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보호자의 삶, 일탈이 필요해!

사소한 우연으로부터의 시작

by 김노멀

내게 새로운 이름이 생겼다.

‘보호자’

그것도 내 아이의 보호자가 아닌 아빠의 보호자라니..

나에게는 언제나 큰 울타리였던 아빠가 이제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누군가의 보호가 필요한 존재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자식들을 시집, 장가보내고 손주를 보면서 이제 한숨돌리며 노년을 준비하겠다는 아빠의 말이 떠올라 억울하기도 원망이 되기도 했다. 내가 이러는데 아빠는 오죽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늦지않고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얼마나 다행이냐며 감사한 일이라고 애써 아빠를 위로했다.


갑작스러운 아빠의 발병으로 인해 아빠의 삶뿐 아니라 나의 삶에도 많은 변화가 왔다.

병원을 오가는 일들이 일상이 되면서 아빠는 자연스레 사업을 정리해야했다. 수많은 거래처는 다른 분께 양도를 하고, 물건으로 가득찼던 가게는 물건을 빼고 세를 주었다. 마지막으로 아빠가 하루종일 운전하며 생활했던 포터까지 팔고 나니 새삼 아빠가 환자가 되었구나 실감이 되었다.


아빠의 일상생활 변화는 단조로웠던 나의 일상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아빠 가게 일을 가끔 봐주던 내가 아빠를 모시고 인천에서 일산으로 수시로 오가야했다.

병원에 가는 날은 하루가 바쁘지만 지루하게 지나간다.

아침에 아이를 등원시키고 아빠와 함께 일산에 있는 병원에 간다. 인천에서 일산까지 1~2시간정도 걸리는데 우리는 보통 10~11시즈음 병원에 도착해서 먼저 피검사를 한다. 피검사 결과가 나오는 데까지 2시간. 진료를 기다리는 동안 병원 근처에서 밥을 먹고 병원 2층에서 무료로 주는 커피까지 마시면 진료시간이 얼추 맞는다. 운이 좋으면 조금 빠르게 앞에 상담이 길어지면 또 1~2시간을 더 기다려야한다. 진료가 빨리 끝나면 2시 늦게 끝나면 4시가 된다.

진료를 마치면 그 때부터 아빠의 항암이 시작된다. 4시간동안 주사를 맞는데 컨디션이 좋으면 4시간이지만 조금 힘들거나 컨디션이 안좋은 날에는 시간이 더 걸리기도 했다. 주사를 다 맞고 병원을 나서면 어둑어둑한 저녁시간이 된다. 우리는 지루했던 병원을 벗어나 고속도로를 타기 전에 저녁을 먹고 집으로 온다. 아침 9시에 아빠를 모시고 출발해서 저녁 9시 혹은 10시가 되야 집에 도착한다. 꼬박 12시간 이상 병원 나들이를 하게된다.

정기 진료 뿐 아니라 갑작스러운 통증, 이상현상이 있으면 새벽이든 밤이든 상관없이 엄마에게 딸아이를 맡기고 응급실로 가야했고, 입원과 수술, 통원치료, 응급실이 나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인천에서 일산으로 병원을 다니며

외래진료만 보는데도 꼬박 하루를 병원에서 보내야 하는 생활이 체력적으로 여간 힘든게 아니였다.


그래도 아빠랑 같이 밥도 먹고 진료시간을 기다리며 커피도 마시는 것이 데이트 하는 기분이들어 조금 더 건강할 때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을 가졌다.


그런 줄 알았다.

괜찮은 줄 알았다.


아빠의 보호자로 산 지 2년 즈음 됐을까?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나도 모르게 어두운 그림자들이 드리워져 가고 있었다.


어쩌면 당연했다.


제일 자주, 가장 많이 보는 사람들이 환자이다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그들의 삶에 젖어들게 되었나보다.


하루는 신랑이 이야기를 꺼냈다.

“당신도 당신만의 시간을 가져봐!”

“예전 일 할때 당신 참 멋졌는데~”

나는 지금 내 상황에서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며

들은채도 하지 않았다.


그 이후에도 신랑은 몇 번 더 나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요즘은 쇼핑몰하는 사람도 많다던데~ 취미로 그런거 해보는건 어때? 시간도 여유롭고 괜찮지 않을까? 당신도 당신만의 시간이 필요해보여~”

“사실 그렇게 매몰되 있다가 당신이 나중에 너무 힘들까봐 걱정이 되기도 해”

신랑의 진심 어린 걱정에 나도 진지하게 생각해보겠다 답했다. 그러지 않으면 계속 말할 것을 알기때문에..


며칠 후 우연히 버스를 타고 지나가다가

쇼핑몰 창업 과정 강의가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집에 돌아와 신청서를 작성하고 메일을 보냈다.


이때까지는 몰랐다.

이 강의로 인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