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순간을 열심히 살아라. 이 말을 지니고 살았다.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많은 실수와 오점을 남겼다. 이룬 것도 많지만 잃은 것도 많다. 현재가 후회에 잠기는 이유다. 나의 현재는 후회에 잠겨있다. 그렇다. 나는 후회하는 중이다.
매 순간을 열심히 살았음에도 나는 후회에 잠겨있다. 왜 나는 후회할 수밖에 없는가. 나는 더이상 현재를 최선을 다해 살아갈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럴 용기를 잃었기 때문이다. 맹수는 놓친 사냥감이 아니라 눈앞의 사냥감에 집중한다. 나는 더이상 맹수로 살아갈 자신이 없는 것이다.
왜 나는 맹수로 살아갈 자신감을 잃었는가. 그것은 내가 얻고 잃은 것들이 너무나 우연하기 때문이다. 나의 노력은 신 앞에서 좌절되었다. 나는 그다지 노력하지 않고서 많은 것을 얻었고, 얻고자 사력을 다했던 많은 것들을 잃었다. 그렇게 나의 삶은 신에 의해 부정당한 것이다.
나의 삶이 오로지 신에게 달려있다는 생각이 나를 미치게 한다. 나의 삶은 내가 아닌 신의 것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고서 나는 점점 미쳐가고 있다. 우선, 하루를 시작할 때마다 두려움을 느낀다. 오늘을 살아갈 힘이 없고 몸에 무거운 추가 달려있는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나기 힘들다. 두려움에 짖눌린 것이다.
손발에 땀이 나고 수전증이 온다. 숨을 들이쉴 때와 내쉴 때 심장이 떨린다. 그렇게 나는 신경증을 앓게 된 것이다. 수많은 정신질환이 있겠으나, 나는 최근에 신경증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신경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뇌를 구성하는 뉴런 한 가닥 한 가닥이 날카롭게 날이 서있는 기분이다. 그것은 매 순간 신을 두려워하며 떨고 있다.
나는 영웅이 되고 싶었다. 나의 친구들에게 모범이 되고 싶었다. 도덕적으로도 실리적으로도 우수한 길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매 순간 모든 일에 열심이었다. 그것이 최선이라는 착각 때문이었다. 신에게 삶을 내맡기는 선택을 하는 친구들을 나무랐다.
나는 매사에 과감히 행동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많은 것을 얻었다. 나를 위험에 빠뜨렸음에도 신은 나에게서 아무 것도 앗아가지 않았다. 오히려 많은 선물을 내려주었다. 그 사실에 감사하면서도 그 사실이 공포스럽다. 왜냐하면, 나에게 주어진 것이 모두 신의 덕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신이 마음을 바꾸면 언제든 그것들을 회수해 갈 수 있다. 내 만성적인 불안은 이러한 신에 대한 공포에 기인한다.
한때 나는 연인의 아버지가 되고 싶었다. 사랑하면서도 따르고싶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마치 친구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영웅이 되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랑에 나름의 충성을 다했다. 하지만 나는 언제부터인가 사랑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 사랑은 내가 바친 충성에 배반과 상처로 응답했기 때문이다. 신이 나를 시험한 것일까. 그렇다면 나는 시험에 통과하지 못했다. 상처에 내 사랑은 발목이 잘려나갔다. 그 뒤로 나의 사랑은 절뚝거렸다. 나도 상처를 주는 사람이 되었다.
지금의 나에게도 우정과 사랑은 희미하게나마 남아있는 생명을 붙들고 있는 두 개의 축이다. 가족에 대한 사랑도 빼놓을 수 없다. 나는 가족의 영웅이 되고 싶었다. 가족을 위해 사냥에 성공한 맹수이고 싶었다. 그러한 나의 노력은 실패했다. 사냥감이 나에 비해 너무 컸다. 나는 투쟁에서 승리하지 못했다. 그렇게 가족에 대한 사랑이 좌절을 겪었다.
지금도 남아있는 우정과 사랑은 나를 죽음으로 빨려들어가지 못하게 묶어놓았다. 죽음에 대한 욕망이 영웅이 되고자 하는 욕망과 싸우고 있다. 가족에게서 아들을 앗아가고 연인에게서 사랑을 앗아가는 선택을 하지 못하게 하는 욕망, 그것이 아직까지도 남아있는 영웅에 대한 추구이다.
나는 나를 혐오하게 되었다. 정확히는, 나의 삶을 혐오하게 되었다. 나의 삶은 얼룩진 행주같다. 버려야 하는데 버리기는 아까운 것이다. 이러한 비관 속에서도 나는 희망을 품는다. 이 지긋지긋한 신경증에서 벗어나 남들처럼 화사하게 웃는 것이다. 비료의 역한 냄새를 외면할 수 있는 꽃이 되는 것이다. 신 앞에서 무릎꿇을 바에, 신을 잊고 지내게 되는 것이다. 신이 준 선물 앞에 당당하고 신이 앗아간 것들에 대해 억울해 하는 것이다. 신에게 맞서는 영웅이 아니라, 신에게 종속된 애완견이 되는 것이다. 내가 그럴 수 있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그러한 삶을 선택할 것이다. 나는 영웅이 아니라 개가 되고 싶은 것이다.
가끔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신에게 반납하고, 대지의 품으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욕구가 치밀어 오를 때가 있다. 도시인들은 귀향을 원하고 시골 사람들은 상경을 동경하는 것처럼, 나는 대지의 품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한낱 신의 놀이에 불과한 삶에서 벗어나 대지의 품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대지는 나의 것을 보장해준다. 풀 한 포기를 먹더라도, 그것만큼은 나의 손아귀 힘으로 잡아 뜯어 먹는 것이다. 신이 내려준 천상의 식사보다 훨씬 든든할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대지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는 대지의 인간이 되어야 한다. 신의 인간이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신의 장난을 깨닫기 때문이다. 우리는 신의 개가 되거나 대지의 인간이 될 수밖에 없는 숙명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다.
나는 대지의 품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신경증을 앓게 되었다. 신에게 맞서다가 척추가 부숴진 영웅이 되었다. 나는 두번다시 영웅처럼 살지 못할 수도 있다. 또는 기적적으로 다시 한 번 영웅의 삶을 살게 될 수도 있다. 이 또한 신에게 달려있다니,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대지의 품으로 돌아가기에 나를 붙잡는 두 가지 감정, 우정과 사랑이 마음에 걸린다. 그래서 나는 아직 대지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신에게서 받은 선물을 마치 내 것인양 붙들고서 사랑하는 이들에게 그것을 나누고자 한다.
하지만 나는 언젠가 대지의 인간이 되고자 한다. 때가 되면 신에게서 받은 모든 축복과 저주를 내팽게치고 대지로 돌아가고자 한다. 그 때는 아마 우정과 사랑이 대지를 향할 때가 될 것이다. 또는 사랑하는 이들이 대지의 인간이 될 준비가 되었을 때가 될 것이다. 그 때가 온다면, 나는 영웅도, 개도 아닌 대지의 인간으로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