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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 Soom Jan 26. 2023

목소리를 삼킵니다

걸음 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당신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당신과는 전혀 관계없는 예전 기억이 한 가지 떠올랐습니다. 나는 지나간 일의 사소한 구석들을 곧잘 잊어버리는 편인데도, 유난히 선명하게 떠오르는 그런 기억이었어요.


나는 기차에 앉아 있었습니다. 행선지도, 그때 내가 듣던 노래도 분명히 기억합니다. 무엇보다, 나는 울고 있었습니다. 내가 가장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은 그날 눈물을 흘릴 때 느꼈던 감정입니다. 상처 위로 칼날 같은 찬바람이 스친 듯 얼얼하고 낱낱이 아팠습니다.


왜 울었는지도 물론 기억하고요. 꽤 오래된 기억인데도 떠올리면 눈물이 핑 돌아 깨닫습니다. 여전히 날 울게 했던 그 일과 사람을 난, 용서하지 못했구나. 하는 것을요.


그런데 왜 오늘, 당신의 등 뒤를 바라볼 때 그날의 장면이 떠오른 걸까요? 그날과 당신은 아무런 연결점이 없는데 말이에요. 오래 곱씹었습니다. 왜 지난 낡은 기억을 불러와 오늘 당신의 뒷모습에 눈물을 흘리고 있을까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그날 그리 구슬픈 눈물을 흘리고도 나는 한참을 기차에서 내리지를 못했습니다. 사실 당장에 내리고 싶은 기분이었는데도요. 여기서 내리면 도달하지 못하고 낙오될까 참 두려웠어요. 칼날에 안긴 듯한 마음을 참는 편이 나을 것 같았어요.


너무 오래 참다 몸을 내던진 나는 예상보다 오래 아파야 했습니다. 그래서 후회합니다. 그래요. 대부분의 사건들을 잘 잊는 내가 유난히 잊지 못하는 것이 있다면, 후회였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직감했는지 모릅니다. 후회할 거란 걸요. 지난날의 내가 오늘의 나에게 가르쳐주는 일종의 힌트 같은 거죠.


한숨을 크게 쉬어봅니다.


당신의 표정이 무척이나 궁금하지만 부르지 않기로 합니다. 목소리를 삼킵니다. 걸음 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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