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를 못하지도 않지만 잘한다고 하기도 그런 솜씨.
그냥 우리 집 남자 셋에게 이따금 엄지 척 받는 것에 만족하며 살고 있다.
그런 나에게도 나 이거 잘해요!라고 남에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음식이 딱 두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김밥이다.
잘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그 음식을 좋아해야 한다.
나는 김밥에 진심이다.
김밥은 준비해야 할 재료의 가지 수가 많아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라는 인식이 있지만
나는 김밥 재료 준비가 전혀 귀찮지 않다. 재료 하나하나가 맛있어야 김밥이 맛있어짐을 알기에 까다롭게 재료를 고르고, 손질한다. 그리고 이제는 요령이 생겨서 예전보다 빨라진 속도로 재료 준비를 마칠 수 있게 되었다.
지난 주말, 나만큼이나 김밥을 좋아하는 둘째가 김밥이 먹고 싶다고 했다. 마침 집에 김밥 재료들이 많이 있어서 몇 가지만 사서 후다닥 준비해 보았다.
보통 사 먹는 김밥 중 맛이 없다 느끼는 경우는 문제는 셋 중 하나다.
김! 밥! 햄!
다른 재료 보다 이 세 가지가 김밥 안에서 맛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품질이 안 좋을 경우 전체적인 김밥 맛을 떨어트린다. 그리고 다른 재료들에 비해 상급의 것과 저급의 것의 맛의 차이가 매우 크게 나는 재료이기도 하다.
사진엔 없지만 나의 김밥 핵심 재료 중 첫 번째는 김이다. 마트에서 살 수 있는 김밥김들도 품질이 좋지만 나는 꼭 엄마로부터 공수한 김밥김을 쓴다. 엄마가 시장의 건어물 가게에서 사 오시는데, 그 건어물가게는 내가 유치원 때 혹은 그 이전부터 대를 이어 건어물을 파시는 나의 초등학교 동창네 집이다. 전남 고흥산 김밥김을 한 톳(100장)씩 사주시는데 우리 식구들의 김밥 사랑에 100장은 금방 사라진다. 아, 30년 넘게 영업 중인 건어물집 초등학교 동창이 없다고 아쉬워 말길. 마트에서 파는 김밥김도 충분히 맛있다.
나는 원래도 진밥을 안 좋아하는데 김밥의 밥으로 진밥은 용서할 수 없다. 나에게 김밥의 진밥은 최악 중의 최악이다. 김밥을 잘랐을 때 밥알의 단면이 보일 정도의 고슬고슬한 밥을 지어야 한다. 물의 양 맞추기가 가장 중요한데 나는 나의 감이나 손등은 믿지 않는다. 물의 양은 전기압력밥솥의 눈금을 이용한다. 김밥용 밥의 눈금에 맞춰서 취사를 하면 딱 알맞게 된다. 고슬고슬하게 잘 지어진 밥을 스텐볼에 담고 참기름과 소금과 깨소금을 넣는다. 깨는 미리 갈아놓은 것은 고소한 향이 덜 한 것 같아서, 넣기 전 바로 빻아준다. 빻아야 할 깨의 양이 많을 경우에는 미니 절구를 이용하고, 양이 적은 경우는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바로바로 부셔 넣는다.
그다음 불을 안 쓰는 오이, 단무지, 우엉, 게맛살을 손질한다.
오이는 껍질을 깨끗이 씻어 양쪽 끝을 자르고 세로로 4등분 한다. 오이의 속은 물이 생기므로 속 부분을 잘라준다. 그리고 4등분 한 것을 사이즈에 따라 다시 2등분 내지는 3등분을 한다. 이걸로 오이는 끝.
단무지와 우엉은 체에 놓고 찬물 샤워를 한번 시켜주어 짠맛을 좀 빼주고 키친타월로 물기를 없애준다.
게맛살은 가급적 연육 함량이 높은 걸 골라야 맛도 식감도 좋다. 김밥에 넣기 좋은 크기로 2 등분하여 준비한다.
프라이팬을 사용하여 준비하는 재료들 중에는 달걀을 제일 먼저 한다. 팬을 처음 사용하므로 달걀이 팬에 눌어붙거나, 당근색이 물들거나, 햄 향이 스며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달걀이 많이 들어간 김밥을 좋아하는 편이라 달걀은 넉넉하게 준비한다. 달걀을 볼에 깨트리고 소금 살짝 넣어 풀어준다. 두툼한 달걀지단의 식감을 좋아해서 달걀은 두툼하게 부친다.
