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일을 보러 가다가 우리 아이들이 졸업한 유치원 앞을 지나게 되었다.
그 유치원은 체험학습을 자주 가는 편인데 보아하니 오늘은 고구마를 캐러 가는 날인 듯했다.
고구마를 캐러 가면 아이들만큼이나 귀여운 플라스틱 바구니를 하나씩 나눠주시는데, 아이들은 신나게 그 바구니 가득 고구마를 담아 온다. 고사리 손이 집으로 들고 온 바구니는 깨끗이 세척하여 유치원으로 다시 보내드리면 다음 체험 때 또 사용하는 방식이다.
유치원 앞에 버스가 줄줄이 서 있었는데 버스 안에 서 계신 선생님이 켜켜이 쌓인 바구니를 들고 계신 모습이 보였다. 그래서 아 오늘이 무언가를 캐러 가는 그날인가 싶었다.
그런데 누가 이런 전개를 예상이나 했을까.
왈칵 눈물이 난다.
어머 미쳤나 봐 나 왜 울어!
왕복 8차선 도로의 횡단보도를 건너며 혼자 눈물을 훔치는 여자. 그게 오늘의 나였다.
어느 막장 드라마의 전개가 이럴까. 사건의 흐름순으로 나열하면 너무나도 생뚱맞다.
나는 정확히 플라스틱바구니에서 눈물이 터졌다.
왜 그랬을까. 모양도 동글동글 색상도 분홍, 초록, 파랑 곱기도 한데.
혹시나 오해할까 봐 말하자면 우리 아이들은 행복하게 유치원을 다녔고, 나는 그 유치원을 몹시도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그 유치원과 관련해서 혹은 고구마 캐기와 관련하여 슬픈 일이나 속상한 일이 아이들이나 나에게 있었던 건 아니었다.
같은 유치원에 아이들을 보냈던 친한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 나 왜 이래? 유치원 아이들 고구마 캐러 가는데
바구니보고 눈물이 막 나는 거야.
전화기 너머 언니는 깔깔 웃으며 너 나이 들었나 봐! 아니면 가을 타나? 한다.
둘 다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둘 다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이번 눈물은 정말 모르겠다.
나는 원래 눈물이 많은 사람이긴 하다. 남의 결혼식에서도 울고, 어린이 합창단의 노래를 들어도 울고, 첫째 아이가 쓴 글을 보고도 운다. 둘째가 태권도 품띠를 딸 때도 울었고 심지어 친한 언니 딸내미가 중학교 교복을 처음 입은 모습을 본 날도 울었다. (아 물론 모두 엉엉 운 것은 아니고 남몰래 흐르는 눈물을 닦는 정도)
내가 갑자기 눈물이 나서 당황스러웠던 상황들을 써 놓고 보니 흔히 말하는 '감정이 북받치는'상황인 것 같다.
감동, 감격, 대견스러움 정도일까.
다시 돌아가 한번만 안아보고픈 나의 귀여운 아이가
엄마가 새벽에 일어나 우리 아가 도시락 뚜껑 열고 기분 좋으라고 한껏 꾸민 도시락을 메고 가서
집중할 때 나오는 꾹 다문 입을 하고 자그마한 손으로 정성껏 캔 고구마를
바구니 하나 가득 담아서 가족들에게 보여주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노곤노곤 잠이 쏟아지는데 고구마를 놓칠세라 품에 꼭 안고
자다 깨어 버스에서 내려 엄마 찾아 두리번거리다 엄마를 발견하고 이내 환한 얼굴로 바뀌는 그 순간과
아이 보내놓고 오늘 입힌 옷이 더울까 추울까 물병은 혼자 열 수 있나 노심초사하던 어린 엄마의 마음까지
이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팡! 하고 터졌던 게 틀림없다.
방아쇠는 그 분홍 바구니였고.
감정을 감정으로만 느끼기엔 나의 마음그릇이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성적 사고보다는 감성적 사고가 우선인 나의 뇌는 눈물샘을 자주 개방한다.
옆에 누가 있어도, 없어도 나 주책맞게 왜 이래 소리가 저절로 나오게 당황스럽다.
그런데 앞으로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 덜 해지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드니 너무 부끄러워하거나 당황하지 않는 연습을 해야겠다.
아 내가 지금 눈물이 나는구나~ 하고 인정해야지. 눈물은 부끄러운 게 아니고 나의 감정의 표현이니까.
(이미지 출처_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