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부모님 생신이 다가오면 오빠와 연락을 주고받는다. 어디서 어떻게 무얼 먹을까.
집안 행사를 잘 챙기는 오빠가 이번에도 먼저 전화를 걸어왔다.
"이번 엄마 생일에 우리 집에서 먹을까? 이것저것 시켜서 먹자. 미역국은 새언니가 끓인다고 하고."
"아냐 이번에는 우리 집으로 와. 나 생각해 보니 평생 엄마 생일에 미역국 한 번도 한 끓여봤어."
"그랬냐? 알았다."
결혼을 하고 시부모님의 생신에는 항상은 아니어도 몇 번 정도 미역국을 끓여 생신상을 차려드렸다. 내 미역국을 맛있어하는 시누가 입덧을 하며 내 미역국이 먹고 싶다 하였을 때도 한 솥 끓여다 주었다. 그러는 10년 넘는 시간 동안 정작 나의 엄마 아빠의 생신에는 단 한 번도 끓여드려보지 않았다.
언젠가 신문에서 우리나라 평균 수명을 확인하고는 과연 내가 앞으로 몇 번의 엄마 아빠 생신을 축하해 드릴 수 있을까 헤아려 보았다.
2021년 기준 우리나라 평균수명 83.6세
평균이긴 하지만 지금 엄마아빠 나이로부터 평균수명까지 열 손가락을 꽉 채우지 못한다는 사실에 놀랐고, 슬펐다. 그리고 훗날 후회하지 않도록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첫 번째가 엄마의 생신 미역국이었다.
그런데 왜 자꾸 엄마의 미역국만 이야기하느냐면, 아빠의 생신에는 그래도 엄마가 끓여드리지만, 엄마의 생신에는 엄마가 직접 끓여드시기에 더욱 엄마의 생일 미역국을 끓여드리고 싶었다.
그리하여 시작된 엄마의 생신상 차리기.
사실 시댁 식구들을 초대할 때는 부담감이 더 크다. 더 맛있게, 더 화려하게, 더 많은 종류의 음식을 상에 올려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아버님 생신에는 소고기 미역국에 전복까지 넣은 호화스러운 미역국이 상에 올라가기도 했다.
친정 식구들을 초대하니 요리에 대한 부담은 내려놓게 되었다. 그리고 회와 해산물들을 수산시장에 주문해 놓은 터라 메인 요리에 대한 부담도 없었다. 어깨에 힘 빼고 최소한의 것들로 정갈하게 차려보려 노력했다.
먼저 밥. 자고로 생일상엔 쌀밥이지. 식구들 오기 전 날 농협 하나로마트에 가서 햅쌀을 샀다.
음력으로 추석 1주일 전인 엄마의 생신. 아직은 논이 황금빛으로 물들진 않을 시기.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께서는 엄마의 생일이면 낫을 들고 논에 가서 잘 익은 벼를 베어오셔서 꼭 햅쌀로 밥을 해 주셨다고 했다. 이번 엄마 생신은 내 딸의 생일이다라는 생각으로 생신상을 준비했다. 밥 경력 50년이 넘은 우리 엄마 역시나 밥 냄새를 맡으시더니 단번에 햅쌀인걸 알아채셨다. 장볼때 햅쌀을 사야한다고 강력히 주장한 남편에게 고마웠다.
다음은 생일상의 상징적인 존재. 미역국 되시겠다.
미역국만큼은 자신 있다. 우리 집 세 남자와 시댁 식구들에게 인정받은 미역국이다. 그런 미역국을 이제야 엄마 아빠께 끓여드리다니 다시 한번 죄송해지는 순간이었다. 큰 조카가 먹으며 엄마가 해준 것보다 맛있다고 했다. 예의상 한 말 일 수도 있지만 그리고 새언니에게 죄송하지만 믿기로 했다.
우리 집에 밥그릇 국그릇이 열한 개가 되던가, 세어보고 꺼내보고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했다.
오빠랑 7살 차이가 나는 늦둥이라 집에서 늘 막내의 역할만 했는데 엄마 아빠 오빠 새언니 조카들 먹을 밥을 내가 차린다는 생각을 하니 나 스스로 신기하기도, 대견하기도 했다. 와, 우리 막내 많이 컸다 생각하겠지? 생각하며 잡채에 들어갈 채소를 볶다가 혼자 피식 웃었다.
음식들이 맛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씨 착한 가족들은 맛있다고 해주며 잘 먹어주었다. 늘 받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부모님께 따듯한 밥을 한 상 차려드리고, 잘 드시는 모습을 보니 생신상을 차려드리길 참 잘했구나 싶었다.
사랑하는 나의 엄마.
그동안은 다시 태어나면 내가 엄마의 엄마가 되고 싶었거든?
그런데 굳이 다시 태어나지 않아도 이제부터 내가 엄마의 엄마가 되어볼까 해.
맛있는 거 해주고, 좋은 것 사주고, 예쁜 곳 데려가줄게.
그런데 말이야 내 자식들 챙긴다고 이 말을 얼마나 잘 지킬지는 모르겠어.
근데 노력은 할게. 그러기 위해 더 열심히 살아볼게.
그러니 건강히 우리 곁에 오래오래 있어줘.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