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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보통 Nov 29. 2019

결핍이 있는 사람이 좋다.

브리즈번에서 과일나무가 있는 정원이 딸린 집을 사고 싶다.

Photo by Kaylie Humphrey on Unsplash



나는 결핍이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면 결핍을 극복한 사람을 좋아한다.


이 말은 반대로 결핍이 없이 풍족하게 살아왔거나  

가족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아온 사람들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경계심을 가지고 대하고 거리를 둔다.

(경험상 친해졌다가 안 좋은 경험으로 끝났던 적이 많았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어느 정도 결핍이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결핍의 정도에 따라 타인에 대한 이해도나 배려도 가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풍족하게 살아온 사람들은 

어리광을 부리면 받아주는 아버지와 그 옆에서 눈을 흘기지만 

딸과 아들과의 수다를 스스럼없이 하는 어머니가

있는 화목한 가족에서 살아온 사람들이다.  

 

학교에 돌아오면 어머니가 스스로 만드신 식사가 있고, 

일터에서 힘들면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아버지가 계신 그런 가족.

그리고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그런 가족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왔거나 받은 사람들이 

내가 경계하는 결핍이 없는 사람들이다. 

 

내가 그들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은 풍족하기에 상상력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아둔하고 이기적이기에,

스스로 경험해보지 못하면 타인의 고통을 상상하지 못한다.  

사랑만 받다 보면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

겪는 열등감과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다.


경제적으로 언제나 풍족했었으면

가난한 누군가가 아등바등 돈을 벌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안타깝게도 사람은 그렇게 쉽게 상상력이 결여될 수 있다.  

 

블로그를 돌아다니다가

어떤 블로거가 '대치동에 아파트를

사고 싶은 것이 인생의 목표'인 남자를 

이해할 수 없다고 써 놓은 것을 보고

나는 창을 끄고 즐겨찾기에서 그 블로그를 삭제했다. 


누군가에게는 이름을 남기는 것이 중요할 수도 있지만,  

비싼 아파트를 사고 싶은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될 수 있다.  

타인의 인생의 목표를 판단하고 비판하는 것을

나는 이해할 수 없다.

 

내 친구 중에도 비싼 아파트를 사고 싶은 것이

인생의 목표였던 친구가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도 그 친구는 방이 2개인 작은 방에  

다섯 가족이 살았다.


그 친구와 언니들이 같이 자는 방이 내 방 반만 했다.

내 방도 그 당시에 정말 작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대학을 겨우 졸업하고 자신의 목표를 위해 열심히 일했다.

지금은 연락이 안 되지만 듣기로는 

비싼 아파트까지는 아니어도

더 좋은 집으로 가족 모두 이사를 했다고 들었다.

새 집으로 이사하는 날에 아마 그 친구는 행복했을 것이다.  

 

사람은 비슷한 부류끼리 만난다.

그래서 내 주변에는 풍족한 사랑을 받아서

상상력이 결여되어 있는 사람들보다는 

결핍이 있고 풍족하지 못해서 절박하게 살고,

타인의 고통에 예민한 사람들이 더 많다.  

 

나도 내 결핍 덕분에 더 열심히 더 절박하게 움직이게 된다. 

오늘 해결을 못하면 내일은 더 많은 결핍이

나를 괴롭게 할 수 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 결핍은 나 이외에는

아무도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결핍이 있는 삶을 살아온 사람들을 보면

그 부족함에서 오는 고통을 알기에 도와주고 싶다. 

 

결핍을 알기에 얻게 된 이 상상력을 잘 이용할 수 있기를.


* 대치동에 아파트를 사고 싶은 것이 인생의 목표였던 그 남자분이  

꼭 대치동 아파트를 사실 수 있기를 응원한다.  

나도 이곳에서 아보카도 나무가 있는 정원이 딸린 집을 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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