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무뎌짐

날마다 특별하고 새로웠던 우리였는데

by 주택야독

(2024년 12월 31일 '나의 기록'을 다듬어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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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무뎌짐




20대 초반.

그때의 우리는 날마다 특별하고 새로웠다.


100일, 200일, 300일.

혹은 1년, n년 기념일.

서로의 생일. 크리스마스. 명절. 여름 휴가. xx데이 등.


1년 365일 안에 참 많은 날들이 있었다.


하지만 28살이 된 지금은 어떤가?

저번 8주년과 크리스마스 때도 무엇을 할지 고민하느라 수많은 시간을 보냈다.

돈과 시간의 한정에서 오는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특별한 날들이 그 빛을 잃고 자연스레 흘러가는 보통의 날 중 하나가 되어가는 듯 했다.

한마디로 무뎌진 것이다.



2024년의 마지막 날인 오늘 또한 그랬다.

연말이라고 딱히 뭘 해야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평범하게 보내기엔 아쉬운 날.


그 날엔 난 아침 8시부터 밤 8시가 넘는 시간까지 택배일을 해야만 했다.

그녀 또한 하루 종일 일을 하다가, 저녁부터 나를 도와 택배일을 하였다.


물론 끝나고 유명 식당에서 아구탕이라는 맛있는 음식을 먹긴 했다만,

뭔가 서글픈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었다.


우리의 인생은 왜 이리 짠한지.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건지.

앞으론 어떻게 살아야할지.

그 택배 도둑놈은 어떻게 잡아야할지..


온갖 불안과 걱정들이 내 곁에서 하루종일 괴롭히던 날이었다.

그 스트레스가 상당하다보니 오늘 밤 11시에 계획되어 있던 송구영신예배 또한 가기가 싫어졌다.


‘몸도 마음도 힘들어죽겠는데 예배까지 어떻게 가.. 하나님은 날 버렸다고..’

라는 나쁜 생각이 나를 지배한 것이었다.


예배에 안 가겠다고 굳게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그 마음을 하나님이 알고 계셨는지 나에게 그녀를 보내셨다.

그녀가 날 도우러 온 것이었다.


그녀를 보니 힘들었던 마음과 하나님께 삐져있던(?) 마음은 온데간데 없이 풀어져 버렸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 또한 감사함이고 하나님의 은혜였다.



연말마다 어딜 놀러가야했던 과거의 우리와

연말이라도 주어진 일을 해내야만 하는 현재의 우리는

분명 다르다.


그때가 좋았지.

그때가 그립다.

는 식의 생각은 하지 않으련다.


그런 특별한 날들은 매년 돌아올 것이고,

우린 몇 번이고 그 날들을 새롭게 맞이할 것이다.


그때마다 특별한 무언가를 매번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함께이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도 행복할 수 있다.


시간은 무뎌질 수 있겠지만,

우리 둘은 더욱 단단히 다져질 것이기에.



2024년의 난 따로 세워놓은 계획이 없었다.

1월 내에 세워야지하고 까먹었다.


그렇기에 다가오는 2025년에는 꼭 계획을 세우길 다짐해본다.


쿠팡을 그만두고 다른 택배사로 이직했다.

실패한 웹소설 작품 두 개를 써보았다.


2025년은 수입이 좀 줄겠지만,

열심히 아끼고 힘차게 살아볼 것이다.



무뎌짐이 아니라 다져짐을 믿기에,

이렇게 또 한 해를 보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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