삐죽삐죽 솟은 털, 흐린 동공과 메마른 몸뚱이. 그 옆에서 너는 명료한 두 눈으로 나를 보았다. 내가 누구인가 하는 질문의 답은 결국 스스로 찾아내야 하겠지만, 너는 내 옆에서 그 여정을 함께해 주리라 의지를 보였다. 들숨과 날숨이 날카롭게 나의 폐를 찌르던 내내 너는 내 옆에 있어주었다. 각혈을 하는 나를 명료한 두 눈으로 보았다. 그렇게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너는 명료한 두 눈으로 말했다. - "평생."


  발톱이 두 개, 삐죽삐죽 솟은 털, 흐린 동공과 메마른 몸뚱이. 나는 이제 체급이 나뉘지 않은 투기장에 던져질 것이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아직 모른다. 거울의 시간도 저물어간다. 그렇게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 한 치 앞을 모르는 나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네 발로 뒤뚱거리며 겨우 한 걸음씩 내딛고 있는 나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그 옆에서 너는 명료한 두 눈으로 말했다.


 "평생."


  발톱이 두 개, 삐죽삐죽 솟은 털, 흐린 동공과 메마른 몸뚱이. 나에게 '평생'이라니. 안도감과 불안감이 동시에 타오른다. 파랗고 빨간 불길이 나를 온통 뒤덮는다. 따스함과 뜨거움이 나를 온통 뒤덮는다. 나는 투기장에 나갈 채비를 하다 말고 불길에 휩싸인다.


 너와 나의 시차에 나는 다시 한번 움츠러든다. 너는 처음부터 명료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하지만 나는 비틀거리며 거울 앞에 겨우 서있다. 내일을 두려워하는 나에게 '평생'을 말하는 너의 눈은 명료하다. 하지만 나는 비틀거리며 사라져 가는 거울 앞에 겨우 서있다. 이 시차는 너에게도 나에게도 아픔이다. 이 시차는 나와 나를 제외한 모든 이의 시차다. 나는 흐르는 시간 속을 억지로 비집고 들어온 연어처럼, 나를 제외한 모든 이들과 시차를 느낀다. 명료한 모든 이들에게, 너에게, 거울 속 나에게 시차를 느낀다.


 너와 나의 시차에 나는 다시 한번 움츠러든다. 너는 처음부터 명료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아직까지도 흐린 동공으로 뿌연 내일 앞에 두려워하고 있다. 너의 시간을 붙잡는 것도 놓아 보내는 것도 나는 할 수가 없다. 그저 이 시차 앞에 웅크리고 앉아 고민하는 우유부단함. 너와 나의 시차에 나는 다시 한번 움츠러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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