당근은 채칼을 이용해 얇게 썰어서 기름 두른 팬에 소금 약간 넣고 살짝만, 아주 살짝 숨 죽을 정도만 볶아준다.
가끔 사 먹는 김밥 중에서 햄 맛이 김밥 전체의 맛을 망치는 경우가 있다. 아마 품질이 별로인 것을 사용했으리라. 햄맛이 별로면 맛이 튈뿐더러 끝맛도 별로다. 다른 재료들은 맛이 없어도 크게 튀지 않는데 햄은 가공식품이고 첨가물이 많은 제품이라 그런지 별로인 것을 넣으면 너무 거슬린다. 나는 보통 목우촌 김밥햄을 이용한다. 그리고 자른 다음에 구우면 햄이 기름을 너무 많이 머금게 되는 것 같아서 햄의 포장 껍질만 벗긴 후 통으로 굽고 나서 잘라준다.
어묵은 생략할 때가 종종 있으나 오늘은 냉장고에 어묵이 있길래 볶아서 넣어줬다. 어묵을 넣으면 씹는 맛이 다채로워진다.
재료만 준비했는데 그 어느 때보다 글의 길이가 길다.
다시 한번 느끼지만 정말 난 김밥에 진심인 사람이다.
그 어느 주제로 내가 이만큼 글을 쓸 수 있을까.
자 이제 김밥을 말아보자.
김발에 김밥김을 까칠한 면이 위로 오도록 올린다. 그리고 중요한 밥! 밥을 김의 2/3 정도 면적에 얇게 펴 준다. 꼭! 얇게 펴야 한다. 내가 김밥에 진밥만큼 용서 못하는 것이 두꺼운 밥이다. 밥은 들어 있구나! 정도로 얇게 펴줘야 재료 맛이 많이 나서 맛있다. 아, 그리고 접착제 역할을 하도록 김의 끝부분에 밥알 몇 개를 으깨어 발라준다.
재료를 놓을 때는 흐트러지기 쉬운 재료부터 놓아야 깔끔하게 말아지기 때문에 채 썰은 당근을 가장 아래에 놓는다. 그다음에는 손 닿는 대로 하나하나 쌓아주고 꾹꾹 눌러주며 김밥을 만다. 처음에 김밥을 만들 때는 이 작업이 제일 어려웠다. 빨리 후다닥 보다는 힘을 주어 꾹꾹 눌러가며 천천히 말아야 단단하게 말아지고, 그래야 썰면서 터지지 않는다. 말아놓은 김밥은 바로 썰기보다 조금 기다렸다 썰어야 잘 썰린다. 밥의 온기나 재료의 습기가 김에 스며들면서 바삭한 김밥김이 조금 눅눅해지면서 팽창되며 서로서로 잘 달라붙는다. 그래야 안 터진다.
참기름을 김의 겉면에 살짝 발라주고 집에서 가장 잘 드는 칼을 꺼내 슥슥 잘라준다. 칼이 잘 안 든다면 도자기 그릇의 밑면에 삭삭 갈아준다. 잘 드는 칼이 아니면 김밥을 자르다가 또 터진다. 자를 때는 김이 말린 끝부분이 아래로 가게 해서 자르는 것이 덜 터지는 비결 중 하나이다. 지금 보니 재료도 중요하지만 김밥은 안 터지게 잘 써는 것이 화룡점정이다.
재료 준비한다고 한참을 서 있고, 김밥을 만다고 서 있다 보면 김밥을 다 말고 나면 다리가 묵직해진다.
나는 김밥의 짝꿍으로 어묵탕도 라면도 아닌 커피가 제일이더라.
슥슥 썰은 김밥 한 접시와 커피 한 잔 가져와서 식탁의자에 털썩 앉아 먹고 있노라면 허허 웃음이 나며 행복해진다.
남은 재료는 줄 맞추어 반찬통에 넣어둔다. 밥만 하면 바로바로 싸 먹을 수 있으니 참 좋다.
그나마도 귀찮으면 밥 위에 재료를 잘게 잘라 올려 비빔밥처럼 섞어 먹으면 또 김밥과는 다른 매력이 있다.
펼쳐진 나의 노트북을 보며 아이들이 "맞아 맞아. 엄마 김밥 맛있어." 하며 지나간다.
우리 아이들이 나중에 엄마의 음식을 떠올렸을 때 나의 김밥을 떠올려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부디 김밥 쌀 때 옆에서 자꾸 햄을 주워 먹지 않아 주었으면 좋겠다. 개수 안 맞는단 말이다!
엄마는 김밥에 진심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